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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요청하거나 선물·애완동물 등으로 접근…범행동기는 ‘금품’보다 ‘성범죄’ 가능성 높아

어린이를 상대로 한 유괴 미수 사건이 전국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경기, 인천, 대구, 제주 등에서 미성년자 대상 약취·유인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다행히 실제 납치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Recraft 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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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광명·제주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8월28일 오후 3시31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공영주차장 인근에서 승합차 한 대가 가방을 멘 초등학생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운전석에는 대학생 A씨, 조수석에는 자영업자 B씨, 뒷좌석에는 대학생 C씨가 타고 있었다. 이들은 20대 초반으로 중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 

차량은 초등학생 옆으로 접근했고, 탑승자 중 한 명이 차창을 내리면서 “귀엽다. 집에 데려다줄게”라고 말을 걸었다. 아이가 거부하자 2분 후인 3시32분 또 다른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같은 방식으로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실패하자 4분 후인 3시36분에도 연이어 범행을 시도했다. 이들이 수상하다고 판단한 아이들이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면서 피해를 모면했다. 당시 남성들의 행적은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촬영됐다.

이후 초등학교 앞에서 유괴 시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해당 학교는 학교 후문과 인근 시장 등에서 유괴 시도가 있었다며 ‘어린이 유괴 예방을 위한 주의 부탁’이라는 제목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납치 시도 이틀 후 학부모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이들을 추적한 끝에 긴급체포했다. 

이 남성들은 범행동기에 대해 “아이들이 귀엽게 생겨 장난삼아 던진 말이고 실제 차량에 태울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피의자 중 범행을 주도한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혐의 사실과 고의 등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기각했다. 

며칠 후 경기도 광명에서는 고등학생이 초등학생을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9월8일 오후 4시20분쯤 광명시의 한 아파트 정문에 고등학생 D군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때 여자 초등학생(8)을 발견하자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를 탄 뒤 입을 막고 끌고 가려고 했다. 

피해 아동이 큰 소리로 울며 저항하자 D군은 급히 현장을 벗어났다. 부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CCTV 등을 확인한 뒤 같은 날 저녁 D군을 주거지에서 붙잡았다. 그는 경찰에 “성범죄를 목적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다음 날 오전 2시40분쯤,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 도로변에서는 회사원인 30대 남성 E씨가 지나가는 여자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알바 할래?” 등의 말로 유인하며 차에 태우려고 했다. 이때 피해 아동이 거부하며 차량 번호를 보려고 하자 E씨는 곧바로 도주했다가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과거 추행 등 성폭력 전과가 있었다.

이 밖에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초등학생 등 미성년자 납치 시도가 일어났다. 한동안 잠잠했던 미성년자 약취·유인 시도가 갑자기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9월5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아동을 납치하려고한 20대 일당이 서울지방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9월5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아동을 납치하려고한 20대 일당이 서울지방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접근과 유인 쉽고 통제하기 편해 아동 선택

유괴범들이 아동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접근과 유인이 쉽고, 성인에 비해 저항이 적고, 무력화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소아성애자의 경우에는 욕구가 우선이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범행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아동 유괴의 경우 범인들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아이를 볼모로 가족에게 금품을 요구하거나 성범죄를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광명과 제주의 경우 성범죄가 목적으로 파악됐다.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아동 유괴의 상당수는 ‘금전 갈취’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범행 기간이 길고, 은신처와 차량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과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 과학수사의 발전, 촘촘한 CCTV 설치, 실종 경보 등으로 인해 금전 갈취 목적의 유괴는 성공률이 메우 낮아졌다.

또 사회 주목도가 높아 심적 부담이 크고, 피해 아동의 생사 여부를 떠나 중형이 불가피해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2000년대 이후 발생한 아동 유괴 사건의 경우 대부분은 성범죄와 관련이 있었다. 

2007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날 경기도 안양의 한 동네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동시에 실종된다. 범인 정성현(39)은 술을 마신 후 성욕이 생기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피해 아동들에게 “아픈 강아지를 돌봐 달라”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그는 아이들을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잔혹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유기했다.

상습 성범죄자인 김수철(45)은 더 대담했다. 2010년 6월7일 오전 9시쯤 김수철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거주지에서 술을 마신 후 인근 초등학교에 침입했다. 이때 운동장을 지나던 피해 어린이(8)를 발견하고 흉기로 위협해 집으로 끌고 온 후 성폭행했다. 이 사건 이후 초등학교의 외부인 통제가 강화됐고, 주간에는 외부인 출입을 제한했다.

여전히 불안했던 학부모들은 “학교 수위를 부활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서울시는 그 대책의 일환으로 2011년 3월부터 ‘학교 보안관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시행 중이다. 

정성현의 악몽이 사라지기도 전인 2008년 12월11일 오전 8시30분쯤, 조두순 사건이 터진다. 당시 56세였던 조씨는 이날 아침 술을 마신 후 거주지 인근 교회 앞에서 서성거리다 피해 아동(9)이 지나가자 불러세운 후 교회 상가로 끌고 가 엽기적인 만행을 저지른다. 

어린이 유괴 성범죄자의 경우 연령대가 다양하다. 퇴직공무원으로 성범죄 전과가 있던 김아무개씨는 2022년 4월27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골목에서 11세 초등학생(여)을 “너 예쁘다”며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당시 그의 나이 84세였다. 김씨는 범행 전 비아그라를 복용한 상태였으며, 범행동기에 대해 “집사람이 병원에 있어 우울하니까 순간적으로 여자애를 만지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4월8일 오전 8시40분쯤 인천시 연수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는 20대 우즈베키스탄인 남성이 남녀 초등생 2명에게 접근해 “길을 알려 달라”며 자신의 차량으로 유인해 태운 후 성추행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보통 아동 유괴범들은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면서도 인적이 드문 곳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다. 범행 장소를 미리 물색해 놓은 후 유인하거나 끌고 간다. 정성현과 김수철은 혼자 사는 자신의 거주지를 범행 장소로 선택했고, 조두순은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골목 건물 화장실을 미리 물색해 놓고 범행을 저질렀다. 

아동 유괴범들의 범행 수법도 다양하고 아이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수법이 “길을 알려 달라”거나 “집에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이번 서대문 유괴 미수범들도 이 수법을 사용했다. 

이른바 ‘환심 수법’도 자주 사용된다. 아이에게 “예쁘다”고 접근해 경계심을 풀게 한 후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거나 갖고 싶은 장난감을 물은 후 “내가 사주겠다” 또는 “예쁜 옷을 사주겠다”는 등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하는 것이다. 

애완동물과 관련된 수법도 있다. 범인들은 “우리 집에 예쁜 강아지(또는 고양이)가 있으니 함께 가서 구경하자”거나 “우리 집 강아지가 많이 아픈데 잠시 돌봐 달라”며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아파트에서 봉고차를 세워둔 남성 두 명이 초등학생에게 접근해 “차 안에 강아지가 있는데 구경하자”며 차에 태우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도움 요청 수법’도 있는데, 주로 나이 든 유괴범이나 소아성애자들이 사용한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애완동물이나 가족 등이 아프다며 다급하게 호소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유인한다. 상대편에 대한 의심을 갖기 어려운 아이들의 경우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다.

9월5일 아동 납치 시도가 잇따르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5일 아동 납치 시도가 잇따르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소 꾸준한 예방교육으로 본능적 경계심 갖게 해야

부모나 친구, 교사를 사칭하는 수법도 조심해야 한다. 이때 유괴범은 피해 아동에게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 (또는 아빠) 친구인데 너를 빨리 데려오라고 해서 대신 왔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등의 말로 접근한다. 

다른 아이들을 통해 교사의 이름을 알아낸 뒤 지나가는 아동에게 학년과 반을 묻고는 담임선생님 이름을 대며 “빨리 데려오라고 해서 대신 왔다”거나 “선생님이 아파서 도움이 필요하니 함께 가달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 교사 이름을 대고 도움을 요청하는 남성에게 속아 차량에 탑승했다가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여고생도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아동 유괴범들의 수법도 시대 상황이나 사회 현실 등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접근한다면 성인도 꼼짝없이 속아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아동을 상대로 한 유괴나 납치는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누구든지 방심하면 당하기 쉽다. ‘아차’ 하면 이미 늦는 것이다. 만약 범죄 피해자가 되면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평생 고통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때문에 범죄 예방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섯 가지만 주의해도 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동 유괴범죄의 90%는 예방할 수 있다. 첫째, 등하교 때는 혼자 가지 말고 친구들과 함께 움직일 것. 둘째, 길에서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경계심을 갖고 빨리 피할 것. 셋째, 차량에 타고 있거나 세워놓고 말을 걸어오면 대꾸하지 말고 최대한 멀리 떨어질 것. 넷째, 아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따라가지 말고 바로 부모에게 전화할 것. 다섯째, 누군가 접근해 음료수나 음식물 또는 선물 등을 주면 절대 받지 말고 피할 것 등이다. 만약 이런 일이 있으면 부모에게 바로 알리도록 하고, 부모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범죄 전문가들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 예방은 평소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다 한 번씩 하거나 사건이 일어날 때만 하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주지시켜 본능적인 경계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실제 상황에서 교육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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