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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우위?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이자 위험한 사고”
“삼권분립의 취지, 사법만큼은 정치 논리·포퓰리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9월11일 이재명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경제와 안보 분야는 실용 기조를 유지하되, 특검 수사와 내란특별재판부는 강경한 기조로 갈 것임을 밝혔다. 특히 ‘국민 의지’를 내세우며 내란특별재판부는 위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하자 더불어민주당도 일제히 호응하고 나섰다. 이에 조희대 대법원장을 위시한 사법부가 법원의 독립성을 주장했고, 당대표 정청래와 국회 법사위원장 추미애가 나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통령실 대변인 강유정까지 대법원장 사퇴에 원칙적 공감을 밝히며 삼권분립 위배 논란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한술 더 떠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 내란·국정농단 전담재판부까지 언급하며 위헌 논란이 더 확대되고 있다. 같은 당 박희승 의원이 “윤석열이 삼권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한 것과 똑같은 행위”라고 주장하는 등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헌법 제104조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라고 명시한다. 무엇보다 헌법 110조에는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고 되어 있어 내란특별재판부는 현행 헌법상 위헌이라는 게 학계와 법조계의 지배적 견해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월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계·법조계의 지배적 견해는 “내란재판부는 ‘위헌’”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진보언론조차도 비판하는 내란특별재판부를 굳이 관철하려 하는 것일까. 첫째,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신속 파기환송했던 조희대 대법원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 때문이다. 김어준은 “조희대가 판사가 포함된 계엄 체포 명단과 서부지법 침탈 사건에 대해 아무 입장 표명이 없었다”며 마치 조희대가 계엄에 연루되어 있거나 계엄을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로 문제를 제기했다. 며칠 전 정청래 대표는 김어준의 발언과 같은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영교 의원은 “조희대가 탄핵 직후 4월7일 한덕수 등을 만나 이재명 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바로 정리하겠다고 말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며 사퇴를 촉구했고, 부승찬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재차 조희대-한덕수 회동 의혹을 제기하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현희 의원은 ‘김어준 뉴스공장’에 나와 조희대가 마음만 먹으면 내란재판이나 특검 사건들도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술 더 떠 김건희·채해병 특검 전담재판부 설치도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조희대 대법원이 윤석열에게 무죄를 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속 파기환송, 내란 재판을 담당하는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 취하와 내란 재판 지연 등 비상식적이고 편향된 재판을 운영하고 있다는 강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까지 더해지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그래서 내란특별재판부와 조희대 사퇴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출마 예정자들의 강성 지지층을 향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최근 내란특별재판부와 조희대 퇴진에 목소리를 높여온 이들은 하나같이 내년 지방선거 수도권 출마가 거론되는 이들이다. 추미애 의원은 경기지사에, 전현희·서영교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예정자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지난 민주당 대표 선거에선 김어준 등 유튜브의 영향력 아래 묶여있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은 정청래가 압승했다. 지난 총선 경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출마자들은 앞다퉈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큰절을 올리며 출마를 ‘신고’하고, 당선증을 들고 나와 당선을 ‘보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 시절 행사했던 ‘비명횡사’ 공천도 강성 지지층에 좌우되는 당내 경선 구조 때문에 가능했다. 박용진을 낙선시키려 동원한 전국 권리당원 여론 70%를 반영한 기이한 경선룰도 강성 지지층 동원을 위해서다. 이른바 ‘명·청 전쟁’도 오랜 강성 지지층 동원 정치의 부작용이다. 이 대통령도 강성 지지층에 업혀 대권을 잡았다. 사상 초유의 여야 특검 합의 번복도 강성 지지층의 거센 반대를 정청래가 의식했기 때문이다. 소위 ‘당원주권’ ‘당원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강성 지지층을 동원하는 ‘강성 동원 정치’가 모든 걸 결정하다 보니 출마자들도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점점 과격해지며 내란특별재판부와 조희대 퇴진 목소리를 높인다.

셋째, 대통령과 집권당의 안보를 위해서다. ‘내란 수괴 윤석열’ 규정은 이재명 정권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만에 하나 재판부가 법리를 따져 내란죄 무죄 판결을 하거나, 직권남용죄 정도로 판결이 날 경우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은 큰 타격을 입는다. 내란 척결 명분으로 집권하고 국정운영 동력으로 삼아왔는데 무죄가 되면 명분을 다 잃는다. 특히 스스로 지지 기반을 와해시켜 무너진 윤석열 정권의 말로를 똑똑히 보았을 이 대통령은 강성 지지층의 ‘무죄 책임론’ 제기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구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줄 ‘구원자’로 칭송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몰아 끌어내리는 게 군중이라고 했다. 윤석열 내란죄 무죄에 대한 지지층의 책임론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 그 책임은 ‘정치의 사법화’에”

민주당 입장에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내란죄를 유죄로 만들어야 한다. 야당과 특검 합의 파기, 근거도 없는 조희대-한덕수 회동 녹취록, 대법원장 사퇴 압박 등 무리수는, 계엄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재판이 중단된 채 정권을 잡은 이재명 정권의 취약성 때문이다. 임기 후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이 대통령으로선 내란 세력 프레임으로 야당의 힘을 빼고 사법의 신뢰를 떨어트려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내란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걸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해야 한다. 더구나 미국발 관세 폭탄과 기업 도산 위기, 물가 상승, 경제 침체 등 예상되는 대내외적 위기를 정치적으로 돌파하기 위해선 내란특별재판부를 만들어서라도 내란죄 유죄를 만들어야 한다. 

진짜 사법이 정치화되었다면 그건 오롯이 정치의 책임이다. 정치가 합의와 타협을 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사법의 판단에 맡긴 ‘정치의 사법화’ 때문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의 정치화를 부른다. 정치가 바로 서면 사법도 바로 선다.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해석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는 매우 자의적이고 위험한 사고다. 대다수 선진 국가들이 사법부를 임명하는 이유는 사법만큼은 정치 논리와 대중 인기 영합에서 자유롭게 독립해 헌법과 양심에 따라 선출직을 견제하고 판결하라는 것이다. 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과 역사적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삼권분립의 취지다. 전체주의는 사법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민주공화국은 사법의 단단한 반석 위에서만 가능하다. 사법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부르는 이유다. 헌법에 위배되는 어떤 시도도 자제되어야 한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
박동원 폴리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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