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넷플릭스 영화와 히어로 무비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7 12: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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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없이 진행되는 2019 아카데미 시상식 관전 포인트

“And the Oscar goes to….” 세계 영화 팬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다. 과연 트로피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 비밀을 품은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2월22일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새뮤얼 골드윈 시어터에서 열린다. 《그린 북》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바이스》 《보헤미안 랩소디》 《블랙클랜스맨》 《블랙 팬서》 《스타 이즈 본》 《로마》 등 총 8개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가운데, 시상식과 관련된 각종 예측과 이슈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관전 포인트를 살펴봤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멕시코 출신 배우들과 자국의 언어로 촬영한 《로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멕시코 출신 배우들과 자국의 언어로 촬영한 《로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종의 다양성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적극 끌어안았다. 먼저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멕시코 출신 배우들과 자국의 언어로 촬영한 《로마》가 작품상을 비롯한 최다 부문(10개) 후보에 오르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로 이 부분에 이름을 올린 ‘원주민 출신 여성’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성 캐릭터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선전도 눈에 띈다. 《로마》와 함께 10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여성 파워를 기대케 한다. 아프리카 부족의 전통을 현대문명에 접목한 슈퍼히어로 무비 《블랙 팬서》가 7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 또한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변화를 엿보게 한다. ‘백인들만의 축제(#OscarsSoWhite)’라는 논란 이후 다양성 확장에 신경 써온 아카데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악연 아닌 악연을 이어오던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가 《블랙클랜스맨》으로 생애 최초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똑바로 살아라》 《말콤 엑스》 《정글 피버》 등의 작품을 통해 미국의 흑인 차별과 인종 갈등 실태를 다뤄온 스파이크 리 감독은 지난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양성 부족을 비판하며 보이콧을 선언한 바 있다. 스파이크 리가 1989년에 만든 《똑바로 살아라》는 당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이는 오랜 시간 ‘아카데미의 실수’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근 스파이크 리는 《블랙클랜스맨》의 작품상 노미네이트와 관련, 한 인터뷰에서 “30년은 긴 시간이죠. 그렇지 않나요?”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그간의 심경을 대신했다.  

넷플릭스의 습격

《로마》의 선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극장 개봉용이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OTT·Over-The-Top)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라는 점이다. 지난해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넷플릭스에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겨줄 것으로 점쳐졌던 《머드바운드》가 작품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넷플릭스의 절치부심이라 할 만하다. 《로마》가 작품상을 받으면 OTT가 제작한 첫 번째 작품상으로 기록된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영화를 자사 플랫폼을 통해서만 공개하거나, 영화관에 동시 상영하면서 업계와 갈등을 빚어왔다. ‘넷플릭스가 영화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이란 논란은 여전히 갑론을박. 이에 대처하는 영화제와 영화인들의 자세도 다양하다. 

지난 2017년 《옥자》로 뜨거운 홍역을 치렀던 칸국제영화제는 넷플릭스 영화를 경쟁 부문에서 제외하는 폐쇄적 행보를 걷고 있다. 반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로마》에 작품상(황금사자상)을 안기며 시대 변화의 시류에 동참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들은 TV 영화이기 때문에 아카데미상이 아니라 에미상 시상식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넷플렉스 영화를 반대하는 영화제는 지속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로마》의 아카데미 주요 상 수상 여부는 많은 이슈를 낳을 전망이다.  

ⓒ freepik·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freepik·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히어로 무비 최초 작품상 노미네이트

마블 최초 흑인 슈퍼히어로인 《블랙 팬서》는 이번 노미네이트로 또 하나의 ‘최초’ 수식어를 달았다. 슈퍼히어로 무비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히어로 무비에 대한 아카데미의 철벽은 꽤나 견고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8년도 영화 《다크나이트》. 평단은 물론 관객으로부터 걸작이란 찬사를 받은 이 영화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히스 레저)과 음향효과상 수상에 그쳤을 뿐,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히어로들에게 엄격했던 아카데미의 천장을 《블랙 팬서》가 뚫은 셈이다. 

그러나 《다크나이트》 때와 달리 《블랙 팬서》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블랙 팬서》가 잘 만들어진 영화이긴 하나, 작품상 후보에까지 오를 영화인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 백인 우월주의 논란 후 아카데미가 지나치게 외부 반응에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엇갈린 시선 속에서 마블은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챙기게 될까. 

사회자 없는 시상식

사회자의 위트를 지켜보는 건 아카데미 시상식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다. 2014년 시상식에서 나비넥타이를 맨 브래드 피트가 피자를 서빙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시상식 도중 피자를 주문한 사회자 엘렌 제너러스의 재치 덕분이었다. 그러나 올해엔 사회자가 전하는 입담을 볼 수 없다. 아카데미가 사회자 없는 행사 진행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다. 일찍이 사회자로 낙점된 코미디언 케빈 하트가 과거 SNS에 남긴 성소수자 비하 발언 논란으로 자진 하차하면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일이다. 아카데미는 부랴부랴 대체 사회자 섭외에 나섰으나, 짧은 준비 기간 등을 이유로 대부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1989년 제61회 시상식 이후 처음으로 사회자 없이 진행되는 행사가 됐다.  

아카데미 측은 자구책으로 공동사회 형식으로 시상자 역할을 할 13명의 배우와 연예인을 발표했다. 티나 페이, 우피 골드버그, 브리 라슨, 대니얼 크레이그, 제니퍼 로페스, 크리스 에번스, 에이미 폴러, 마야 루돌프, 샤를리즈 테론, 아만다 스텐버그, 테사 톰슨, 콘스탄스 우 등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에서 주인공 레이철의 친구 페린 고 역을 맡은 한국계 미국 배우 아콰피나(Awkwafina·본명 노라 럼)도 13명의 시상자 중 한 명이다. 

광고 시간에 일부 상 시상

마지막으로 촬영상, 편집상, 분장상, 단편영화작품상에 관심이 있는 시청자라면 TV 중계 대신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시상식을 즐길 것을 당부한다. 위에 언급한 네 부문 시상이 광고 시간에 이뤄지니 말이다(소셜미디어 계정에서는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아카데미의 이 같은 선택은 시상식을 3시간 안에 끝내기 위함이다. 시청률 하락을 막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청률을 위해 일부 상이 배척되는 듯한 이 같은 상황을 얼마나 많은 영화인이 반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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