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아픈 손가락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8 10:30
  • 호수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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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지났다. 비록 거리에서 캐럴송이 예전보다 덜 울려 퍼져도, 기다리던 흰 눈이 내리지 않았어도, 또 신자가 아니어도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입속에 머금으면 신기하게도 온몸이 따뜻해져 온다. 사랑과 평화와 같은, 실체도 없는 것들까지 손에 잡힐 듯 선연해진다. 크리스마스가 들어 있는 이 세밑에는 누구나 느낄 것이다. 괜스레 바빠지고, 더 크게 열리고, 미안해지는 마음을. 그 마음의 힘으로 구세군 냄비에 돈이 채워지고 광장에 세워진 ‘사랑의 온도탑’의 눈금도 올라가는 것이리라.

그렇게 바빠지고, 열리고, 미안해지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가 닿은 것은 우리 주변의 ‘아픈 손가락’들이다. “내 몸의 중심은 뇌도 심장도 아닌, 지금 내 몸에서 가장 아픈 곳”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세상의 중심은 바로 그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 연합뉴스

 

돌아보면 2018년 한 해에도, 가장 최근의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집단 중독 사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어느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각별히 마음이 쓰이는 대상은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몰리는 사회적 약자들이 아닐까 싶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화두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희생도 그 한 사례다.

위험의 외주화란 말 그대로 작업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들을 하청업체에 맡겨 처리하는 것이다. 고 김용균씨도 하청업체 직원으로서 새벽에 혼자 근무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사람이 대체용품도 아니고 일회용도 아닌데, 사람을 사람답지 않게 했다는 게 정말 억울하다”는 김용균씨 어머니의 말만으로도 그들이 처해 있었던 근무 환경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는 달리 말해 강한 무기를 가진 집단에서 처리해야 할 위험을 더 약한 무기를 가진 집단에 떠맡기는 행위다. 이는 한편으로 위험이 더 위험해졌음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캄캄한 안전 사각지대에서 불안에 맞서 싸우는 ‘제2, 제3의 김용균’이 있다. 그들에겐 위험의 맨 끝자리로 밀려나버린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그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하루하루가 천만다행일 수 있다.

사고가 일어나면 그때서야 우르르 몰려나와 땜질 처방을 남발하는 주먹구구식 대응으로는 결코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다. ‘사고 공화국’(제1522호 커버스토리 기사 참조)을 진정한 ‘안전 공화국’으로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각고의 노력과 대책이 절실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사회 곳곳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 확실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먼저다’를 외치며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까지 호기롭게 내놓았던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산업안전 등 관련법을 책임진 국회의원들에게 부여된 의무다. 모름지기 사회안전망은 아무리 촘촘해도 지나침이 없다.

밝아오는 2019년에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전 사회를 피부로 느끼며 지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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