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유죄’·양승태 ‘유죄 추정’…상식으로 가는 첫 단추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9 17:00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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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법권 오남용’에 대해 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작동돼야

두 가지 낭보가 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것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이 발부된 일이다. 예상 못 했으나 기대한 일들이었다. 안태근 법정 구속과 양승태 구속영장 발부는 매우 다른 사건일 수도 있고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일 수도 있다. 두 피고인에게 공통된 가장 나쁜 죄질은 권력남용이다. 그들이 지닌 권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위임받은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드는 범죄가 권력남용이다. 가장 큰 권력인 대통령조차 권력을 남용하면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 권좌에서 내쫓는 나라지만 대법원장이라든가 판검사라든가 국회의원이라든가가 저지르는 권력남용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일단 법의 보호를 받는 직역으로 진입해 버린 사람들은 바로 그 ‘법권 오남용’을 통해 자신들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 오남용의 작동방식이 얼마나 치사하고 비열한지를 안태근 케이스가 참으로 잘 보여주었다. 

1월23일 ‘서지현 인사 불이익’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호송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23일 ‘서지현 인사 불이익’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호송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일벌백계 보여줘야”

서지현 검사가 작년 이맘때 JTBC에 출연해 자신이 당한 성추행 피해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진실로 가는 지옥문이 열렸다. 이 일이 직격으로 가리키는 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이름 두 글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권력의 민낯, 좁게는 검찰이라는 남성권력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성폭력은 섹슈얼리티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성폭력을 권력폭력이라 말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피해자를 먼저 비난하거나 피해자를 입 다물게 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해 온 관행을 보면서도 그렇다. 조직을 위해서, 실적을 위해서, 또 무엇을 위해서 피해자가 입을 다물어야 할까? 누가 이득을 볼까? 이 담합의 배후인 가부장적 연대가 어떻게 해야 드러날까? 모든 위계가 복합되고 중첩된 지점에 서지현이 우뚝 서버렸다.

피해자에 대한 음해와 비난, 직무상 불이익, 인사 보복, 내부 왕따 등등, 사기업에서 노상 일어나는 바로 그런 방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검찰에서도 일어났다. 권력에 도전한 약자들이 언제나 겪어온 방식 그대로다. 여기에 덧붙여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비난도 극심했다. 이 모든 것들이 유죄임을 재판부가 선고해 준 것이다. 검찰 구형량에서 조금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선고하고 법정 구속을 시킨 것은 늘 패배만 해 오던 사법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아주 조그만 승리일 것이다.  

한편 양승태 구속이 고무적인 것은 성폭력에 특별가산점을 굳이 주지 않아도 모든 종류의 권력남용은 그 행사자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처벌 대상이라는 것, 높기 때문에 오히려 증거인멸 우려도 높으니 더 구속해야 한다는 것, 상식적인 이런 생각을 상식적으로 실천한 일이어서다. 

이 두 사건은 그 다툼의 내용이 서로 매우 다르지만 권력을 지닌 자들이 그 권력을 어떻게 사유화하는가를 높은 데서, 낮은 데서(안태근은 양승태에 비하면 말단 피라미다) 잘 보여준다. 이제 법은 피라미와 이무기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하게 될까? 아직 모르지만, 최소한 바라건대 2심 재판부는 검찰 구형량에 구애받지 말고 형량을 높여 유행하는 일벌백계라는 말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바로 작동을 해야 더 큰 남용, 즉 정치적 권력남용을 경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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