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40%, 표심 안 정해…이재명 앞서가지만 與도 기회 열려 있어
‘극한 갈등’ 與, ‘대통합’ 경선 치르면 반전…이준석과의 단일화도 관건
이제 국민의 시간이다. 6월3일로 예정된 조기 대선이 갖는 의미는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민심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은 달라지게 된다. 실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후 정치권에서는 헌법재판소의 1차 심판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은 ‘국민이 내리는 2차 심판’인 대선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2017년 국민의 심판은 단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열린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41.1%)은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24.0%)를 두 배 가까운 표차로 이겼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 128명 중 절반 가까이가 찬성표를 던진 후 자포자기 심정으로 치른 대선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보수도 뭉쳐 있다. 8년 전과 전혀 다른 오늘날 보수 세력의 행보는 두 번 다시 ‘궤멸’을 경험할 수 없다는 의지의 발현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직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밑바닥 민심은 과연 무엇일까. 장미대선을 가를 핵심 변수로는 △여권의 대선 경선(중도 확장성 있는 후보가 나올지, 다시 보수를 통합하는 경선이 될지 여부 등) △범보수 단일화(분열을 막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의 단일화 여부) △유력 주자들의 사법 리스크(이재명 대표의 남은 재판과 여권에 던져진 명태균 리스크) 등이 꼽힌다. 일단 민심의 향방은 탄핵 이후 진행될 여론조사를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與, ‘이재명 대 反이재명’ 단일 구도 만들어낼까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그동안 침묵하던 중도층이 표심을 드러낼지, 드러낸다면 그 표심이 누구에게 향할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다. 우선 탄핵 직후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국민의힘 후보로 누가 선출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초가 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이재명 대표와의 가상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쟁력이 가장 높았지만, 중도층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시작할 경우 대권주자들의 지지율 추이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중도 확장성을 갖춘 대권주자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꼽힌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대선 경선이 사실상 유일하게 막판 반전을 노려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도 있다. 탄핵 찬반을 두고 내전 수준의 내홍을 겪고 있는 여당이 만약 대통합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선을 만들어낸다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주목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독주하는 민주당의 경선은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여권의 갈등 양상을 보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희박한 만큼 반전의 드라마는 크게 쓰일 여지도 있다.
여권 입장에선 이준석 의원과의 범보수진영 단일화 여부도 핵심 변수다. 진보진영은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독자적으로 대선후보를 내더라도 막판엔 민주당과 범진보 단일화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 의원에 대한 지지율이 유의미한 수치로 올라올 경우 국민의힘으로선 어떻게든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 단일 구도를 만들어야 승률을 높일 수 있기에, 이 의원과의 단일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 입장에서도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아깝게 질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을 우려해서라도 막판까지 단일화를 저울질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이재명 대표는 공직선거법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대권 가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을 넘었다. 이에 사법 리스크를 고리로 후보 교체론까지 언급했던 비명(非이재명)계 목소리를 잠재운 동시에 중도·보수층을 향한 외연 확장에도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공직선거법 사건의 대법원 판단 시기가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고, 위증교사·대북 송금 의혹 등 다른 사건 재판으로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 탄핵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진 4·2 재보선 결과는 여당의 참패였다. 기초단체장 5곳 중 국민의힘은 텃밭인 경북 김천시장 선거만 이겼을 뿐이고 민주당이 3곳, 조국혁신당이 1곳에서 각각 승리했다. 선거 전에 여당이 4곳, 야당이 1곳을 차지했던 구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부산시교육감 재선거에서도 진보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다.
투표율 26.55%로, 2017년 이후 치러진 재보선 가운데 가장 낮은 투표율이지만 밑바닥 민심을 읽기엔 충분했다는 해석도 있다. 여당의 텃밭으로 분류돼온 경남 거제시장을 민주당 후보에게 빼앗긴 것은 국민의힘 지지층 상당수가 보수를 심판한 결과로 풀이된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바라보는 영남 유권자들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재보선 결과에 대해 “나경원·김기현 의원이 (선거 유세를) 갔는데 많이 졌다. 전한길 강사가 부산역 광장부터 전국을 돌았는데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났다. 국민의힘은 이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는 (국민의) 강력한 경고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윤 후보로는 중도 지지 못 받을 것”
12·3 비상계엄 이후 윤 전 대통령이 사법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지율은 역설적으로 오름세를 보여왔다. 보수 강성 지지층이 똘똘 뭉친 결과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에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일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파면 이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윤 전 대통령의 당에 대한 영향력은 일주일이면 소멸될 것”이라면서 “(대선 국면으로 돌입하면) 다시 51대 49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대선 승패의 키는 중도층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래 정치 지도자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지만 특정인을 꼽지 않은 응답자도 39%에 이르렀다. 한국갤럽이 4월1~3일 전국 유권자 1001명 중 스스로 중도 성향이라고 한 응답자에게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은지 물은 결과, 이재명 대표가 38%로 가장 높았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5%로 뒤를 이었고, 한동훈 전 대표 4%, 홍준표 대구시장 3%,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2%, 오세훈 시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각각 1%로 나타났다. 특정 후보를 꼽지 않고 의견을 유보한 응답자는 39%로, 10명 중 4명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재명 대표이기에 해볼 만한 선거”라는 얘기가 도는 것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의힘이 중도 확장성이 큰 후보를 내세울 경우 마음을 못 정한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친윤(친윤석열)계가 당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대선에선 친윤 후보로는 절대 중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오세훈 시장의 중량감이 최근 상당히 떨어지면서 결국 김문수 장관 또는 홍준표 시장과 한동훈 전 대표가 경선에서 접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며 “한 전 대표가 당내에선 인기가 없지만 국민적인 인기가 높기 때문에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해소됐다” 50% vs “안 됐다” 43%
강성 지지층에 끌려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민의힘 주류 친윤 세력이 대권보다는 당권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친윤 중심으로 김문수 후보를 내세워 지더라도 당권을 잡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며 “오세훈 또는 한동훈 후보가 대선에 나가면 지더라도 (그들이 대선 이후) 당내 영향력을 갖게 되는데, 친윤계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김 장관이 중도 확장성이 큰 후보에게 ‘통 큰 양보’를 해서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장관의 선택에 달렸다. 중도 확장성이 큰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이 강성 지지층을 달래는 역할로 나선다면 싸워볼 만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누가 여권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의 단일화 가능성도 달라질 전망이다. 엄 소장은 “김문수 장관이 후보가 되면 이 의원도 끝까지 달릴 것이고, 오세훈 시장이 후보가 될 경우 단일화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현재 지지율이 높지 않아도 대선 국면에선 유의미한 지지율이 나타날 수 있다”며 “51대 49의 싸움이 되면 이 의원이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문수 후보가 되더라도 이 의원과의 연대를 시도하려 할 것”이라며 “김 장관이 겉으론 세 보이지만 열려 있는 면이 있어 이 의원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 크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의원이 단일화 없이 대선을 치렀을 때 “3등, 15%(득표율) 정도 나오면 성공이고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직선거법 사건 항소심에서의 무죄 선고로 ‘날개를 단’ 이재명 대표를 위협할 만한 변수는 당내에는 사실상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국민 10명 중 4명이 여전히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가진 점은 걸림돌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인식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사법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응답이 50.2%, “해소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43.9%였다(미디어토마토, 3월31일~4월1일 성인 남녀 1062명 대상).
박동원 대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이 대표가 당선되면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갈지 걱정하는 ‘포비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 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