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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

80주년 중국 전승절 행사의 주인공은 승전의 역사도, 희생의 기억도 아니었다. 세 명의 인물, 시진핑·푸틴·김정은이었다. 신냉전의 망령 같은 조합이다. 핵무기를 쥔 독재자들의 웃음 뒤에 전운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시진핑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침묵의 싸움닭, 목계(木鷄)처럼 보였다. 허세 대신 응축된 힘. 소란스럽지 않으나 상대를 응시하는 고요한 기세. 이번 전승절에서 무기 과시는 계산된 확장이었다. 그는 “평화냐 전쟁이냐, 대화냐 대결이냐”를 언급하며 중국이 인류 공동체의 수호자임을 주장했다. 미국의 허를 찌르는 다양한 군사력을 선보였다.

그에 비하면 트럼프는 하늘의 매(鷹)라고 할까. 시속 300km로 낙하해 단숨에 먹이를 낚아채는 맹금류. 그의 외교는 소란스럽고 직선적이다. 거친 언사, 전격적 뒤집기, 벙커버스터와 F-35 스텔스 전폭기 시위 등. 순간의 폭발력으로 국제 질서를 흔드는 전형적 매의 돌진이다. 트럼프는 전승절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SNS로 “시진핑은 미국인의 희생을 기억하라”고 쏘아붙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매와 목계…트럼프 “시진핑이 반미 음모 꾸며”

1945년 미국이 ‘파시스트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지 않았다면 중국이 전승할 수 없었던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킨 것이다. “반미 음모를 꾸미는 당신이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안부를 전해 달라”며 냉소를 날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실시간으로 베이징 행사를 보고 있었다.

매와 목계의 대결-. 세계 1강과 2강의 무력이 전면 대치하는 형국이다. 한국은 대비할 국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나.

1950년 4~5월,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찾아 스탈린으로부터 남침 허락을 얻고, 다시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의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6월 남침 전쟁을 일으킨다.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1954년, 마오쩌둥·흐루쇼프·김일성 3자가 톈안먼 망루에서 만났다. 한국은 더 위험해졌다. 살아남을 길은 한미 동맹뿐이었다. 다행히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그 1년 전, 가까스로 동맹을 구축했다.

2015년의 톈안먼 망루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생존을 위한 권력투쟁에 바쁘고, 시진핑은 한국의 경제력을 존중하던 시절이었다. 북한의 위상은 낮았고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박근혜 자리에 김정은이 섰다. 역사의 부침과 순환이다.

2025년의 베이징 전승절은 군사쇼 이상이었다. 개량형 둥펑 극초음속 미사일, 핵장착 가능한 초대형 드론 잠수정 등 최신형 전략무기가 등장했다. 중국이 공격적인 대미 포위 구상을 천명한 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트럼프와 잠시 대화한 뒤 바로 중국의 손을 잡았다. 북한은 관영매체가 김정은의 동선을 실시간 중계해 ‘대국의 일원’인 듯 뽐냈다. 트럼프의 서방세계 줄세우기와 핵을 가진 북·중·러 권력자들의 만남이 열전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한국 정치는 ‘우물 안 개구리’…초당적 협치해야

한국은 또 한번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기회자로 거듭날 것인가. 지정학적 숙명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대응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의 파트너로서 국방과 외교의 창조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한국 내부다. 당파적 이익을 위해 국익을 희생시키는 ‘우물 안 개구리’ 정치가 치명적이다. 외부에서 전운이 감도는데 집안싸움으로 날이 새고 저문다. 국력 가라앉는 소리가 들린다. 북한이 핵무력으로 70여 년 전처럼 우리를 공격해도 정치권은 싸우기만 할 건가. 한국이 격랑을 헤쳐나가는 능동적 행위자여야 할 때가 왔다. 주도면밀한 외교, 튼튼한 국방, 냉철한 국가 정보, 초당적 협치, 국민 단합이 필요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다시 시험을 내고 있다. 답안을 제대로 써야 한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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