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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내란특별재판부는 합헌’ 파장…입법+행정 vs 사법 ‘삼권 충돌’ 조짐
입법부-사법부 권력 서열로 등급화…“사법부 구조,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것 아냐”
12일 오후 전국법원장회의 개최…법조계 “조 대법원장, 적극적 입장 표명 필요”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시도를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의 개혁 움직임에 사법부가 법리적 해석을 방패로 삼아 반발하는 것은 ‘권력 서열’ 구조를 벗어난 것이라며 삼권분립의 두 기둥에 등급을 매겼다. 사법 개혁 ‘5대 의제’와 함께 치열한 위헌 공방이 벌어진 쟁점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도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집권여당의 ‘개혁’ 세력과 ‘더 센 개혁’ 세력 간 충돌을 예의주시하며 반격을 준비하던 사법부는 예상치 못한 이 대통령의 일성에 더욱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라 사법부의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저항 방식과 수위에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사법부와 입법부 간 갈등의 불씨가 행정부로까지 확산하며 ‘삼권(三權)’의 대립과 충돌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공동취재단

李 “국민주권 의지 반영된 입법부가 서열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9월11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정국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검찰·사법 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구속영장 기각을 기점으로 민주당이 쏘아올린 내란특별(전담)재판부 설치 입법에 대해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헌법에 위배되는 사안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사실상 내란재판부 설치에 힘을 싣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또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주권을 위임받은 곳으로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사법부의 구조는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법부가 선출 권력인 입법부의 결정을 두고 법리를 내세워 반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삼권분립 위배’ 논리 속 민주당의 입법 강행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낸 사법부를 직격하는 발언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삼권분립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사법부 독립이란 것이 사법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은 국민에 달렸다”며 “대한민국에는 권력 서열이 분명히 있다.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것”이라고 했다. 선출 권력이 아닌 사법부가 입법부보다 앞설 수 없고,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를 더더욱 용인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월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사법’의 역할이 어느 시점부터 전도되기 시작했다며 “사법이 모든 걸 결정하고 정치가 사법에 종속됐다. 결정적 형태가 정치 검찰이고, 나라가 망할 뻔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자신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와 연쇄 기소, 대선 전 조희대 대법원장을 필두로 이례적 속도의 공직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등이 이어진 점을 정면으로 겨눴다. 그러면서 “절제와 자제가 사법의 가장 큰 미덕이고, 국민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 국민의 주권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사법정책의 방향도 여론과 따로 갈 수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특검법 처리를 두고 야당과의 ‘거래’ 의혹이 불거지며 민주당 내홍이 격화한 중심에 대통령실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더 센 특검법 개정안’을 두고 국민의힘 요구 일부를 수용하기로 했던 여야 원내대표 회동 결과에 대해 “내란의 진실을 규명하고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 다시는 대한민국에 친위 군사쿠데타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고 반박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전개된 수사와 재판에 대해서는 ‘내란 종식과 회복’이라는 원칙을 세운 만큼 타협하거나 물러설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가운데)과 조희대 대법원장(맨 오른쪽)이 6월4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재명 대통령(가운데)과 조희대 대법원장(맨 오른쪽)이 6월4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저격당한 사법부…조희대, 작심 발언 내놓을까

9월12일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한 사법부와 법조계의 반발 수위는 한층 더 세질 전망이다. 대통령실이 “이 대통령은 내란특별재판부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국회에서 안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입장 표명은 시기상조라고 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정반대 상황이 전개되면서 당혹감도 감지된다. 

2025년 9월을 기점으로 임기 반환점에 접어든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이 ‘임기 100일’에 쏟아낸 고강도 ‘경고’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2023년 12월 취임한 조 대법원장은 ‘정년 70세’ 조항 때문에 6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27년 6월에 물러난다.

이 대통령의 일격 앞에 1년9개월 남은 조 대법원장 임기 전체가 입법·행정부와의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정권 초반 확실한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정부·여당과 임기 후반부에 접어든 조 대법원장 모두 사법 개혁 구상 앞에서 ‘시간 혈투’를 벌여야 한다는 의미다. ‘원칙주의자’로 평가받는 조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으로 사실상 마지막 공직의 궤적을 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반발과 대응 수위를 놓고 고심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 대법원장이 어떤 반격 카드를 꺼낼 것인지, 분수령은 긴급 소집된 전국법원장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여당이 쏘아올린 사법 개혁 ‘5대 의제’ 및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9월12일 오후 2시 전국 각급 법원장회의를 소집했다. 천 처장과 법원장들은 법관들이 사법 개혁 핵심 쟁점과 관련해 개별적으로 내놓은 각론을 토대로 총의를 모아나갈 계획이다. 법원장 임시회의 소집은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만이다. 매년 12월 개최되는 정례 법원장회의를 불과 3개월 남겨두고 법원장 전원이 모인다는 자체로 사법부가 정부와 민주당에 던지는 ‘반발’ 메시지는 명료하다. 회의를 전후해 이 대통령과 입법부를 겨냥한 조 대법원장의 ‘작심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조 대법원장은 민주당 사법개혁특위가 ‘10월 추석 전 본회의 통과’를 예고한 △대법관 증원(14명→30명에서 26명으로 증원 규모 조정)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의제와 내란특별재판부 구성을 골자로 한 사법 관련 법안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의 ‘의중’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국회에서 발신한 메시지와 행정처 명의로 제출된 의견서 등을 통해 확인돼 왔다. 통상 상고심 재판을 관장하는 대법원은 사법정책과 관련한 견해를 직접 밝히지 않고 행정처를 통해 입장을 전한다. 때문에 대법관 증원과 추천 방식 및 법관 평가 제도 개선에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의 위헌성 및 독립성 침해 요소를 지적한 천 처장의 발언은 곧 조 대법원장의 견해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이 내란특별재판부 설치까지 꺼내든 것을 “이례적 비상 상황”이라며 초유의 사법부 흔들기로 규정했던 천 처장의 진단 역시 조 대법원장의 판단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여기에 이 대통령의 직접 참전까지 더해지며 이례적 비상 상황을 둘러싼 긴장감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표면적으로 무거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을 두고 이 대통령 사건 상고심사건을 초유의 속도전으로 유죄 취지 파기환송해 여당의 공세를 자초한 측면이 있고, 법원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이 제기됐던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조 대법원장은 8월28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외부 행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분열이 매우 극심해지고 사법 환경의 미래가 불투명한 가운데 법의 지배가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정치 논리로 인한 외풍(外風)으로 법치주의가 위기를 맞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헌법과 법률에 담긴 국민 전체의 뜻과 양심에 따라 어떠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행사해 민주적 기본 질서와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며 “특히 재판의 독립 없이는 사법부가 결코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고, 이는 법원과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의 바탕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사법부를 겨냥해 쏟아내는 법안과 일련의 움직임이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엄중한 인식을 표출한 것이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9월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9월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위헌적 요소 많아”…문형배도 공개적 우려 

사법부를 조여오는 입법부의 압박 강도가 높아지면서 법원을 비롯해 법조계 내부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직’을 걸고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관 시절 다수 의견과 배치되는 법리적 소신을 펼치며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불렸던 조 대법원장이 좌고우면 없이 삼권분립 정신에 입각해 사법부의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비영리 변호사 단체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상임대표이자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현 변호사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는 헌법과 민주주의 근본 원리에 위배된다”며 즉각적인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담은 성명을 발표하는 동시에 조 대법원장의 적극적인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삼권분립 흔들기 시도에) 조 대법원장이 소극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며 “사법 개혁안에 대한 조 대법원장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천 처장이나 법원행정처 명의로만 나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합헌 판단’을 오히려 법적 논의와 반박을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큰 틀에서의 내란재판부 설치 여부만 놓고 ‘위헌은 아니다’는 언급을 내놓은 것이지,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 세부내용까지 반영해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현직 고법 판사는 “현재 법원이 운영하는 가정법원, 특허법원 등도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에 특별 또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것 그 자체를 위헌으로 보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는 “그러나 민주당 법안에는 국회가 특별재판부 법관 추천위원회에 포함돼 있어 사법부 독립 침해 소지가 크고, 이미 내란 혐의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세부 내용에서 위헌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이대로 법안이 통과된다면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법원장회의에서 이에 대한 중지를 모아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 전 의원도 “특별법안의 재판부 판사 임명 규정은 헌법의 법관 임명에 관한 조항에 정면으로 위반돼 위헌”이라며 “법관 임명에 사법부 외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04조 제3항에 위반되며, 우리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을 상고심에서 배제토록 해 사실상 전원합의부 재판 성립을 차단한 조항과 특별재판부에 배정될 법관에 대한 별도의 자격을 규정해 놓지 않은 점 등도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내란 프레임을 만들려는 정략적 입법”이라고 일갈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선고를 이끈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역시 이재명 정부의 사법 개혁 추진 방향에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문 전 권한대행은 9월10일 서강대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을 통해 “사법부의 권한에 대한 존중이나 관용 없이 개혁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여당의 일방적인 ‘개혁 강공 모드’를 비판했다. 문 전 권한대행은 “사법부가 잘못하면 당연히 비판해야 하지만 ‘사법부 너희가 뭔데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고 말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쓴소리를 냈다. 그는 이어 “사법 개혁의 지향점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며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도 이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9월12일 출근길에 사법 개혁 관련 입장을 묻는 질의에 “사법의 본질적 작용, 현재 사법 인력의 현실, 또 어떤 게 가장 국민에게 바람직한지 이런 것들도 공론화를 통해 충분히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이 ‘내란특별재판부는 위헌이 아니다’는 명시적 입장을 밝힌 데 대해선 “종합적으로 대법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입법과정에서 일부분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계속 국회와 협의하고 설득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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