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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명, 차기 대선후보 경쟁 원천 차단…李가 與에 가장 쉬운 상대일 수도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민주주의도 죽지 않는다.” 11월1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 법원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튿날 열린 민주당 장외집회에서 한 말이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이 집회에 참가하며 유튜버들과 나눈 영상에서 “일부 언론이 민주당에 숨죽이던 비명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한다)”며 “(비명계가)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고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유신독재 시절에 많이 들었던 ‘사법살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18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법살인”이라며 “실제 발언을 왜곡, 짜깁기한 것을 유죄로 인정한 판결은 전제부터 틀렸고, 심지어 헌법재판소 판결과 대법원 판례마저 무시한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그런가 하면 김민석 최고위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유무죄에 있어서는 합리성을 잃었고 양형에 있어서는 감정을 드러냈다”고 1심 판결을 비판하며 “이재명을 죽여야겠다고 작심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 행동의 날’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 행동의 날’에 참가해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巨野, 유신독재 때 나오던 ‘사법살인’ 발언까지

아무리 법원의 판결이 불만스러워도 “판결은 존중하지만…” 정도의 의례적 멘트는 깔고 비판하던 게 정치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의례적인 전제조차 없이 곧바로 법원에 대한 직격에 나선다. 그만큼 민주당 친명계의 상황 인식이 다급하고 절박하다는 의미다. 1심 형량이 항소심을 거쳐 상고심에서 그대로 확정되면 이 대표는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민주당은 국고에서 지원받은 대선 비용 434억원을 돌려줘야 하는 부담도 껴안아야 한다. 

21대 대선은 2027년 3월3일 실시되니, 그 이전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을 것인가는 차기 대선 구도의 큰 변수가 됐다. 그런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심과 3심은 각각 앞서 선고가 나온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끝마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번 1심 선고는 이를 어기고 2년2개월여 만에 나왔지만, 이제 차기 대선 구도를 좌우하는 엄청난 변수가 되었으니 법원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내년 중에는 확정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에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앞으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산 넘어 산’이기 때문이다. 당장 11월25일에는 위증교사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온다. 이 대표는 2018년 12월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였던 김진성씨에게 전화해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위증해 달라고 요구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기소됐다. 검찰은 선거법 사건보다 무거운 징역 3년을 구형한 상태다. 대체로 위증교사 행위는 형량이 무거운 편이라 이 사건에서도 유죄 판결이 나오면 이 대표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 외에도 대장동·백현동 등 각종 특혜 의혹 사건,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으로도 각기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11월19일에는 경기도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다만 내용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이들 사건의 1심 선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 대선 이전에 확정 판결까지 나오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1심 선고가 11월인 두 사건의 판결만으로도 이 대표의 대선 출마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민주당 친명 지도부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비명계의 움직임에 따라 민주당의 ‘이재명 일극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총선을 치르면서 워낙 비명계에 대한 ‘공천 학살’을 했기에 비명계의 목소리는 예전 같지 못한 상태다. 

 

法 존중하지 않는 민주당 국회의원들

그럼에도 친명 지도부로서는 당 안팎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큰 대표직 사퇴 요구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지도부와 친명계는 1심 판결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이 대표와 당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언해 당내 균열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의 분열을 막고 결집을 이루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무기는 ‘외부의 적’을 향한 투쟁이다. 당장 민주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김건희 국정농단으로 인한 정권의 위기 상황을 오직 이재명이라는 정적 제거와 제1야당인 민주당 탄압을 통해 모면하려는 치졸한 공작에 야합한 정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를 앞두고도 법원을 압박하는 장외집회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법원을 비난하며 압박하는 민주당의 모습이 법원을 자극해 이 대표에 대한 형량을 오히려 무겁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많다. 이미 공직선거법 사건의 1심 선고가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으로 나온 데도 그런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분간 민주당은 법원을 비난하며 압박하는 규탄전을 계속 벌일 것이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투쟁 수위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에서의 새해 예산안 심의에도 영향을 주어 한층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민주당의 반응은 우리 정치사에서 지켜봤던 상식적인 대응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 마음에 들든 아니든, 일단은 승복한다는 전제 위에서 항변을 해도 하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룰이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마디로 법원의 판결에 대한 불복이다. 2심과 3심에서 법리적 다툼을 하면 될 일을 가지고 이렇게 법원의 판결을 정치적으로 규탄하는 모습은 법을 존중해야 하는 국회의원들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혹여 이 대표의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질까 노심초사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도 의아하다. 민주당에는 이른바 ‘신(新)3김’으로 불리는 김부겸 전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같은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있다. 확장성 면에서 유권자들의 호불호가 뚜렷한 이 대표에 비해 이들의 경쟁력이 약하다고 예단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힘에는 이 대표가 가장 쉬운 상대일 수도 있다. 공당(公黨)에서 차기 대선후보는 누구 아니면 절대 안 된다며 경쟁을 원천 차단하려는 친명 지도부의 모습은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특정인만이 대선후보가 되어야 하고, 1심 선고에서 징역형의 판결이 나와도 대표직 사퇴 불가의 선을 미리 긋는 모습은 사당(私黨)의 모습이지 공당의 모습은 아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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