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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퇴진 압력에도 버텼으나 대항마 나타나자 당황
가족·지인들 만류 분위기에 “고민 중” 전언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2024년은 수모의 시간이다. 후반기에만 두 차례 국회에 불려 나가 여야 가리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호통과 비판을 들어야 했다. 본업인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주광역시에서의 잇단 붕괴 사고와 부실 공사로 인해 국민적 공분을 살 때도 피했었던 국정감사에 불려 나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여야가 일치된 분위기를 내기 어려운데, 축구가 여야 통합을 이뤄냈다”며 정 회장과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비유했다.

재벌, 그리고 인기 스포츠 종목의 수장으로서 갖고 있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났다. 정 회장의 눌변도 화제였다. 국회의원들의 공세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모습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러디가 됐다. 국회뿐 아니라 ‘용산’에서도 정 회장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 중간 결과를 보고받은 뒤 “여러 의혹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확실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악연’의 시작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국가적 사기 진작을 위한 대형 국제 이벤트 유치에 초점을 맞췄다. 부산 엑스포와 더불어 주목한 것이 아시안컵이었다. 당초 개최국이었던 중국이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개최권을 아시아축구연맹에 반납하자 대한축구협회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1960년 대회 이후 60년 넘게 아시안컵 우승이 없는 상황에서 손흥민, 이강인 등 황금세대의 전성기에 홈에서 트로피를 들겠다는 목표였다. 

대통령실은 대한축구협회·문화체육관광부에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유치를 지시했다. 2022년 6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전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등장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관전했고, 정몽규 회장 등과 담소를 나눴다. 취임 후 문화체육계 관련 첫 외출이었기에 훈풍이 불었다. 당시에도 정 회장에게 아시안컵 유치를 거듭 당부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0월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0월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정몽준 이어 축구계 남을 업적 남기려 해

하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카타르와의 개최권 투표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 문제는 경쟁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과 카타르의 유치 경쟁이 호각세라는 분석을 보고했다는 점이었다. 잔뜩 기대만 올려놓고, 현실은 헛된 꿈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축구협회에 대한 정부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대표적인 게 카타르월드컵 이후 선수단 초청 만찬이었다. 16강이라는 성과를 달성한 데 대한 격려 자리였지만 정작 단장이자 축구협회 수장인 정몽규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아시안컵 유치 실패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아서 물러나라”는 정부의 종용과 “이제 그만두라”는 여야의 하나된 공세로 인해 코너에 몰린 모양새지만, 정 회장은 대한축구협회 수장 자리를 4년 더 지키려는 분위기다. 2012년부터 3연임을 했음에도 4선까지 기어코 하려는 것이다. 정 회장은 국정감사 당시 4선 연임을 포기하라는 주문에 “오직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심사숙고하겠다”며 여지를 남겨뒀다. 속내를 확실히 밝히진 않았지만 지난여름부터 정 회장은 측근들과 출마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규 회장이 자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현대가(家)’의 오랜 투자로 인해 축구협회장이 마치 가업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정 회장의 사촌형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1993년부터 16년간 축구협회장을 맡았고, 이후 축구인 출신 조중연 회장이 4년을 맡은 뒤 다시 정몽규 회장이 12년을 이끌었다. 정몽준 전 회장 시대에 한국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 전후로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그 자산을 물려받은 정몽규 회장은 사촌형에 비해 국제축구 외교나 획기적인 대내외 성과에서 괄목 성장을 이루진 못했다. 그래서 본인의 과업으로 여기는 것이 천안시 입장면에 짓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사업이다. 정몽준 전 회장이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남긴 것처럼 정몽규 회장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각오다. 기존에 대표팀이 쓰던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의 4배 규모인 축구종합센터 건립을 위해 축구협회는 사업비만 1500억원 넘게 쏟았고, 올해 초 615억원짜리 마이너스통장까지 개설했다. 내년 개장 예정인 축구종합센터 건립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중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 목표를 위해 4선을 꿈꾸고 있다.

정몽규 회장이 정부와 정치권의 거센 견제에도 4선을 고려하는 건 판세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내 스포츠공정위원회의 허가를 받으면 정 회장의 4선을 막을 방법은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회장 선거, 감독 선임 등에 정치적 개입을 금지하기 때문에 문체부도 정 회장의 4선 도전을 강제적으로 막을 방도가 없다.

게다가 정 회장은 첫 선거를 제외하면 재선과 3선은 도전자 없이 수월한 선거를 치렀다. 이번에도 현대가의 눈치를 보느라 대다수 축구인이 선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1월18일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출마 의지를 나타냈다. 허 전 감독은 1970~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한 스타플레이어에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끈 지도자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을 역임해 행정 경험도 충분한다. 당초 허 전 감독은 정 회장의 불출마 시 회장직에 도전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최근 정 회장 거취와 관계없이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3년 5월2일 서울 앰버서더호텔에서 열린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한 허정무 ⓒ뉴시스
2023년 5월2일 서울 앰버서더호텔에서 열린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한 허정무 ⓒ뉴시스

허정무 “한국 축구 위기에 축구인 나서야”

국민적 인지도가 높은 거물 축구인이 대항마로 나서자 정 회장 측도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는 200명의 대의원이 참가하는 투표 방식으로 이뤄진다. 선거인단은 시도협회장, 산하 연맹회장, 지도자, 심판, K리그 구단 대표자, 선수 등을 10배수로 뽑고 컴퓨터로 무작위 선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미 12년의 재임 기간 동안 정 회장은 충분한 스킨십을 해왔고, 선거인단 70%가량의 지지를 받는다는 자체 판단을 내리고 있다.

문제는 앞선 세 차례 선거와 비교해도 어느 때보다 많은 내부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 그리고 대한축구협회 노조는 공개적으로 정 회장 퇴진과 4선 반대를 표명했다. 허 전 감독은 “한국 축구의 상황이 이런데 축구인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지적에 결심이 섰다”고 출마 배경을 소개했다. 국민 여론뿐만 아니라 축구계의 돌아선 민심이 막상 투표 때는 대반전을 일으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허 전 감독은 정몽규 집행부 1기 당시의 부회장이었기에 그 도전이 부담스러운 건 정 회장이다. 거듭되는 정치권의 비판, 국민적 반감으로 인해 정 회장의 가족과 지인들도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며 만류하는 분위기가 있어 깊이 고민 중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정몽규 회장은 4선 도전을 위해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안건 접수는 12월2일이다. 결국 그 전까지 4선 출마 의지를 밝힐 수밖에 없다.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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