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헌재 임명·특검 보류’에…巨野 “내란총리냐” 탄핵 소추
韓 대행, 23일 국무회의에서 최상목에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하세요”
與도 반발…“이재명 대통령 만들기 위해 ‘무정부 상태’ 만들어”
정치 ‘카오스’ 상태로…“여야 힘겨루기에 민생 파탄” 비판도
비정상의 정치가 정상을 압도하고 있다. ‘비상계엄→대통령 탄핵소추→대통령 대행 탄핵소추’로 이어지는 불행·불신·불안의 쳇바퀴가 대한민국 정국의 중심에 섰다. ‘정치와 법치’를 흔든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국정과 경제’를 안정시킬 정치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그 공백을 메우는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을 끌어내렸다. 한 대행이 ‘쌍특검법’(내란일반특검법·김건희여사특검법) 추진에 제동을 걸고,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명을 망설인 것이 ‘윤석열 방탄’ 목적이라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한덕수 “민주당의 일방적인 정치적 요구에 굴종하지 않겠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은 ‘탄핵의 강’을 앞두고 ‘치킨 게임’ 같은 정면충돌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다수당으로서의 힘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지상과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권한대행 탄핵을 통해 ‘대행의 대행 체제’로 가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다. 여당도 물러서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계엄 사태에 대한 반성을 우선하기보다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은 안 된다’는 단 하나의 기치 아래 강성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윤석열의 탄핵 시계’와 ‘이재명의 사법 시계’에만 골몰하는 탓에 국민의 삶을 지키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는 ‘정치의 본령’을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라 나온다.
대한민국의 키를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쥐게 되는 결정적 장면은 12월26일 나왔다. 한덕수 대행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이 요구한 ‘헌법재판관 3인 임명’에 대해 사실상의 거부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한 대행은 담화를 통해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 재판관을 임명하라고 권한대행을 압박하고 있는데 저는 오로지 국민을 바라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판단할 뿐”이라고 했다. 또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명시된 헌법기관의 재판관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면서 “특히 지금은 국가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하는 공정한 재판이 헌법재판관에 달려 있는 시점”이라고 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행은 이런 결심을 이미 굳히고 있었다. 취재에 따르면, 한 대행은 12월23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안 처리를 예감했는지 “최상목 경제부총리, 마음 단단히 먹고 나를 이어 (권한대행을) 맡을 준비를 하세요”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진다.
이 메시지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먼저 자신을 향해 야권이 쏘아올린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한 대행이 탄핵소추안 의결정족수 논란을 이유로 자리에서 버티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대행이 국회의 결정에도 농성 같은 버티기에 돌입한다면 국정에는 ‘대행의 대행 체제’ 이상의 혼란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최고권력 계승의 정당성 논란부터 행정 공백과 치안 관리 등에서 상당한 충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혼란을 피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한 대행은 야당이 요구한 ‘헌법재판관 3인 임명’에 대해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 대행의 이런 결정에는 한 대행 스스로가 바라보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자리했다고 전해진다. 한 대행을 잘 아는 지인은 시사저널에 “한 대행이 처음부터 민주당 등 정치권의 일방적 요구에 굴종하는 권한대행은 하지 않을 것이며, 50여 년 관료생활을 하면서 국민과 국익 중심으로 행동해 왔던 애국심과 명예를 버리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해왔다”고 전했다. 다만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정족수도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재적의원 3분의 2가 필요하다고 보는 만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소송을 내거나, 국민의힘을 통해 낼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알려졌다.
野가 만든 ‘대행의 대행 체제’…‘연쇄 탄핵 가능성’도
당초 정치권에선 ‘시한부 권력자’인 한 대행이 거야의 공세를 버틸 힘이 없다고 봤다. 한 대행 자신도 ‘내란죄 피의자’가 될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자신의 정치생명 생사여탈권을 야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 대행이 ‘대통령’이 아닌, 소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대행’에 방점을 찍은 행보에 나설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일부 쟁점법안을 비롯해 윤 대통령을 겨냥한 내란 특검법과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임명에서 야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은 빗나갔다. 거야의 압박에도 한 대행은 ‘정책의 일관성’과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야권의 요구를 모두 묵살했다. 한 대행은 우선 12월1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른바 ‘쌍특검법’(내란일반특검법·김건희여사특검법)에도 여야 추가 협상을 요구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 두 특검법을 “법리 해석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는 정치적 현안”이라고 봤다. 두 특검법은 법 시행일로부터 3일 이내에 야당이 추천한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으면 연장자가 특검을 맡도록 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사실상 야당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특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곧바로 한 대행에게 ‘레드카드’를 빼들었다. 한 대행이 노골적인 ‘윤석열 방탄’에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2월26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총리가 헌법상 책임인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권한대행이 아니라 내란대행임을 인정한 담화였다”며 “가장 적극적인 권한 행사인 거부권 행사를 해놓고, 가장 형식적 권한 행사인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 총리는 권한대행을 수행할 자격도 헌법을 수호할 의지도 없음이 분명해졌다”며 탄핵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한 대행의 ‘정치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거야의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야권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주장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여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합의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방어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대통령 대행이라면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최우선으로 두고 결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가결되면서, 국정의 운전대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어받게 됐다. 이로써 근·현대사에는 불명예의 기록이 한 줄 더 새겨지게 됐다. 총리 권한대행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0번째지만, ‘대통령 대행의 대행 체제’는 처음이다.
野 다시 ‘레드카드’…與 “이재명 말 안 들으면 탄핵”
일각에선 민주당이 처음부터 ‘한덕수 대행 체제’가 아닌 ‘최상목 대행 체제’를 선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 대행이 윤석열 정부 참모 중 비상계엄을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한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2월25일 MBC라디오에서 ‘최 부총리도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한 대행처럼) 탄핵 문제에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 부총리는 (계엄에)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박범계 의원도 같은 날 CBS라디오에서 “야당에 의해 일방 통과됐던 소위 감액 예산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집행할 의지를 표현했고, 경제 신인도와 관련된 여러 회의를 주재하는 등 한 대행보다는 좀 낫지 않겠는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 대행 역시 안전한 처지는 아니다. 그는 한 전 대행에 이어 ‘쌍특검법’의 공포 또는 거부권 행사와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숙제를 그대로 떠안게 됐다. 이 두 사안을 고민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쌍특검법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2025년 1월1일까지다.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특검법은 자동으로 효력을 갖는다. 특히 ‘한덕수 탄핵소추’의 도화선이 된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에 따라 ‘대통령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마저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최 대행마저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룬다면, 민주당은 다시 탄핵 카드를 빼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연이은 탄핵에 국민의힘은 반발하고 있다. 거야가 의석을 앞세워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를 만든 뒤, 조기 대선까지 ‘이재명 대통령 대행 체제’를 만들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다. 당장 힘에서 밀린 국민의힘은 법에서 회생 기회를 찾는 모습이다. 민주당이 ‘대통령 대행’을 ‘총리’의 자격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불법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의 3분의 2인 200명 이상이다. 반면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탄핵은 재적의원 과반인 151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의결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2월26일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의 주장처럼 국회 과반으로 한 권한대행을 탄핵한다면 그다음 권한대행 역시 과반으로 탄핵이 가능하다”며 “이와 같은 연쇄 탄핵의 결과는 바로 국정 초토화”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대행체제 도미노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고 권한’을 쥔 직원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사장 대행’을 계속 갈아치우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 탓에 대한민국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12월24일 방송된 시사저널TV 《시사끝짱》에 출연해 “대통령 탄핵안까지 가결됐는데, 그 대행마저 탄핵시키면 국무회의 자체가 무력화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입법부 독재가 시작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우리가 이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의식해 ‘권력의 공백’을 고의적으로 야기하고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헌법재판소(헌재)는 최장 180일 동안 사건을 심리할 수 있고,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그로부터 60일 내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된다. 헌재가 국정 공백 등을 고려해 인용 결정을 앞당길 경우 ‘벚꽃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선거법 재판 1심에서 이미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이 대표로서는 2·3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탄핵안을 난사하는 이유는 단 하나,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가려보겠다는 계산”이라며 “이 대표는 전과 4범이고, 현재 8개 사건,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이렇게 다양한 범죄 혐의를 받는 대선후보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의원이 이러한 무도한 일을 자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타협’ 사라진 정치에 국가 위기는 더 깊어져
‘비상계엄→대통령 탄핵소추→대통령 대행 탄핵소추’로 이어지는 불행의 쳇바퀴가 도는 사이, 대한민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더 가중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상식과 합리성이 아닌 당리당략에 따라 여야와 정부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그 지지 세력 간 충돌 역시 ‘건강하지 못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박상병 평론가는 “여야가 논리 없이 오로지 ‘힘 대 힘’으로 부딪치고 있다”며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탄핵 타이밍’에 있다. 민주당은 탄핵 시점을 당기고 싶어 하고, 여당은 최대한 늦추자는 태도다. 철저히 정략적인 힘겨루기”라고 봤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12월25일 페이스북에 ‘정치, 짜치게 하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리며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한 총리도, 윤 대통령도 제발 쪼잔하게 잔기술 부리지 말고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라”며 “지금 한국 정치의 위기는 소인배 정치가 판치고 있다”고 직격했다.
정상의 부재가 대한민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당장 ‘트럼프 2기’를 앞두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 컨트롤타워인 최 대행이 경제가 아닌 정치에 골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계엄·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2025년 1월20일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누가’ 갈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월24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이 동맹 등을 상대로 대대적 관세 부과와 보조금 재검토를 위협하는 와중에 한국은 정치적 혼란으로 트럼프 당선인에 대응할 정책에 구심점이 없는 상태라고 짚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한 기업 관계자는 FT에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정부에서 우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며 “지금 당장 투자를 철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