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만의 대통령’ 자처한 尹…‘무대응’으로 불만 드러낸 與 지도부
與 일각 “국민 통합 저해” 우려…대선 앞두고 尹 손절 나설 가능성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새해를 맞으며,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쉴 틈 없이 뛰어왔지만,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습니다. 새해, 더욱 새로운 각오로 온 힘을 다해 뛰겠습니다.”(2024년 1월1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중략)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2025년 1월1일)
1년 만에, 대통령 윤석열도, 그의 신년 메시지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수신자가 ‘국민’에서 ‘애국시민’으로 바뀐 가운데, ‘뛰겠다’던 윤 대통령은 이제 ‘싸우겠다’고 한다. 이런 대통령을 향한 여당의 모습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윤 대통령의 모든 메시지에 박수를 치며 결사옹위 자세를 보이던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번 신년 메시지에는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이 ‘오른쪽의 대통령’으로 전락하자, ‘윤심’을 쫓던 국민의힘 내 기류도 달라진 모습이다. 당 지도부를 친윤(親윤석열)계 복심 ‘권영세-권성동 투톱’이 장악했지만, 이들 입에서 ‘윤석열’이 언급되는 횟수가 점점 잦아드는 형국이다. ‘대통령 탄핵 시계’ 초침이 빠르게 돌기 시작한 가운데, 여당이 정권 사수를 위해 ‘윤석열 결별 손익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도부 장악한 친윤…뭉치는 보수 집토끼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30일 권영세 비대위원장을 구원투수로 올렸다. 한동훈 전 대표를 강판시킨 지 14일 만이다. 선장이 바뀌면서 당내 권력의 추는 친한계에서 친윤계로 확연히 기울었다. 친윤계 복심인 ‘권영세-권성동 투톱’이 당을 이끄는 가운데, 비대위 대부분을 범친윤계로 채웠다. 조직부총장인 김재섭 의원만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소장파로 분류된다.
‘탄핵 찬성파’가 당의 변방으로 밀리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 비대위가 사실상의 ‘대통령 변호인단’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실제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한동훈 전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계엄이 나오자마자 (한 전 대표가) 내용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위법·위헌으로 규정한 것은 문제”라며 “당분간 계속 (탄핵 반대 당론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후에도 ‘대통령 탄핵 반대’라는 당론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권 위원장은 취임 직후 ‘12·3 비상계엄’에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는 서면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담화 등 추가 사과 계획’과 관련해선 “이제는 앞을 보고 가야 할 때”라고 선을 그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을 향한 수사 등에 연거푸 제동을 걸고 있다.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과 관련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비상계엄 후 흩어졌던 ‘보수 집토끼’를 재결집시키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거야와 각을 세우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며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가 이뤄지자, 여당은 ‘거야의 정부 붕괴 시도’라는 프레임으로 역공에 나섰다.
실제 효과도 있었다.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해 12월29~30일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성인 1010명에게 지지하는 정당을 조사해 1월1일 발표한 결과, 민주당이 40.4%, 국민의힘이 35.7%를 기록했다. 양당 간 격차는 4.7%포인트(p)로 오차범위 내였다. 직전 조사였던 11월 둘째 주(11월10~11일) 조사에서는 양당 간 격차가 11.7%p였는데, 7주 만에 격차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11월10~11일 조사가 실시된 뒤 12월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12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12월27일에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도 가결됐다. 이후 국민의힘 지지도는 7주 전 30.2%에서 35.7%로 5.5%p 오른 반면 민주당 지지도는 41.9%에서 40.4%로 1.5%p 떨어졌다.(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ARS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9%,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에 대해 에이스리서치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폭 하락했다가 한덕수 권한대행의 탄핵, 국무위원 탄핵 등 정치적 사건들로 인한 보수층의 위기감으로 인해 중도보수층이 결집한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중도층의 반감 키우는 尹에 與는 ‘전전긍긍’
국민의힘은 ‘반격의 기회’를 잡은 것일까. 장담은 이르다. 문제는 ‘윤석열’이다.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가 아닌 그를 따르는 ‘태극기부대’와 함께 대야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실제 일부 ‘극우 성향 유튜버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부정 선거 이슈’를 재발화시키고, 내란 혐의를 벗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급기야 윤 대통령이 신년 메시지를 여당 지도부와 협의 없이 ‘기습 발표’하자, 여당 일각에서도 당혹감과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국민’이 아닌 ‘애국시민’, 즉 그를 따르는 강성 보수 지지층을 상대로 메시지를 낸 것이 불만의 기폭제가 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에 대한 통렬한 반성 대신 ‘우파의 대반격’을 택하면서, ‘반(反)이재명’을 기치로 범중도·보수 유권자를 포섭하려던 여당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1월2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탄핵 반대 집회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데 대해 “편지로 인해서 정말 진영 간의 충돌이, 실제 국민 간의 충돌이 이어질까봐 그 부분이 굉장히 우려스럽다”며 “양 진영의 국민이 충돌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대통령께서 법적·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국민들께 약속하셨지 않았나”라며 “수사라든지 헌법재판소의 심리 과정이라든지 당당하게 응하셔야 된다”고 촉구했다.
‘대통령 탄핵소추’를 강하게 비판해온 친윤계 역시 윤 대통령 신년 편지에 대한 언급 자체를 삼가는 모습이다. 권 위원장은 1월2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로부터 윤 대통령의 편지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고 “수석대변인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답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를 당이 감쌌다가는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전직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과 ‘나라’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즉, 그에게 ‘애국’이란 ‘윤석열 방탄’인 셈”이라며 “아무리 여당이라도 이런 대통령을 무조건 감싸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대통령 편에 서면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한 데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2인을 임명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존 6인 체제에서는 탄핵을 인용하려면 재판관 전원 찬성이 필요해 결론 도출이 어려웠지만, 8인 체제에서는 8명 중 6명만 찬성해도 탄핵안 인용이 가능하다. ‘윤석열 탄핵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진 셈이다. 조한창·정계선 신임 헌법재판관은 1월2일 취임식에서 각각 “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배격해야 한다” “난국을 수습하겠다”고 약속하며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했다.
與 ‘尹 손절’ 불가피? 조기 대선 준비 모드로
‘당심’과 ‘윤심’이 중요한 전당대회와 달리 전국 단위 선거의 경우 캐스팅보터인 ‘중도·수도권·청년’이 중요하다는 점도, 여당이 ‘오른쪽의 대통령’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한 한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격차는 0.73%p로, 헌정사상 최소 득표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서울에서 50.56%(325만5747표)의 득표율로, 이 후보의 45.73%(294만4981표)에 4.83%p 격차로 앞서며 승기를 쥐었다. 서울 집값이 크게 뛰면서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 득세했던 영향으로 풀이됐다. 3년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지금 당장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면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라는 악재를 끌어안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이미 비상계엄 후 ‘중도층의 탈보수화’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7~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5.5%) 국민의힘 24%, 민주당 48%로 나타났다. 선거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도층에서 지지도 격차는 더 컸다. 중도층의 46%가 민주당을 지지한 반면, 국민의힘은 13%에 그쳤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2%였다. 한국갤럽은 “진보층과 중도층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느냐’며 오히려 반격 타이밍을 찾고 있는 듯하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국민의힘이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당심과 일반 민심이 다르면 재집권이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대통령 윤석열을 지키면서 여당이 사는 ‘경우의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권영세 비대위가 대통령의 출당 및 제명을 비롯한 ‘윤석열과의 결별 방법’을 본격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비대위는 사실상의 조기 대선 캠프로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