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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십자군 운동? ‘세이브코리아’ 앞장서면서 尹 탄핵 반대 집회 전국적으로 확산
‘여야 대결’ 넘어 ‘체제 전쟁’으로 인식…尹을 무조건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

한국판 십자군일까? 12·3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친윤 기독교 세력이 빠르고 뜨겁게 확산되고 있다. 주말마다 서울 국회 앞 여의도 광장과 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대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수천에서 수만 명이 운집해 찬송가를 부르며, ‘윤석열 탄핵 무효’와 ‘이재명 구속’ ‘부정선거 검증’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기존의 강성 우파 기독교 정치 세력과 달리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파 기독교 주류 세력과 함께 2030 젊은 층, 그리고 대중적 명망가들이 3각 파고(波高)를 몰고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정치 전면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들어 전국 각지의 보수 우파 집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은 ‘세이브코리아’다. 부산에 있는 세계로교회의 손현보 담임목사가 주도해온 이 단체는 주로 차별금지법·동성애·이슬람 반대운동 등 비정치적인 종교 활동에 주력해 왔는데, 지난해 10월27일 광화문에서 100만 명이 모이는 거대한 연합 대예배를 성사시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초교파적·복음주의적 행사에는 한교총과 한기총·예장합동·예장통합 등 대표적인 개신교 단체 및 기구들과 함께 순복음교회·사랑의교회·금란교회 등 주류 개신교의 대형 교회들이 참여했다. 세이브코리아 측은 2024년 10·27 광화문 연합 예배 개최 과정에서 전광훈 목사 측과 갈등을 빚었고, 이후 주로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어 ‘여의도파’로, 전광훈 목사 측은 ‘광화문파’로 불리고 있다.

2월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연합 단체 세이브코리아(대표 손현보 목사)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8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개신교 연합 단체 세이브코리아(대표 손현보 목사)가 국가비상기도회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북·친중 우려…‘이재명 포비아’ 작동

손현보 목사 측의 여의도파는 과격하고 정치적인 전광훈 목사 측의 광화문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신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인지 2030 젊은 층과 주류 교회에서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탄핵 반대 집회에 대거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과 정권 유지 지지율이 높아진 이면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보수 개신교의 힘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향후 정국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보수진영의 외연 확장에 견인차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종교적 목소리를 내왔던 세이브코리아는 갈수록 정치적 목소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손현보 목사는 최근 여의도 탄핵 반대 집회에서 연단에 올라 구약의 열왕기상 17장 1절 말씀을 봉독하면서 이재명 대표를 성경 속의 폭압적인 북이스라엘 왕인 아합과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비유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는 악에 저항하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외쳤다. 이 모임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한국사 일타강사로 유명한 전한길씨(55)가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주요 행사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특유의 입담과 격렬한 표현으로 민주당을 맹렬히 비판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세이브코리아의 탄핵 반대 집회에서 연설한 이후 10여 일 만에 자신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50여만 명 늘어 100만 유튜버가 되었다. 구독자 77만 명이 넘는 그라운드C라는 유명 유튜버도 세이브코리아에 가세하고 있다.

세이브코리아를 비롯한 온건 보수 개신교 세력이 12·3 계엄 사태를 계기로 정치 세력화한 가장 큰 이유는 이재명 집권 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좌편향과 친북·친중 성향, 투쟁정치,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김건희 여사의 각종 논란, 역술 의혹 등으로 의기소침하거나 정치적 입장 표출을 자제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계엄이 선포되고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대에 올라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성큼 다가오자 꿈에서 깨어난 듯 ‘이재명의 위험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특히 긴가민가하던 부정선거론 의혹이 작용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엄령은 곧 계몽령”이라든가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친다. 일종의 ‘이재명 포비아’ 같은 것이다.

보수 개신교 측은 민주당이 180석이 넘는 거대 의석으로 윤 대통령뿐 아니라 방통위원장·중앙지검장·감사원장·국무총리 등 29차례에 걸쳐 무차별 줄탄핵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마침내 감액 예산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전대미문의 행정부 파괴로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붕괴시켰다고 생각한다. 급기야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의 체제가 반미적이며 친북·친중의 공산주의적인 색채를 띠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대통령에게 성경책을 넣어주었던 김진홍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티격태격했고, 점차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나아가다가 판이 커져서 자유민주주의냐, 북한식 공산주의냐로 확대되었다. 지금은 불리하지만 갈멜산 꼭대기의 제단처럼 꼭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윤석열이 옳으냐 그르냐로 출발했지만 12·3 계엄을 계기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전쟁으로 비화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수 개신교의 정치 세력화 이면에 종교적·신앙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에 우호적인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여야 정치권은 이들 온건보수 개신교 세력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尹 부부의 무속적 행태는 용납 안 해

위기에 몰렸던 국민의힘이 일단 힘을 얻게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보수 기독교계가 윤 대통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겠다는 목표로 움직인다. 윤 대통령의 교만과 자아도취, 김건희 여사의 무속 친화적 행태에 대해선 분명히 선을 긋거나 용납하지 않는다. 만일 윤 대통령의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면 그들의 정치적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전환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낮은 자세로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민주당도 보수 개신교 세력을 그저 극우 세력으로 치부하다 큰코다칠 수 있다. 그들이 이재명 대표에 대해 품고 있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크고, 자칫 기독교 세력을 거쳐 중도층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우려 탓인지 이재명 대표는 최근 ‘먹사니즘’과 ‘잘사니즘’ ‘흑묘백묘론’과 같은 중도 실용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다.

기독교계 전체가 정치 바람에 휘말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국가적으로 엄중한 시기에 ‘공의로움’을 중시하는 정통 보수 기독교계의 냉철한 판단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을 어떻게 볼 것인가? 넬슨(Nelson)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른바 ‘국가 지도자의 3S 모형’을 제시했다. 대통령이 강력한 힘으로 나라를 구하려고 한다면 ‘구세주형’(Savior Model)이지만, 반대로 강력한 힘으로 자신의 야심을 채우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면 ‘사탄형’(Satan Model)이다. 세 번째로 국민의 기대감은 큰데 능력이 부족해 부응하지 못하면 ‘삼손형’(Samson Model)이다. 윤 대통령은 어느 유형에 해당할까? 개신교 보수 세력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교계의 기도가 절실한 때인 것 같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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