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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309만원 직장인이 40년간 보험료를 낸다면…

여야가 18년 만의 연금 개혁에 극적 합의했다. 이번 연금 개혁은 과거와 달리 큰 홍역을 치르지 않고 이례적인 여야 합의를 연출했다. 저출생·고령화로 국민연금 고갈에 대한 위기의식이 절정에 달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금 개혁으로 국민연금 재정이 안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더 낸 만큼 더 받는다’는 기조로 개혁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받는 돈(소득대체율) 대비 내는 돈(보험료율)이 적어 수지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만으로는 국민연금 재정 안정과 노인 빈곤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향후 발족할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자동조정장치와 국고 선제 투입 등 재정 안정화와 지속 가능성 강화 방안 등이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연금 개혁으로 인한 변화와 향후 과제를 살펴봤다.

3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3월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5413만원 더 내고, 연금 2170만원 더 받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월20일 오전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에 최종 합의했다. 같은 날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2007년 이후 18년 만이자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세 번째 연금 개혁이다. 이번 연금 개혁의 핵심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한 것이다. 보험료율 4%포인트 인상이 단숨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2026년부터 2033년까지 8년간 매해 0.5%포인트씩 오른다.

따라서 2026년 보험료율은 9.5%가 된다.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309만8000원) 직장인의 보험료가 올해 27만8820원에서 2026년 29만4310원으로 증가하는 셈이다.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를 사업자와 절반씩 부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금 개혁 첫해인 2026년 월급이 309만8000원인 직장인이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는 7745원이다. 

보험료율 인상이 완료되는 2033년이 되면 309만8000원의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보험료는 수익이 그대로라고 가정하면 27만8820원에서 40만2740원으로 12만3920원 오른다. 지역 가입자는 전액, 직장 가입자는 절반에 해당하는 6만1960원을 더 내야 한다. 월급이 늘면 보험료는 거기에 비례해 더 늘어난다.

노후에 받게 되는 연금 수령액도 늘어나게 됐다. 소득대체율이 기존 40%에서 43%로 상향됐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은 연금 가입 기간 내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이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당시 70%이던 소득대체율은 1999년 60%, 2008년 50%로 하향 조정된 뒤 매년 0.5%포인트씩 인하됐다. 올해는 41.5%이며 2028년 40%까지 하향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금 개혁으로 2026년부터 43%의 소득대체율이 적용되게 됐다.

그렇다면 이번 연금 개혁으로 얼마를 더 내고, 얼마를 더 받게 될까. 월급 309만8000원인 직장인이 40년간 보험료를 납입하면 총 1억8762만원을 내게 된다. 현행 제도와 비교해 5413만원이 많다. 이 직장인이 은퇴 후 받는 첫 연금은 132만9000원으로 개혁 전보다 약 9만원 늘어난다. 이후 25년간 연금을 수령했다고 가정하면, 개혁 전보다 2170만원 많은 3억1489만원을 받게 된다. 평생 5413만원을 더 내고 2170만원을 더 받는 구조다.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은 종전대로 유지된다. 1998년 1차 연금 개혁 당시 재정 안정 차원에서 2013년부터 2033년까지 60세에서 5년마다 1세씩 연장돼 최종적으로 65세까지 늘어나도록 설계됐다. 현재 63세이며 2028년 64세, 2033년 이후 65세로 늦춰진다. 이미 국민연금을 수급 중인 700여만 명은 이번 연금 개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는 데다, 소득대체율은 미래 수급자들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번 연금 개혁으로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온 ‘연금 사각지대’도 일부 해소될 전망이다. ‘크레디트 제도’를 통해서다. 크레디트는 출산·군 복무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연금 소진 시점, 2064년으로 9년 연장

출산·입양 크레디트의 경우 현행 ‘둘째 아이부터’에서 ‘첫째 아이부터’로 범위가 확대됐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각각 12개월, 셋째부터는 18개월이 인정된다. 아이가 셋일 경우 총 42개월 가입이 적용되는 셈이다. 상한 50개월도 사라지면서 자녀가 많을수록 혜택이 커지게 됐다. 군 복무 크레디트도 복무 기간과 무관하게 현행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났다.

저소득 지역 가입자에 대한 지원 폭도 넓히기로 했다. 현재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납부 예외를 신청한 지역 가입자가 보험료 납부를 재개할 때만 최대 12개월간 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납부 재개 여부와 무관하게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면 보험료 절반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구체적인 소득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번 연금 개혁으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미뤄지게 됐다. 현행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 기금은 2041년 적자로 전환하고 2055년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가 적용되면 적자 전환은 2048년, 기금 소진은 2064년으로 각각 7년과 9년 연장된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기금수익률을 4.5%에서 5.5% 수준으로 높이면 소진 시점이 2071년으로 15년 추가 연장된다고 밝혔다.

물론 시기가 늦춰졌을 뿐 결국 기금 소진은 불가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험료율이 18.2%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금 개혁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내기만 하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번 개정안에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보장이 명문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법에는 ‘국가가 연금 급여의 안정적·지속적 지급을 위해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개정안에서는 이를 ‘국가가 연금 급여의 지급을 보장하고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한다’로 변경했다. 정부의 책임과 의무를 한층 명확히 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보장했다고 해서 지금 내고 받는 수준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출산·고령화 기조로 연금보험 가입자 감소와 수급자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제도 운용을 위해선 추가적인 구조개혁이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구조개혁 없이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거나 개인이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 수준이 급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 확보하기 위한 과제는?

그렇다면 국민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정부와 여당은 ‘자동조정장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경제 변화를 반영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현재 연금액에 반영되는 물가상승률 외에 인구 상황과 재정 여건 등을 추가로 반영해 자동으로 연금 지급 규모를 조정한다. 예컨대 저출생으로 인구가 줄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 연금도 줄어드는 식이다. 재정 안정화에 더해 재정 부담을 세대 간 균등하게 나누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정부는 당초 연금 개혁안에 자동조정장치를 포함했다. 국민연금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2036년에 자동조정장치를 발동하면 기금 소진 시기를 2088년(기금수익률 5.5% 적용 시)까지 늦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더라도 ‘연금액 인상 하한선’을 적용할 경우 납입 보험료보다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동조정장치는 실질적 연금 급여 삭감을 우려한 야권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개혁안에 담기지 못했다.

선제적으로 국고를 투입해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에 투입되는 정부의 재정 지원액은 공단 운영비 명목의 100억원 정도가 전부다. 올해 국가재정 총지출인 677조원의 0.0015%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0.8%씩만 투입해도 더 이상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고도 국민연금 재정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재원 마련의 첫걸음으로는 ‘연금소득세’가 거론된다. 공적·사적 연금 수령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인 연금소득세를 목적세 형태로 모두 국민연금에 자동 투입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2026년 7845억원 수준인 연금소득세 규모는 2030년 1조1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연금소득세를 국민연금에 투입할 경우 자동조정장치와 마찬가지로 재정 안정화는 물론 기성 세대와 청년세대 간 형평성을 맞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장기적으로 정년 연장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한국은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초과)에 진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노인 빈곤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이 늘어나면서 연금 고갈 시기를 추가로 지연할 수 있다. 여기에 정년퇴직 후 연금 수령까지 발생하는 소득 공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7월부터 13개 정년 연장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연금 개혁의 첫발을 뗐지만 앞으로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여야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후속 과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향후 연금개혁특별위에서는 연금 재정 안정과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조치와 국민·기초·퇴직·개인연금 등을 아우르는 국가연금제도 구조개혁 방안 등이 다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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