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무죄’로 대권 최대 장애물 넘어…비명계 ‘선수 교체론’도 수면 아래로
이제 尹 파면에 집중…‘마은혁 미임명’ 한덕수·최상목 ‘쌍특검’ 추진 여부가 관건
‘높은 비호감도→확장성의 한계’는 숙제…모든 권력 쥔 ‘이재명 포비아’도 큰 난관
“사필귀정(事必歸正) 아니겠습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선고 공판 직후 법원을 나서며 이같이 입장을 밝혔다. 2심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이날 원심의 유죄 판결을 깨고,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에서 무죄 선고 주문이 낭독된 뒤 이 대표는 재판부를 향해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법원 문을 나서며 그는 지지자들을 향해 안심해도 된다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선고 전 법정으로 향할 땐 취재진 질문에 “나중에 하자”며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이 대표는 선고를 마치고 나올 땐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한층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입을 뗀 이 대표는 먼저 2심 재판부에 감사를 표시하며 윤석열 정부와 검찰을 겨냥해 “이 당연한 일들에 국가 역량이 소진된 것이 참으로 황당하다”고 했다. 이어 “이재명을 잡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조작하느라 쓴 그 역량을 산불 예방이나 국민 삶 개선을 위해 썼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됐겠나”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입장을 밝힌 뒤 현장을 찾은 수십 명의 의원, 지지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그가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으며 의전 차량에 오르기까지, ‘승자의 여유’가 넘쳤다.
입지 좁아진 비명계, 일부 주자는 경선 포기도 검토
그야말로 ‘대반전’이다. 지난해 11월15일 1심 재판부는 야권의 유력한 차기 권력으로 꼽히는 이 대표에게 징역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정치 생명의 ‘시한부’ 판정과 같았다. 대권을 뜻하는 이른바 ‘별의 순간’이 멀어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단 4개월 만에 ‘회복’ 판정을 받아냈다. 정치권 대부분은 1심에서 중형이 나온 만큼 형량이 줄더라도 최소한 유죄가 유지될 거라고 봤다. 그러나 예상은 깨졌다. 180도 뒤집힌 완벽한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 대표의 정치적 생명과 입지 또한 기사회생의 대반전을 맞이하게 됐다. 별의 순간이 다시 이 대표를 향해 성큼 다가온 셈이다.
사실상 이 대표는 이번 무죄 선고로 대권으로 가는 길의 ‘가장 큰 산’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이날 선고는 이 대표의 최대 고비로 평가됐다. 선거법 위반은 정치인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는 것은 물론 5년간 선거 출마도 불가능해진다. 징역형이 나오면 10년간 출마가 불가능하다. 다른 혐의 재판엔 없는 6·3·3(1심 6개월, 2·3심 3개월 내 판결) 원칙도 적용된다. 이 대표 2심 역시 상당히 서둘러서 진행됐다. 이 대표가 두 차례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는 등 지연 전략을 폈지만, 재판부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이 대표는 더 빨리 치명적인 리스크를 털어낼 수 있게 됐다.
물론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그 전에 3심 대법원 판단이 나올 가능성은 애초부터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선고만 남겨둔 만큼 탄핵이 인용돼 대선이 치러지면 길어야 최대 60일이다. 그 안에 대법원 판단이 나올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법조계 대다수의 전망이었다.
그럼에도 2심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선고됐다면 이 대표에겐 치명타가 됐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당내 비명(非이재명)계를 중심으로 ‘후보 교체론’이 거세게 터져 나오는 기점이 됐을 거란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는 비명계 인사들이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믿는 구석’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무죄를 받아내면서 비명계의 명분은 약화하고 이 대표의 대권 독주 체제는 더욱 굳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취재에 따르면, 비명계 일부 주자는 이번 판결로 ‘이재명 대세론’이 굳어졌다는 판단에 따라 조기 대선이 열리더라도 당 경선 출마 포기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현재진행형이다. 선거법도 3심 판결이 나오기까진 끝난 게 아니며 이외에도 총 5개의 재판이 놓여 있다.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쌍방울 대북 송금,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 등이다. 그중 선고가 나온 건 선거법 외엔 위증교사 사건뿐이다. 위증교사 사건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무죄가 나온 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후로도 여전히 이 대표를 따라다닐 것은 분명하다.
다만 정치인에게 중요한 건 사실 여부보다 유권자의 인식이다.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선거법 재판이 거의 유일하게 선거 전에 선고가 나올 수 있는 사건이었던 만큼 여권도 이를 고리로 이 대표를 적극 압박해 왔다. 그에 따라 선거법 재판은 이 대표의 최대 리스크로 부각됐고, 역설적으로 선거법의 위협이 해소되자 이는 마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것처럼 유권자들의 인식에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최대 리스크’가 ‘최대 호재’로 뒤바뀌는 반전이다.
특히 이 대표는 이번 고비를 이겨내며 당 안팎의 견제를 동시에 누른 모양새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여의도의 한 정치 분석가는 “선거법 무죄 덕에 본인의 가장 큰 약점이자 경쟁자들의 공격 포인트인 사법 리스크 부담을 상당 부분 벗고 이 대표가 날개를 달았다고 보면 된다. 대권가도에 ‘청신호’가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 대표에게 앞으로 남은 고비는 뭐가 있을까. 일단 윤 대통령 탄핵이 제1 관건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을 복귀시키면 조기 대선도 없다. 즉 이 대표에겐 지금이 최적의 기회다. 3개의 재판이 아직 1심 선고조차 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대표를 위협할 개연성이 크다. 이 대표 입장에선 별다른 선고가 예정돼 있지 않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그런데 최근 헌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계속 늦춰지면서다. 당초 유력한 선고 시기로 예상됐던 3월 초·중순을 훌쩍 넘겨 4월로 넘어가게 됐다.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지난해 12월14일을 기준으로 3월24일에 100일을 넘겼다. 노무현(63일)·박근혜(91일) 전 대통령 때의 기록을 넘어 최장 기록을 경신 중이다. 이토록 선고가 늦어지는 배경엔 헌법재판관들 사이에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尹 복귀하면 또 사법 리스크 넘어야…조기 대선이 李의 ‘골든타임’
이 대표와 민주당이 최근 광화문에 ‘천막 당사’까지 설치하며 장외로 나선 것은 물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촉구하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재탄핵,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까지 거론하며 전방위적 공세를 펴는 것도 이러한 헌재 내부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거기엔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유죄 판결 대비 차원의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헌재가 아무리 늦어도 두 헌법재판관(문형배·이미선)의 임기가 끝나는 4월18일 전엔 선고를 내놓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안에 탄핵이 인용된다면 선거법 2심 무죄로 한숨 돌린 이 대표로선 결정적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이 기각되면 원래의 정치 일정인 2027년 대선까지 이 대표는 남은 재판들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고비를 또 넘어야 한다.
사법 리스크라는 외부의 위협을 제외하면 이 대표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결국 이 대표 자신으로 귀결된다. 우선 이 대표에겐 높은 비호감도라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 과제가 떠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여론조사기관 미디어리서치가 뉴스핌 의뢰를 받아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무선ARS 방식, 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 ±3.1%p, 응답률 5.5%, 자세한 내용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대표는 호감도(39.1%)와 비호감도(40.8%)에서 모두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호감도에서 2위인 여권 잠룡 오세훈 서울시장(9.5%)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지목률을 보였으나 이는 비호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대표는 비호감도 역시 2위로 나타난 오세훈(13.5%) 시장보다 3배 넘는 비호감도를 가진 것으로 집계됐다.
일각에선 이러한 비호감도의 주요 원인으로 사법 리스크가 지목되는 만큼 이번 선거법 무죄 판결이 이 대표의 비호감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반론으로 사법 리스크 중 일부가 해소됐다고 해서 비호감도에 영향을 미치진 않으며 오히려 반감이 강하게 작용해 비호감층의 결집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높은 비호감도는 결국 확장성의 한계라는 말과도 맥이 닿아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평가된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 패배를 경험한 이 대표에게 확장성의 한계는 일종의 ‘오답노트’다. 이 대표가 최근 이른바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중도·보수층에 손을 내미는 것도 이를 의식한 전략적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등장한 ‘K-엔비디아’ 발언 등이 오히려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점은 고민거리다.
‘이재명 포비아’ 왜?…‘여의도 대통령’의 역설
이 대표는 현재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상당한 정치적 입지를 갖고 있다. 170석(범진보를 합치면 189석) 과반 의석이라는 막강한 입법권력이 이 대표를 지탱하는 큰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역설이 발생한다. 그런 이 대표와 민주당이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포함한 행정권력까지 갖게 될 경우의 파장에 대해 민주당 지지층 밖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재명 포비아(공포증·불안감)’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에도 이러한 배경이 작동한다. 다시 확장성의 한계다. 중도·보수층 내에선 윤석열 정부의 독선만큼이나 이 대표 체제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 대선 이후 ‘야권 주도의 일방 입법’과 ‘거부권’으로 건건이 충돌하며 ‘적대적 공생관계’를 설정해온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에 대한 강한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윤 대통령에게도 실망했지만, 그 권력을 이 대표에게 주기엔 걱정스럽다’는 일부 여론의 시각은 윤 대통령이 퇴장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이 대표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최근 이 대표와 민주당은 ‘줄기각’으로 돌아온 ‘줄탄핵’ 역풍에도 또다시 한덕수 권한대행 재탄핵과 최상목 부총리 탄핵 카드를 꺼내며 ‘자충수’를 두는 모습도 반복됐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과의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내에서조차 “추가 사건을 (헌재에) 보내는 것은 윤 대통령 선고를 더 늦출 가능성이 있다. 실익이 없고 국민 피로를 높인다. 자제해야 한다”(이소영 의원)는 비판이 있다.
비토층과 정반대에 있는 이 대표의 ‘팬덤’ 역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은 이 대표에 대해 높은 충성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충성도만큼이나 강한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인해 전략적 인내심이 약하다는 한계를 지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에게 중도 확장은 물론 현재 몇 갈래로 나뉜 진보진영 통합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이 대표를 향한 팬덤의 특수성이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선거법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가장 무거웠던 족쇄를 떨쳐낸 이 대표는 끝내 자신의 ‘별의 순간’을 포착해낼 수 있을까. 이 대표는 2심 선고 직후 첫 공식 행보로 대규모 산불 피해가 발생한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은 이 대표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대표가 ‘민생’ 행보로 본격적인 대권 플랜 가동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는 당분간 ‘민생’ ‘경제’ 행보와 윤 대통령 파면 촉구의 ‘투트랙’ 전략을 펴나갈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여러 변수가 남았겠으나 민주당은 일단 이 대표 중심으로 강하게 결집하며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전략 수립에 나설 전망이다. 이 대표를 견제해 왔던 일부 비명계의 목소리도 당장은 힘이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계파색이 옅은 한 다선 의원은 “선거법 무죄로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이 대표로 사실상 정해진 것이라고 본다”며 “당내보다는 내란이라는 당 외부의 환경이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치게 하는 민주당의 구심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