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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유난히 길더니 마음의 추위도 함께 길어졌다. 이내 올 것 같았던 봄은 자꾸 지체됐고, 겨울이 남긴 불안은 때를 잊은 듯 퍼부었던 3월의 폭설처럼 느닷없이 차갑고 시리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늦춰지면서 국민의 일상은 ‘일시 멈춤’을 넘어 더 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상이 제자리를 되찾든, 다시 흔들리든 ‘밥심’이라도 잘 채워놔야 버틸 텐데, 그 밥 하나 챙기기도 쉽지 않다. 탄핵 정국이라는 긴 터널에 갇힌 서민들의 일상이 그렇게 또 고단해졌다. 여기저기서 탄핵심판 선고와 관련해 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민들의 삶 지키기 자체가 이미 내전 수준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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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민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식품류의 가격이 줄을 이어 올랐다. 라면값, 빵값, 햄버거값 등이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일제히 가격표를 바꿔 달았다. 통계에 나타난 수치도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1월 이후 네 달째 계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국민들의 먹고 살기와 밀접하게 연관된 농산물과 수산물의 가격 상승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농산물의 생산자물가는 지난 2월에 3.6%, 수산물은 1.0%가 올랐다. 물가가 이렇게 오르면 소비는 당연히 주춤해진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의 소비자심리지수는 93.4로 지난달보다 1.8포인트 낮아졌다.

밥을 스스로 챙겨 먹거나 사서 먹는 일 못지않게 밥을 팔아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생계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지금 사방에서 요란하다. 그 가운데 집회가 열리는 광장 근처의 상인들은 탄핵 정국의 파편을 맨 앞자리에서 맞는 피해자들이라는 점에서 눈겨여보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 부근에서 음식점 등 각종 매장을 운영하는 이들의 한숨이 특히 두드러진다. 빨리 끝날 줄 알았던 주변의 집회가 헌재의 선고 지연과 함께 오래 이어지면서 매출 감소의 수렁이 깊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임대료 내기가 벅차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한 상인의 말처럼 그들은 매일매일 전쟁 같은 날들을 견디는 중이다.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 대표는 “시위를 할 때마다 ‘너희만 힘드냐’는 댓글이 달린다. 자영업자는 국민에게도 짓밟히고 있다”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인권은 어디 있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헌재를 비롯한 집회 장소 인근의 상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당장의 매출 감소뿐만이 아니다. 일부는 불쑥불쑥 가해지는 사상검증의 압박에도 자주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잘못 걸리면 ‘좌파 식당’ ‘우파 식당’으로 낙인찍혀 이른바 별점 테러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음식에 좌파나 우파가 어디 있냐”는 한 식당 주인의 말은 극성 시위자들 앞에서 마냥 공허해질 뿐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와 국정 불확실성 속에 내수 경제의 한 축인 자영업·소상공인들의 기력이 나날이 쇠잔해 가는데도 아직껏 이렇다 할 물가 대책, 자영업·소상공인 대책은 감감소식이다. 

탄핵 정국을 하루빨리 마감해야 하듯 민생의 겨울도 서둘러 내보내야 한다. 국민이 편해야 나라가 편하고 민주주의도 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물가 안정, 산불 피해 복구·이재민 대책 등 지금 눈앞에 놓인 과제가 첩첩이다. 그런 만큼 정부와 국회가 탄핵 문제 외에 민생을 위해서도 무언가 ‘일’을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국민들의 허기는 그런 희망이 비쳐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채워질 수 있다. 

김재태 편집위원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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