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트럼프와 통화 시점부터 출마 고민…‘통상전쟁’ 역할론 두고 고심”
김문수 누르는 여론조사 결과도…“국민적 요구 형성되면 나서지 않겠나”
“대선의 ‘디귿(ㄷ)’자도 꺼내지 말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대선 차출설, 출마설 등이 고개를 들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주변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불과 몇 주 만에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출마설은 ‘대망론’으로 확산됐고, 여론조사에도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 대행은 공개적으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점점 더 무게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한 대행의 국민의힘 대선 경선 불참이 확정된 이후 더욱 커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최근 한 대행의 태도가 의미심장하다. 주변에 ‘디귿’자도 꺼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던 한 대행은 더 이상 주변을 자제시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과 관련해 쏟아지는 각종 추측과 혼란 속에서도 ‘대선 불출마’라는 핵심적인 한마디를 꺼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한 대행의 등판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고 관측되는 이유다.
“韓, 이재명이 美와 관계 잘 유지할지 걱정”
실제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행은 현재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고심 속에 있다. 이미 총리실 내에도 관련 내용을 검토하면서 준비하는 팀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당초 출마 의사가 전혀 없었던 한 대행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가 이뤄질 무렵이었다고 한다. 한 대행은 국제적인 통상전쟁이 본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할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행은 미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한국이 굉장히 어려운 국면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이 문제가 제대로 관리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한 대행을 갈등하게 하는 요인은 뭘까. 우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충고를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50년간 국가를 위해 일했으니 통상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손해도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출마를 권유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하나의 중대한 요인은 바로 명분이다. 한 대행의 출마 가능성에 민주당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비판이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국정 안정과 조기 대선 관리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즉 이런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한 대행이 나서겠다는 마땅한 이유가 필요하다. 경제수석, 주미 대사,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한 대행에게 지금의 통상전쟁을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조건적 명분은 있으나 실패한 전임 정부의 국무총리였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인 그가 이번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더 뚜렷한 시대적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 대행 쪽에서 주목하는 건 여론의 추이다. 여론이 받쳐준다면 시대적 명분이 완성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한 대행의 지지율은 주목할 만하다. 한 대행은 최근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 이름이 등장한 지 며칠 만에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너지경제신문 의뢰, 유권자 1506명 대상, 4월9~11일 조사, 표본오차 ±2.5%포인트)에서 8.6%로 이재명 전 대표(48.8%),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10.9%)에 이어 3위로 나타났다.
범보수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김 전 장관을 오차범위 밖에서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는 결과도 나왔다. 조원씨앤아이 조사(스트레이트뉴스 의뢰, 유권자 1023명 대상, 4월13~14일,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한 대행은 29.6%의 지지를 얻으며 21.5%의 김 전 장관을 눌렀다(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 대행의 한 측근 인사는 “‘한 대행만이 이재명 전 대표에 맞서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후보고, 작금의 통상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가 형성된다면 한 대행도 나서게 되지 않겠나”라며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일시적 현상이나 거품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1~2주 더 여론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그림자’는 韓의 딜레마이자 숙제
한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면 늦어도 5월4일(공직자 사퇴 시한) 이전에 의사를 밝혀야 한다. 대선 본선 후보 등록일은 5월11~12일이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한 대행이 출마하게 된다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혹은 ‘반(反)이재명 빅텐트’를 염두에 두고 결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부분이 한 대행 출마 여부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선 한 대행의 출마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한 대행이 경선에 불참하면서 경선을 뛰는 대권주자 중 일부는 당내에서 한덕수 대망론이 계속 나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표출하고 있다. 5강(김문수·나경원·안철수·한동훈·홍준표) 후보 중에선 특히 안철수·한동훈·홍준표 후보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본선 전 한 대행과의 단일화를 열어놓고 있는 후보도 있다. 바로 김문수 전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당내 대표적인 ‘한덕수 차출론자’인 박수영 의원을 캠프의 정책총괄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한 대행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어떤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느냐가 향후 단일화 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데, 한 대행이 일찌감치 결단을 내린 뒤 특정 경선 후보와 연대해 국민의힘 경선 결과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 대행이 대선 출마를 결심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딜레마로 작용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대행은 12·3 비상계엄엔 반대했으나 윤석열 정부 실패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현재 한덕수 대망론을 띄우는 여론의 중심엔 친윤(親윤석열)·반탄(탄핵 반대)파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윤심(尹心·윤 전 대통령의 의중)’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조기 대선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중도 확장 등 본선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 대행이 윤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이완규 법제처장 등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임자 2명을 지명했다가 4월16일 헌법재판소에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것 같은 장면들 역시 대선 과정에서 한 대행을 향한 중대한 질문으로 제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