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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트럼프와 통화 시점부터 출마 고민…‘통상전쟁’ 역할론 두고 고심”
김문수 누르는 여론조사 결과도…“국민적 요구 형성되면 나서지 않겠나”

“대선의 ‘디귿(ㄷ)’자도 꺼내지 말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대선 차출설, 출마설 등이 고개를 들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주변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불과 몇 주 만에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출마설은 ‘대망론’으로 확산됐고, 여론조사에도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 대행은 공개적으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점점 더 무게감을 얻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한 대행의 국민의힘 대선 경선 불참이 확정된 이후 더욱 커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최근 한 대행의 태도가 의미심장하다. 주변에 ‘디귿’자도 꺼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던 한 대행은 더 이상 주변을 자제시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과 관련해 쏟아지는 각종 추측과 혼란 속에서도 ‘대선 불출마’라는 핵심적인 한마디를 꺼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한 대행의 등판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고 관측되는 이유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韓, 이재명이 美와 관계 잘 유지할지 걱정”

실제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행은 현재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고심 속에 있다. 이미 총리실 내에도 관련 내용을 검토하면서 준비하는 팀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당초 출마 의사가 전혀 없었던 한 대행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가 이뤄질 무렵이었다고 한다. 한 대행은 국제적인 통상전쟁이 본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할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행은 미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한국이 굉장히 어려운 국면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통령에 취임할 경우 이 문제가 제대로 관리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한 대행을 갈등하게 하는 요인은 뭘까. 우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충고를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50년간 국가를 위해 일했으니 통상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손해도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출마를 권유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 하나의 중대한 요인은 바로 명분이다. 한 대행의 출마 가능성에 민주당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비판이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국정 안정과 조기 대선 관리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즉 이런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한 대행이 나서겠다는 마땅한 이유가 필요하다. 경제수석, 주미 대사, 통상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한 대행에게 지금의 통상전쟁을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조건적 명분은 있으나 실패한 전임 정부의 국무총리였으며 대통령 권한대행인 그가 이번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더 뚜렷한 시대적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 대행 쪽에서 주목하는 건 여론의 추이다. 여론이 받쳐준다면 시대적 명분이 완성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한 대행의 지지율은 주목할 만하다. 한 대행은 최근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 이름이 등장한 지 며칠 만에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너지경제신문 의뢰, 유권자 1506명 대상, 4월9~11일 조사, 표본오차 ±2.5%포인트)에서 8.6%로 이재명 전 대표(48.8%),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10.9%)에 이어 3위로 나타났다.

범보수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김 전 장관을 오차범위 밖에서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는 결과도 나왔다. 조원씨앤아이 조사(스트레이트뉴스 의뢰, 유권자 1023명 대상, 4월13~14일,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한 대행은 29.6%의 지지를 얻으며 21.5%의 김 전 장관을 눌렀다(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 대행의 한 측근 인사는 “‘한 대행만이 이재명 전 대표에 맞서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후보고, 작금의 통상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구가 형성된다면 한 대행도 나서게 되지 않겠나”라며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일시적 현상이나 거품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1~2주 더 여론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그림자’는 韓의 딜레마이자 숙제

한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면 늦어도 5월4일(공직자 사퇴 시한) 이전에 의사를 밝혀야 한다. 대선 본선 후보 등록일은 5월11~12일이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하지 않은 한 대행이 출마하게 된다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혹은 ‘반(反)이재명 빅텐트’를 염두에 두고 결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부분이 한 대행 출마 여부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선 한 대행의 출마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더욱이 한 대행이 경선에 불참하면서 경선을 뛰는 대권주자 중 일부는 당내에서 한덕수 대망론이 계속 나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표출하고 있다. 5강(김문수·나경원·안철수·한동훈·홍준표) 후보 중에선 특히 안철수·한동훈·홍준표 후보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본선 전 한 대행과의 단일화를 열어놓고 있는 후보도 있다. 바로 김문수 전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당내 대표적인 ‘한덕수 차출론자’인 박수영 의원을 캠프의 정책총괄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한 대행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어떤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느냐가 향후 단일화 등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데, 한 대행이 일찌감치 결단을 내린 뒤 특정 경선 후보와 연대해 국민의힘 경선 결과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 대행이 대선 출마를 결심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딜레마로 작용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대행은 12·3 비상계엄엔 반대했으나 윤석열 정부 실패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현재 한덕수 대망론을 띄우는 여론의 중심엔 친윤(親윤석열)·반탄(탄핵 반대)파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윤심(尹心·윤 전 대통령의 의중)’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조기 대선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 중도 확장 등 본선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 대행이 윤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이완규 법제처장 등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임자 2명을 지명했다가 4월16일 헌법재판소에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것 같은 장면들 역시 대선 과정에서 한 대행을 향한 중대한 질문으로 제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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