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오징어 게임 주식시장’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인들이 이 종목 저 종목을 마치 오징어 게임을 하듯 옮겨 다니면서 주가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학개미’로 불리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실제로 과감하고 위험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우리나라 개인투자자들이 제일 많이 사들인 미국 주식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2위와 3위, 4위가 모두 레버리지 ETF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3배로 따라가는 ETF(SOXL)를 한 달 동안 1조5000억원어치 사들였다. 그다음이 테슬라 주가 변동 폭을 2배로 추종하는 TSLL로 순매수 금액은 8800억원, 그다음은 나스닥 지수 등락 폭을 3배로 따라가는 TQQQ였다.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봐도 우리나라 서학개미들이 작년에 거래를 많이 한 상위 다섯 개 종목 중에는 2배 또는 3배 레버리지 ETF가 3개나 된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많이 거래하는 반도체 3배 레버리지 ETF SOXL은 한국인의 보유 비중이 무려 22%다. 정말 한국인들은 태생적으로 도박성이 강한 것일까. 왜 미국인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2배나 3배 레버리지 ETF에 한국인들은 자꾸 몰려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한국인의 도박성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규제 때문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미국인들의 도박성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주식 종목 옵션이라는 더 좋은 대안이 있기 때문에 굳이 2배나 3배짜리 레버리지 ETF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에는 4400개에 달하는 종목 옵션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 주식의 가격이 오를 게 확실하다고 믿으면 엔비디아 콜옵션을 매수하면 된다. 같은 돈으로 엔비디아 주식을 매수하는 것과 비교하면 엔비디아 콜옵션은 10~20배의 레버리지 투자도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 개인투자자들은 전체 옵션 거래의 25%가량을 차지하며 평균 1000억 달러 규모의 옵션 거래를 매일 하고 있다. 1년이면 개별 종목 옵션에 투자하는 돈은 2조8000억 달러나 된다. 예를 들어 작년에 한국 서학개미들이 62억 달러어치를 거래한 NVDL이라는 ETF는 엔비디아 주가 변동 폭의 2배를 추종하는 종목이다. 겨우(?) 62억 달러어치지만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투자한 레버리지 ETF 가운데 세 번째로 거래대금이 많다.
엔비디아 주가 상승을 예상하는 미국인 투자자들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엔비디아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고, 한국인들처럼 엔비디아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ETF에 투자할 수도 있으며, 엔비디아 주식 개별 옵션에 투자할 수도 있다. 대다수는 간편하고 레버리지 비율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한국인 투자자들의 경우 엔비디아 레버리지 ETF 말고는 다른 투자 방법이 없다.
엔비디아 한 종목으로 좁혀봐도 미국인들이 거래하는 엔비디아 주식 옵션의 하루 거래대금은 10억~20억 달러로 1년이면 3000억 달러가 넘는다. 1000만 명에 이르는 한국 서학개미가 거래한 엔비디아 레버리지 ETF보다 7000만 미국인 투자자가 거래하는 엔비디아 개별 옵션의 거래금액이 50배는 더 많다. 이런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도박성이 미국인보다 더 강하거나 한국 투자자들이 더 위험 선호적이라고 결론 내릴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미국이라고 개인투자자들이 다 현명하고 침착해서 주식 옵션같은 파생상품을 노련하게 잘 다루는 건 아닐 것이다. 투자금을 하루 아침에 날리기도 하고, 수십배의 돈을 벌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일 게 뻔하다. 다만 그걸 불안하게 바라보고 규제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열어놓는 것이 미국 주식 시장을 세계 1위로 키우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한국 정부보다 미국 정부가 좀 더 잘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금융시장에서 무슨 사고만 터지면 그 원인을 막론하고 그냥 정부보고 무조건 해결하고 대책을 세우라고 닥달한다. 큰 손실을 본 금융상품이 생기면 정부가 선량한 투자자를 보호하지 않고 뭐했냐고 나무라는 막무가내식 여론몰이에 익숙하다. 그런 국민들과 호흡하는 정부의 정책은 규제 일변도일 수 밖에 없고 그게 ‘엔비디아 2배 레버리지 ETF의 3분의 1은 한국인이 산다. 한국인들은 다 도박중독인가’라는 웃픈 뉴스를 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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