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사람이/ 찾지 않는 꽃이여/ 처마 밑 밤꽃”(바쇼, 김정례 옮김)

일본의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가 쓴 하이쿠이다. 일본 동북 지방의 어느 숙박 역(宿泊驛) 옆 밤나무 그늘에 움막을 짓고 사는 승려를 보고 쓴 시인데 ‘세상 사람이 찾지 않는 꽃’을 본 시인의 눈을 칭찬하고 싶다. 세상 모든 것 대신 울어주어야 하는 시인의 숙명이여. 움막을 짓고 속세를 피해 살지는 않으나, 나 또한 내 방에 처박혀 야구나 보면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것도 은둔이라 할 수 있을까. 봄바람이 불고 푸른 것들이 눈에 밟히니 나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야구, 축구, 테니스 경기 일정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았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 텔레비전 뉴스 보기가 싫다. 난무하는 구호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얼굴들을 오래 보고 싶지 않아, 날씨와 스포츠 소식만 챙겨 보고 재빨리 채널을 돌린다. 매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인사들이 선거에 나오든 안 나오든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 아, 정말 우리나라 국민은 정치인 복이 없다. 대중에게 잘 보이려 화장하고 잔뜩 꾸민 얼굴에서 권력욕과 이기심이 솔솔 풍겨 나오는데, 사람들은 왜 모를까. 아름답고 맑은 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4월23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2차 경선 토론회 미디어데이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안철수, 한동훈,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맨 위 사진). 4월1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김경수, 김동연 대선 경선 후보(왼쪽부터)가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4월23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2차 경선 토론회 미디어데이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안철수, 한동훈,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맨 위 사진). 4월19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김경수, 김동연 대선 경선 후보(왼쪽부터)가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최선의 인간들은 신념을 모두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1939)의 시 재림 <The Second Coming>에 나오는 시구를 당신들 얼굴에 던져주마. 유권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6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그때 가봐서 결정하리라. 사람들은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좋은 것들이 먼저 사라진다. 우리 중에 가장 나은 이들은 신념을 잃었고, 댓글을 쓸 열정도 흥미도 잃었다. 정의는 없다. 조회 수와 ‘좋아요’ 댓글이 지배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구든 자기 연출을 잘하고 ‘스토리텔링’에 성공하면 돈과 권력이 따른다.

외국인을 만날 때 나는 예이츠의 시를 인용하곤 한다. 언젠가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에어프랑스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에든버러의 연구원 남녀와 말을 섞다, 내가 시인임을 밝히고 예이츠의 시를 암송했다. 원어민 앞에서 영어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시를 외우자, 나를 보는 그네들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자신도 시를 좋아한다며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를 암송하던 그는 내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멋진 영국 신사이던 그도 이제 초로의 노인이 되어 있겠지.

이제 나는 더 이상 유럽을 꿈꾸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가고 싶은 곳은 로마의 동쪽, 이스탄불과 이란과 아랍의 멋진 도시들을 천천히 구경하고 싶다. 유럽행 비행기를 몇 번 탄 뒤에,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 뒤에 내가 내린 결론. “왜 떠나려 해? 나도 모르겠어. 이유를 알고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최영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서)

항상 이곳에서 저곳으로, 하나의 취미에서 다른 취미로 이동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미술이 시들해지고, 축구도 언젠가부터 시들해져, 지금은 야구와 테니스에 미쳐 지낸다. 월요일을 빼고 거의 날마다 경기가 열린다는 게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심심한 하루의 끝에 야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