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리메이크된 《러브홀릭》…꽃망울 터지는 청량감 선사
“이 노래를 듣고 나니 갑자기 행복해졌다.”
이보다 더 행복한 한줄평이 있을까. 명품 보컬리스트 박기영이 봄을 닮은 새 음악으로 돌아왔다. 4월30일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디지털 싱글 《러브홀릭》을 들고서다. 2003년 동명 혼성그룹 ‘러브홀릭’이 부른 이 곡은 서정적이고 슬픈 가사와 상반되는 밝은 멜로디의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돋보이는 록사운드 노래다.
싱어송라이터 윤마치와 호흡
《러브홀릭》은 싸이월드 시절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도토리 강탈곡’으로 유명한 추억의 곡이다. 2004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음악성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송된 tvN 《선재 업고 튀어》에 삽입된 것을 비롯해 KBS2 《더 시즌즈-이효리의 레드카펫》에서 데이식스가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랬던 곡이 박기영 버전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것이다.
박기영 버전은 원곡 보컬 지선의 몽환적이고 신선한 분위기와 달리 박기영 특유의 파워풀하면서도 청량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여기에 힘을 더한 건 대세 싱어송라이터 윤마치다. 윤마치는 2018년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5》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가수이자 작곡가로 《러브홀릭》을 통해 박기영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두 보컬이 입 모아 부른 도입부를 시작으로 윤마치와 박기영이라는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보컬이 씨줄, 날줄처럼 쫀쫀하게 엮여 마치 꽃망울이 터지는 듯한 기분 좋은 청량감을 선사한다.
뮤직비디오에는 곡 제목 그대로 마치 사랑에 빠진 듯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박기영과 윤마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각각 1977년, 1996년생인 박기영과 윤마치는 열아홉 살 차이지만 《러브홀릭》 안에서는 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를 초월해 ‘동료’이자 ‘원 팀’이 된다.
이번 음원은 2023~24년에 걸쳐 일렉트로닉 앨범 ‘Magictronica’, 베스트 앨범 ‘Love You More’와 크로스오버 앨범 ‘The Classic’으로 데뷔 25주년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한 박기영이 올해 처음 선보인 음악이다. 당초 박기영은 신곡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경기 침체 여파로 대중음악 시장도 리메이크 아닌 신곡으로는 조명받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데 따라 현실적인 선택지를 꺼내들었다.
그런 박기영과 《러브홀릭》의 만남은 각별하다. 한창 솔로 보컬리스트로 주목받으며 활동하던 2000년대 초 박기영은 러브홀릭의 이재학과 실제로 프로젝트팀 결성을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젝트는 여건상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로 러브홀릭이 탄생했고, 박기영은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 왔다. 이후엔 러브홀릭스 《버터플라이》 가창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시간을 거쳐 돌고 돌아 22년 만에 다시 리메이크 《러브홀릭》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지난해 여름 이후로 록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대 박기영의 음악은 록이었고 30대는 팝 어쿠스틱이었다면 40대는 크로스오버로 갔는데, 다가올 50대에는 재즈를 할 생각이지만 나의 아이덴티티를 잘 섞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동안 아이 키우느라 못 나가다가 페스티벌에 10여 년 만에 나갔는데,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아, 나 록 했었지’ 생각도 들었고요.”
올해 마흔아홉. 어느새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박기영으로의 회귀는 ‘인간 박기영’으로선 특별한 일이지만 ‘뮤지션 박기영’에겐 여느 때와 같이 도전하는 여정의 일환이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 ‘도전하는 사람이 섹시하다’는 대사가 나왔는데, 그 말이 확 와닿았어요. 나도 갇혀 있지 않고, 음악 재미있게 하며 도전하는 사람인데, ‘아 나 섹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록 하던 사람이 크로스오버로 전향한 것도 최초였고, 스튜디오 라이브도, 원테이크 앨범도 제가 처음 했는데. 이제 일렉트로닉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어요.”
《러브홀릭》이 ‘뮤지션 박기영’에게 마치 운명 같은 곡이라면, 윤마치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인간 박기영’에게 운명 같은 경험이다. 과거 한 행사장에서 만나 선후배로 처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이후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가며 친해졌고, 그 인연으로 《러브홀릭》 작업까지 함께 하게 됐다.
“마치와 밥 먹고 이야기 나누며 친해졌는데, 그의 싱그러움에 반했어요. 나의 20대는 어둡고 우울했는데 마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이 느껴질 정도로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죠. 마치는 반짝이는 별 같아요. 물론 마치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 힘듦에 잠식되지 않고 자신만의 밝은 에너지로 무대에서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그 시절을 사는 것 같은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거의 스무 살 어린 마치랑 20년도 더 된 노래를 불렀는데, 20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마치 덕분에 그때 내가 갖지 못했던 싱그러움을 갖고 타임머신 타고 그때를 다녀온 기분이었죠. 같이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그때의 나를 위로하는 기분도 들었어요.”
무대 위에선 여지없이 ‘멋쁨’을 뽐내며 경탄을 자아내는 박기영이지만 데뷔 후 쉼 없이 달려온 27년의 여정은 음악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결혼과 육아, 이혼 등은 방송가의 단골 소재라 ‘워킹맘’이자 ‘싱글맘’인 박기영을 노리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오직 음악으로써 관객 그리고 리스너와 소통하고 있다.
“무대에서 멋지고 싶어”
“저는 개인사나 가족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아요. 왜냐면, 저는 음악으로 다 이야기하거든요. 음악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괴로웠고,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고, 만끽하고 있는지 다 얘기하고 있어요. 저는 무대에서 멋지고 싶어요. 왜냐면, 무대는 꿈의 공간이고, 무대 위의 저는 일상의 제가 아니잖아요. 무대는 저에게도 꿈과 환상의 공간이죠. 무대는 꿈과 희망을 드리는 공간이니까, 그곳에 설 땐 가장 멋있게 준비하고 예쁜 모습, 건강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금 싱글맘인 건 맞아요. 하지만 그로 인해 동정받고 싶지 않고, 감성팔이를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박기영 자체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신곡으로 돌아온 그는 5월 아주 특별한 무대에 오른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의 주인공이 돼 1인극에 나서는 것이다. 《화이트래빗 레드래빗》은 이란 출신 작가 낫심 술리만푸어가 자국 검열을 피해 만든 작품으로 감독도, 사전 극본도, 리허설도 없이 당일 무대에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올라 무대를 채운다. 박기영은 5월17일 공연의 주인공이 돼 홀로 70분간 극을 이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