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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2’ 유죄 취지 파기환송…이재명의 ‘골프·백현동 발언’ 명백한 허위사실 공표로 인정
“대법원장 의지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속도”…‘헌법 84조’ 해석 놓고 극한의 대립 불가피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5 월1 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선고를 위해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5 월1 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선고를 위해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문,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꺼져가는 듯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사법 리스크 불씨가 확 되살아났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에서 ‘무죄 확정’이 아닌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이 후보의 정치적 운명은 6월3일 4400만 명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에 앞서 사법부의 속전속결 결정 앞에 크게 출렁이게 됐다.

 

‘유권자 관점·발언 전체적 인상·선거 공정성’ 축으로 판단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5월1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의 상고심에서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2심)이 △고(故) 김문기 관련 골프 발언 △백현동 관련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는 발언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고, 잘못 해석된 의미를 전제로 허위사실 공표죄의 성립 여부를 따져 공직선거법 제250조 1항이 규정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결론 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 9명이 ‘파기환송’ 다수의견을,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이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먼저 공직선거법상 당선을 목적으로 공표를 금지하고 있는 ‘허위사실’에 대한 규정과 범위를 설시했다. 대법원은 “허위의 사실은 선거인으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이면 충분하다”며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것인지는 표현의 객관적 내용과 전체 취지,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표현이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에 근거해 대법원은 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2021년 12월29일 한 종합편성 채널 방송에 출연해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다는 주장에 관해 언급하면서 ‘사진이 조작됐다’고 한 부분을 허위사실 공표로 인정했다. 당시 이 후보는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일행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내가지고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지요”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의 골프 발언이 대장동 개발 사업을 담당했던 김 전 처장과의 관계나 의혹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만큼, 일반 유권자가 갖게 될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선거인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그 의미를 확정하면, ‘피고인이 김문기와 함께 간 해외출장 기간 중에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피고인은 해외출장 기간 중 김문기와 골프를 쳤으므로 후보자의 행위에 관한 허위의 사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골프 발언을 이 후보의 ‘인식’에 관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또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문기를 몰랐다’는 주장의 보조 논거에 해당해 별개의 허위사실 공표 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2심은 이 후보의 발언을 별로 쪼개 혐의 성립 여부를 개별적으로 따졌는데, 대법원은 “발언의 의미를 확정할 때는 전체적 맥락에 기초해야 한다. (재판부가) 연결된 발언을 해석하면서 세분하고 인위적으로 분절해 재구성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의 이른바 ‘백현동 관련 국토부의 협박’ 발언 역시 대법원은 행위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라고 판단했다. 이 발언을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본 원심과는 정반대다. 이 후보는 2021년 10월20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용도를 바꿔준 것은 국토부의 법률에 의한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며 “만약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남시와 국토부가 주고받은 공문 등을 근거로 “국토부의 압박은 없었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명백히 배치되는 허위의 발언을 했다”고 명시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의무조항 압박·직무유기 협박 발언은 유권자에게 잘못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고, 선거인의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적 관심사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에 있으므로 민주주의 실현 과정인 선거 절차에서도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충실하게 보장돼야 한다”며 “다만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는 정도는 그 표현의 주체와 대상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범위를 넘어섰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공직을 맡으려는 후보자가 자신에 관한 사항에 대해 국민에게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국면에서는 일반 국민이 공인이나 공적 관심사에 대한 의견과 사상을 표명하는 경우와 같은 의미와 정도의 표현의 자유가 허용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모두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남겼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대법원이 선례의 방향성에 역행해 허위사실 공표죄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해석 방향을 취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공론의 장에 규제의 칼을 들이밂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후퇴시키는 퇴행적인 발상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와 같은 해석 방식이 검사의 기소편의 지위와 결합할 경우 민주주의 정치와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가해지는 위험은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월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월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尹 임명’ 조희대 대법원장, 보수 성향의 원칙론자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기소 2년8개월 만에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기소부터 1심 선고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2심은 신속 심리를 진행해 4개월 만에 무죄로 결과를 뒤집었다. 이에 불복한 검찰의 상고로 이 후보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게 된 대법원은 전례 없는 속도전을 벌이며 심리부터 선고까지 그야말로 ‘질주’를 벌였고, 2심 선고(3월26일)로부터 불과 36일 만에 상고심을 마무리했다.

이 같은 속도는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평가다. 조 대법원장은 사건이 소부에 배당된 당일인 4월22일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당일 곧바로 합의기일까지 진행했다. 이틀 후인 4월24일 두 번째 합의기일을 열었고 표결까지 진행, 이로부터 8일 후인 5월1일로 선고기일을 확정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공직선거법 ‘6·3·3(1심 6개월, 2·3심 3개월 이내)’ 강행규정 원칙을 강조해 왔다. 선거 사건의 신속 심리는 일관된 흐름이었지만, 선고기일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면서 대법원장의 ‘작심’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이 조기 대선 후보 등록기간(5월10~11일) 전 이 후보의 상고심 결론을 내야 사회·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부각하며 전례 없는 속도전을 주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판사 출신 법조인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의지가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속도”라며 “2심을 뒤집고 파기환송을 하는 결정은 대법 스스로 ‘사법의 정치화’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주도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에 대한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주도한 조 대법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명·임명했으며 보수 성향의 원칙론자로 평가받는다. 2014년 3월 박근혜 정부에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법관에 임명됐고, 2020년 임기를 마친 후 대형 로펌이 아닌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지냈다. 2023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명·임명하면서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서 “사법부는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며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균형 있는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이 대선 목전에서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 온 만큼 ‘노골적인 대선 개입’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법관들이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수만 쪽에 달하는 자료를 1차 검토할 물리적 시간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2심에서 ‘무죄’가 나온 직후 재판연구관들을 통해 사건 기록과 쟁점 검토를 지시하는 등 파기환송을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속도전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법률심인 상고심이 이 후보 앞에서 사실심으로 변질됐다며 ‘사법 쿠데타’로 규정했다. 

파기환송심 ‘유죄’ 불가피 전망…형량과 선고 시점이 관건

이 후보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다시 서울고법 법정에 서야 한다.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유죄 취지 결정에 기속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대법원이 소송기록을 송부하면 배당 절차를 거쳐 파기환송심 담당 재판부가 결정된다. 기존 원심 재판부인 형사6부는 재배당에서 제외된다.

관건은 선고 시점과 형량이다. 법조계에서는 파기환송심 선고가 6월3일 대선까지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통상 파기환송심은 서류 접수부터 판결까지 한 달 이상 소요돼 6월3일 대선 전까지 선고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만일 선고가 나더라도 유죄 결과에 대한 이 후보의 재상고가 확실시되는 만큼 대선 전 재판이 완전한 마침표를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본 이 후보의 발언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던 1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형량대로 확정되면 이 후보는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벌금 100만원 미만’이 나오면 이 후보는 선거 출마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두 갈래의 발언을 유죄 취지로 본 대법원 판단을 반영하면 이는 현실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가 받고 있는 형사재판 5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헌법 84조’를 둘러싼 논란도 격화할 전망이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소추’가 기소만을 의미하는지, 재판 진행까지도 포함하는 것인지를 두고 학계와 법조계의 해석이 첨예하게 갈린다.

5월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긴급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긴급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법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후보가 당선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대법원은 ‘재판 계속 여부’에 대한 명시적인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또 다시 사법부가 정치 판도를 결정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의미다.    

이 후보 측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은 모두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 측은 헌법학자들의 ‘다수설’을 근거로 대통령 불소추 특권에 재판 중지까지 포함된다는 입장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언급한 헌법학 교과서 7권을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불소추특권으로 범죄수사, 공소제기, 형사재판권의 행사 등을 모두 포함한다(이효원 서울대 교수) △대통령은 소추를 받지 않으므로 소추를 전제로 하는 형사재판도 할 수 없다(김하열 고려대 교수) 등 소추의 범위를 기소는 물론 재판까지 확장 해석한 학계의 해석을 토대로 대선 이후 재판 중지설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동시에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당선 이전에 진행 중이던 재판까지 모두 중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입법을 통한 후속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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