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검찰 수사·기소 분리 이견 없어” 정성호 “野도 공감하는 검찰 개혁”
중수청, 행안부 아닌 ‘법무부’ 산하로…“수사 총역량 후퇴하면 ‘개악’”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반대 여론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일종의 자업자득(검찰 개혁의 당위)” “동일한 주체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면 안 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방법론)” “추석 전까지 (검찰 개혁 제도의) 얼개를 만드는 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시점)”(7월3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 달 기자회견 발언 중).
‘이재명식 검찰 개혁’이 시작됐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기간 내내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공언해 왔다. 이 대통령은 7월3일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도 “검찰 개혁, 이를 포함한 사법 개혁은 매우 중요한 현실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제 관건은 정부·여당이 진행할 검찰 개혁의 ‘강도’와 ‘속도’다.
‘온건합리파’ 정성호, ‘국민 피해 없는’ 개혁 강조
밑그림은 그려졌다.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을 정리해 보면, 행정안전부(행안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만들고, 법무부 산하에 공소청(영장청구·기소 및 공소유지)을 설치하는 것이 골자다. 검찰의 기능은 두 기관으로 각각 이관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수사위원회를 신설해 수사·기소 절차를 감독한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은 3개월 안에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속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검사 출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사단이라 불리는 검사들에 대한 반감으로 검찰 개혁의 동력은 충분히 확보됐다는 것이 여당의 논리다.
그러나 ‘검찰 개혁의 지휘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검찰 개혁은 속도가 아닌 ‘합리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검찰(檢)에 검(劍)을 휘두를 수밖에 없겠지만, ‘검찰 개혁이 개악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정 후보자의 기조로 알려진다. 취재에 따르면, 정 후보자의 검찰 개혁은 ①국민 눈높이 ②국민 피해 없는 개혁 ③충분한 국회 협의 ④여야 합의라는 핵심 키워드로 요약된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국가 백년대계로 설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검찰을 떠난 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작심발언도 되새겨 검찰도, 야당도 납득할 수 있는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성호 후보자는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18기)로 38년 지기다. 지근거리에서 이 대통령과 오랫동안 코드를 맞춰온 만큼 국정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이 장관 인선에 반영됐다는 전언이다. 정 후보자는 친이재명계 좌장이지만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치 않고, 여야의 신뢰를 받는 합리적인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과 법제사법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전문성까지 더해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법무부 수장으로서 그의 당면 과제는 단연 ‘검찰 개혁’이다. 정 후보자 또한 7월1일 서울 종로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처음 출근할 때도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에 집중된 권한의 재배분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에게 그동안 불안감을 줬던 검찰 체계의 변화를 바라는 기대가 많은 것 같다”고 검찰 개혁을 시사했다.
검찰과 야당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검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것이 정 후보자의 전략이다. ‘윤석열 사단’으로 불렸던 검찰 수뇌부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강조한 민생 사건 수사의 중요성도 정 후보자가 공감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 역시 검찰의 권한이 축소된다고 해서 민생에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수사 체제 변화로 국가가 갖고 있는 수사의 총역량이 후퇴하면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의 수사 기능을 확대하는 동시에 헌법이 부여한 검사의 기소와 영장청구 권리를 보장하면서 수사기관의 ‘양 날개’를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검찰 개혁의 메스를 쥐되 ‘환부’만 도려낼 것이라는 게 정 후보자가 밝힌 생각이다. 이 대통령 당선 전부터 서초동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검찰 조직이 사실상 해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부 출범 이후 지휘부가 ‘물갈이’되고, 문재인 정부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이끈 사람들이 중용되면서 내부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됐다. 그러나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2000명의 검사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정치검사’로 불리는 특수통 검사 100명이 문제”라며 “검찰 개혁의 키를 쥐게 되지만 힘을 다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개혁의 수위 조절로 야당과 협치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취재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당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모임인 ‘국회 공정사회포럼’(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검찰 개혁 법안’을 그대로 추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들 법안대로 행안부 산하에 중수청을 두는 것이 아니라 법무부에 두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5선 의원인 정성호 후보자를 이 대통령이 법무부 수장에 앉힌 데도 정치인 특유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린 것으로 전해진다.
“2000명 전원 아닌 특수통 100명이 문제”
검찰 개혁 법안에 대해서도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정권 초기 100일 정도인 ‘허니문 기간’에 힘입어 단기간에 검찰청을 폐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관련 입법을 빠르게 할 거냐 늦게 할 거냐 여러 말씀이 있지만 그런 것들이 국회 안에서 충분히 협의돼 논의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정 후보자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정 후보자는 “야당도 납득할 수 있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은 ‘온건파’로 꼽히는 정 후보자를 배치하면서도 ‘실용’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도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통령실 민정수석에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60·사법연수원 19기)를 앉힌 것이다. 봉 수석은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을 비롯해 특수·공안 부서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기획통’ 검사 출신이다. ‘검찰 출신이 검찰 개혁에 과연 앞장설 수 있겠느냐’는 지지층의 반발에도 오광수 전 민정수석에 이어 검찰 출신을 택한 데는 ‘조직을 잘 아는 인물이 개혁을 잘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견해가 깔려 있다. 검찰의 생리를 몰라 검찰 개혁에 실패한 조국 전 민정수석의 전철은 밟지 않을 것이란 각오다.
변수는 민주당 내 강경파가 온건한 개혁에 반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권 주자인 박찬대·정청래 의원은 강성 지지층을 향해 자신이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의 적임자임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7월2일 처럼회가 주최한 검찰 개혁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해 “검찰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정 의원), “9월까지 검찰청을 해체하겠다”(박 의원)고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검찰 개혁에 대한 동력으로 작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 후보자에게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