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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취임 한 달 기자회견…프롬프터 없이 취재진과 1.5m 거리에서 질의응답
집값 과열 땐 ‘추가 규제’ 시사…“민생지원금 효과 높을 것” 추가 추경엔 선 그어
60%대 지지율엔 “30% 이상 국민 제가 설득해야”…“한·일 협력, 과거사는 분리”

취임 한 달 만에 이례적으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형식’부터 ‘내용’까지 기존의 틀을 깼다. 연단 없는 타운홀 미팅 방식, 즉석 질의응답, 프롬프터 없이 풀어낸 발언을 통해 ‘소통’과 ‘실용’을 강조한 이 대통령은 민생 회복과 경제 안정에 국정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라는 국정 기조를 토대로 “진영 없이” “대화와 토론이 먼저”라며 협치의 메시지를 강조했지만, 동시에 “대출 규제는 맛보기” “통일 언급은 시기상조” “색깔로 인사를 배제해선 안 된다” 등 입장이 명확한 사안에 대해선 단호히 선을 긋기도 했다. 특히 부동산과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등 민생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선 이 같은 기조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낮은 자세와 열린 태도로 소통의 무대를 펼치되, 할 말은 분명히 하는 회견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7월3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2분까지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는 주제로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국내 매체 119곳과 외신 28곳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풀뿌리 언론 8곳도 온라인으로 연결돼 회견장 벽면에 설치된 ‘미디어월’을 통해 실시간으로 질의에 참여했다.

취임 직후부터 소통에 방점을 찍으며 지난 정부와 차별화를 강조해온 이 대통령답게 회견 형식부터 남달랐다. 기존처럼 연단에 서는 대신 참석자들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앉은 채로 회견에 임했고, 대통령과 기자들의 거리도 약 1.5m에 불과했다. 청중과 반원 형태로 둘러앉아 대화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을 택해 권위를 낮추고 취재진과의 거리를 좁혀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취지였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의 넥타이 또한 붉은색(국민의힘 상징색)과 푸른색(더불어민주당 상징색) 줄이 교차하는 이른바 ‘통합 넥타이’ 차림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7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최단기 기자회견…권위는 낮추고, 민생은 띄우고

이 대통령은 최대한 많은 질문을 받는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모두발언 시간도 최소화했다. 미리 준비한 약 3000자 분량의 원고를 12분간 읽어내려간 뒤 곧바로 질의응답에 돌입했다. 사전 조율 없이 총 15개 매체의 질문에 즉석에서 답하며 민생·경제, 정치·외교안보, 사회·문화 3개 분야를 아우르는 현안을 다뤘다. 야당과의 협치, 국회의 견제 기능 등 포괄적 의제부터 차별금지법, 의·정 갈등 같은 구체적인 사안까지 막힘없이 답했다. 특히 지역 언론이 제기한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한 구체적인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이 유독 강조한 의제는 ‘민생’이었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부터 “무엇보다, 무너진 민생 회복에 전력을 다하는 중”이라며 “취임 후 ‘1호 지시’로 ‘비상경제점검TF(태스크포스)’를 즉시 가동해 민생경제를 살릴 지혜를 모으고 해법을 찾아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질의응답에서도 민생·경제 분야의 질문을 가장 먼저 받으며 그간 강조했던 ‘민생 회복’의 중요성을 직접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명확한 기준선을 제시하는 발언들이 눈에 띄었다. 정치나 외교 등 다른 현안에선 논쟁적인 현황을 소개하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도 보인 반면, 경제 문제에서만큼은 정책 추진에 대해 좀 더 확고한 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표적인 ‘작심 발언’은 부동산 의제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수도권 집값이 치솟자 6월27일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두고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투기적 수요가 부동산 시장을 매우 교란하고 있어 흐름을 바꿀까 한다”며 “이번 대출 규제는 맛보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되는 공급 확대 정책의 병행 필요성을 의식하듯 “공급 확대책과 수요 억제책은 아직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다”며 “이제는 부동산보다는 금융시장으로 (수요를) 옮기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민생회복 지원금이 포함된 추경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소비 진작 효과가 떨어진다는 반론은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그럼에도 “민생지원금에는 소비 진작에 더해 소득 지원·재분배 효과까지 있다”며 “민생이 회생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 경제 상황 등을 다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고, 효과는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것보다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추가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국가 재정 역시 장기적으로 민생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일단은 재정 상황이 또 (추경안을 편성)할 만큼 녹록지 않다”며 “다시 이걸 억지로 해야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여야, 남북, 한일 관계 등 대립과 공존이 교차하는 정치·외교안보 사안에 대해서는 통합과 소통을 기본으로 하되, ‘실용’의 원칙은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은 60%대를 넘나드는 국정 지지율과 관련해 “30% 이상, 또는 20몇 퍼센트는 아주 못한다고 평가한다는 것인데, 제가 설득해야 할 일”이라며 “좀 더 낮은 자세에서 진지하게 국민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통합과 대화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7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외교는 ‘대화 속 실용’ 기조 강조

반면 국회에서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점한 상황을 두고는 “국민의 선택”이라며 “(국회가) 압도적 다수에 대통령까지 민주당이니 문제라는 지적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이는 통합을 강조하면서도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뚜렷하게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크고 작은 논란을 빚은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인식을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내각 인선과 관련해 “국민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통합의 국정을 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색깔만 쓰면 위험하다”며 “시멘트만 잔뜩 모으면 시멘트 덩어리, 모래만 잔뜩 넣으면 모래더미가 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질이 없거나 부정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또는 이기적이거나 이런 인사를 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고 ‘성향이 다르다, 누구와 관련이 있다’ 이런 걸로 판단해서 배제하기 시작하면 남는 게 없다”며 “정치보복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과 검찰 출신 인사의 민정수석 연속 기용을 두고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한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다소 논란이 있는 인물이나 정책도 성과만 낼 수 있다면 적극 채택하겠다는 실용주의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통합과 실용,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시각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드러났다. 한반도 평화 정책에 대해선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이라는 ‘실용외교’를 기본적 토대로 하되,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실익을 전제로 점진적으로 전개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지만, 지금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자칫 상대에게 ‘흡수하겠다는 것이냐’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냐’ 이런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길게 보고 소통과 협력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 역시 “(양국은) 자유민주진영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과거사 문제를 아직 서로 청산하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며 “이런 갈등 요소가 있지만, 뒤섞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른손으로 싸워도 왼손은 서로 잡는다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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