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협상 여지 밝혔지만 철강·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엔 선 그어
‘방위비’ 언급하며 압박 수위 올려…“영국 수준의 타결이 최선”
대미 관세 협상 ‘2라운드’의 막이 올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오는 8월1일로 연기하면서 20일의 추가 협상 시한을 확보했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면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가 관세, 비관세를 넘어 산업·에너지 협력 등 워낙 방대한 탓에 전략 수립에 고심이 깊은 상태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까지 재차 언급하면서 협상 전선은 더욱 넓어지는 모양새다. 결국 이달 중으로 추진 중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7월7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부과 유예 기간을 내달 1일까지 연장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2025년 8월1일부터 우리는 미국으로 보낸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간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8월1일이 되면 당초 책정했던 수준인 25%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협상의 여지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대통령)이 지금까지 미국에 닫혀 있던 무역시장을 개방하고, 당신의 관세와 비관세(장벽) 정책과 무역장벽을 없애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 서한의 조정을 고려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들 관세는 당신 나라와 우리의 관계에 따라서 위로든, 아래로든 조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정리 안 돼”
이재명 정부는 6월4일 출범 이후 한 달 남짓 미국과 관세 협의를 이어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번 관세 부과 유예로 한국은 3주간의 협상 시간을 더 벌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9일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 뒤 한국에 현재까지 기본관세 10%만을 부과해 왔다.
협상 과정이 순조롭지 않다는 점은 이미 감지됐다. 이 대통령은 7월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대미 협상과 관련한 질문에 “아직까지도 쌍방이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가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은 상태”라고 털어놨다. 종전 협상 시한이었던 7월8일을 닷새 앞둔 상황에서도 협의가 수월치 않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통상 전문가는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6월 이전까지 미국과의 협상은 탐색전 수준에 그쳤을 것”이라면서 “이재명 정부가 출범 이후 협의에 나섰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은 미국이 원하는 바가 다방면으로 광범위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한 의제 분류도 녹록지 않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서한 공개 직후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고 상호 호혜적인 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7월5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6일에는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미국으로 급파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3주간의 벼랑 끝 협상이 결실을 봐야 하는 이유는 ‘10% 기본관세’ 여파가 이미 수출 지표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대미 수출은 품목별 관세가 차례로 붙은 철강·자동차·자동차부품을 중심으로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지난해보다 3.7% 줄어들었다. 반기 기준 대미 수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20년 상반기 이후 5년 만이다. 품목별로는 3월부터 25%, 6월 들어선 50%로 관세율이 높아진 철강은 대미 수출이 11.2% 줄었고, 자동차는 16.8% 급감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관세 부과가 이어진다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9.3~13.1%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대미 수출액(1277억 달러)을 고려하면 최대 22조원이 넘는 규모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역시 0.34~0.46%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3국으로의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는 간접 효과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부가가치 감소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추정은 기본관세 10%를 적용했을 때의 결과로, 8월 이후 관세 25%가 부과된다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30개월 이상 미국 소고기·쌀 추가 개방도 논의되나
대미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일단 제조업 협력을 지렛대 삼아 고율의 관세를 낮추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7월7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한국의 첨단산업 및 제조업 역량, 양국 간 긴밀히 연계된 산업공급망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이 미국의 제조업 재건을 위한 최적의 상대”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양국 간 제조업 협력이 조속한 시일 내에 구체화되고 성공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자동차, 철강 등 품목별 232조 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매우 중요하므로, 최종 합의에는 품목관세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품목별 관세를 둘러싼 협상 전망은 어둡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상호관세는 모든 품목별 관세와 별도”라고 콕 집어 명시했기 때문이다. 미국 측도 협상 과정에서 품목별 관세 인하는 기본적으로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 분석도 비슷하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출신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7월7일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한국과 일본에 보낸 서한은) 미국이 한·일 양국의 최우선 순위인 자동차 관세를 포함한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별 관세의 완화는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실망스러운 소식이지만 게임이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추가 관세 인상이 발효하는 8월1일까지 진행될 협상에서 돌파구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미국은 현재 우리의 주력 대미 수출품목인 철강과 자동차에 각각 50%,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로서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관세율을 놓고 미국에 제안할 게 적다는 점도 우리에겐 불리한 측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베트남 등 고관세국과는 달리 비관세 장벽을 문제 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해제와 쌀 시장 추가 개방이다.
한국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일본(2019년)과 대만(2020년)처럼 30개월령 미만 소고기만 수입을 허용하던 국가들이 시장을 전면 개방한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쌀 수입 역시 우리에게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현재 13만 톤가량의 미국산 쌀에만 5% 저율관세를 적용하고, 이를 넘기면 513%의 고율관세를 매기고 있다.
문제는 축산업계와 농민의 반발이다. 전국한우협회는 “국회와 정부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강행한다면 이를 막기 위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쌀 추가 수입 역시 ‘먹거리 주권’ 측면에서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며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총괄했던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쌀 추가 개방의 경우 아예 미국산 쌀을 수입하고 있지 않은 일본과 비교해 우리는 이미 개방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며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문제는 한국이 미국산 소고기 최대 수입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론의 민감성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물량은 21만4637톤이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다. 아울러 미국산 소고기는 전체 소고기 수입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등장한 방위비 “한국, 군사비 스스로 지불해야”
이런 가운데 ‘방위비 인상’ 카드가 이번 관세 협상의 향방을 가를 핵심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꺼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8일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우리는 한국을 재건했고 그곳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들은 군사비로 우리에게 거의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아주 훌륭하지만, 군사비를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방위비 분담금 이슈는 트럼프 1기 때부터 한국에 대한 주된 공격 레퍼토리였다. 2019년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정(SMA) 협상 당시 50억 달러(당시 약 5조7000억원) 인상을 요구했다. 당시 한국이 낸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다만 우리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향후 4년간 전년도 국방비 증가율만큼 매해 인상하기로 했다. 올해 분담금은 1조4028억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도 한국을 ‘머니 머신’으로 칭하면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막판 관세 협상 국면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방위비’를 협상 지렛대로 삼을 뜻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태호 원장은 “‘관세, 안보 협상 등 여러 현안이 중요한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으로 비춰 보면 방위비 문제도 협상 테이블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 담판으로 이번 관세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박 원장은 “영국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이려고 기본관세 10%는 깔고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10%의 상호관세로 무역합의를 이룬 영국 수준의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