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자업자득” 이재명의 명분론…“대통령 방탄용” 국민의힘 반발
박찬대·정청래 “9월까지 검찰청 폐지”…‘정치권 블랙홀’ 되면 민생 이슈 퇴색
정성호, ‘국민 피해 없는’ 개혁 강조…“수사 총역량 후퇴하면 개혁 아닌 개악”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은 검찰의 자업자득.”(이재명 대통령, 7월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은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명령.”(김병기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7월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청 폐지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폭거.”(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6월17일 한 토론회에서)
정의를 바로세울 개혁일까, 정의의 탈을 쓴 개악일까.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예고하자 여의도와 서초동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넘어 ‘검수완분’(검찰 수사권 완전 분쇄)을 목표로 검찰청 폐지 가능성까지 언급되자 개혁의 실효성을 두고 여야 정치권뿐 아니라 법조계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야권은 여당이 국민이 아닌 대통령을 위해, 공익이 아닌 당익과 사익을 위해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대야소 구도 속에 야권이 이미 출발한 검찰 개혁 열차를 멈춰세울 방법은 사실상 많지 않다. 60%대를 웃도는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입법권을 장악한 거대 여당, 내홍에 휩싸인 제1 야당의 분란을 고려하면 그 어느 때보다 검찰 개혁의 실행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관측이다. 그러나 보수 진영뿐 아니라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검찰 개혁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경고도 잇따른다. 검찰의 권한 축소가 곧 정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존폐의 갈림길에 선 검찰, 이 개혁을 둔 이 거대한 ‘동상이몽’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NBS 여론조사 “검찰 개혁 찬성 58%”
‘검찰 개혁’은 민주당에 단순히 국정과제 중 하나의 과제가 아니다. 완수하지 못한 정치적 유산이자 한번 실패를 경험한 정치적 트라우마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검찰 개혁은 여권 내에서도 ‘아쉽다’ ‘실패한 개혁’ 등의 평가를 많이 받았다. 입법을 통해 ‘검수완박’이라는 제도적 추진에는 성공했으나, 이른바 ‘조국 사태’와 검찰의 강도 높은 역공 속에 여론의 반감을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검찰 개혁은 완수되지 못했고, 되레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 윤석열’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 구원(舊怨)을 힘이 있는 정권 초에 빠르게 매듭짓겠다는 입장이다. 여당 내에서는 검찰 개혁을 통해 “검찰의 기획·표적 수사 폐단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힌다. 이에 구체적인 타임라인까지 제시했다. 민주당은 연내에는 검찰 개혁을 마무리짓겠다는 방침이다. 당권 주자로 나선 정청래 의원과 박찬대 의원은 각각 “추석에 검찰청 폐지” “9월까지 검찰청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 민주당은 ‘검찰 개혁 4법’을 마련해 입법 작업에 착수했다. 입법의 골자는 단순한 권한 조정이 아닌 ‘검찰청 폐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시행한 ‘검수완박’이 검찰 수사권 일부만 제한한 데 비해 이번 ‘검수완분’ 개혁은 검찰 조직 자체를 없애는 것을 상정한다. 김용민·장경태·민형배 의원 등 검찰 개혁의 강경파로 평가받는 이들이 각각 발의한 법안은 △검찰청법 폐지 △공소청 설치 △국가수사위원회 설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등을 골자로 한다. 수사는 중수청이, 기소·공소유지는 공소청이 맡는 구조다. 검사들은 두 기관에 분산 배치된다. 중수청은 내란·외환, 부패·경제·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중대범죄를 담당하고, 국가수사위는 기관 간 수사 중복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검찰 개혁 4법을 대표 발의한 김용민 의원은 “현행 검찰제도는 정부가 집권하면 인사권을 전부 가지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국가수사위원회가 생기면 국회에서 4명을 선출하니까 야당 측에서 2명은 들어간다. 정부 장악력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에 따르면, 검찰 개혁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는 미묘한 기류의 차이가 감지된다.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과 당위에는 양측 모두 공감하지만 ‘속도’와 ‘강도’에서는 서로 다른 뉘앙스와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는 분명하게 힘을 싣는 모습이다. 7월3일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검찰을 향해 “기소에 맞춰 사건을 조작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기소하는 검사에게서 수사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과거에는 왜 (수사권을) 빼앗느냐는 반론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개혁 필요성이 커진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의 힘이 강해졌다는 취지다.
“野도 공감하는 검찰 개혁” 강조하는 정성호
실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넘어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검찰 개혁에 찬성하는 여론도 커져 가는 양상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7월7~9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현 정부의 검찰 개혁 방향에 대해 찬성 의견이 58%로 반대(29%)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응답률 19.9%,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검찰 개혁을 두고 집권여당인 민주당 내부에 큰 이견은 없는 상태다. 윤석열 정권이 ‘자멸’한 핵심 원인 중 하나가 검찰의 부패와 편향성, 무리수였다는 공감대가 당내에 확산해 있다는 전언이다. 법조인 출신인 한 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정녕 정의로웠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김건희 여사가 특검 수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며 “이미 괴물이 된 검찰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안은 오랫동안 논의돼 온 안이기 때문에 두세 차례 회의만으로도 단일안 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여당은 검찰 개혁을 통한 ‘명예회복’도 노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 대통령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도 검찰 개혁을 통해 소각하겠다는 방침이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검찰은 이재명 당시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며 “정치사건을 전수조사하고 결자해지하라”고 말했다. 당내 일부에선 검찰의 조작 수사가 입증될 경우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 취소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법적 복권까지 염두에 둔 흐름이다.
다만 ‘이재명식 검찰 개혁’이 여당의 뜻과는 다르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 대통령이 낙점한 ‘검찰 개혁의 지휘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주창하는 검찰 개혁은 ‘속도’가 아닌 ‘합리성’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檢)에 검(劍)을 휘두를 수밖에 없겠지만, ‘검찰 개혁이 개악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 정 후보자의 기조로 알려진다. 취재에 따르면, 정 후보자의 검찰 개혁은 ①국민 눈높이 ②국민 피해 없는 개혁 ③충분한 국회 협의 ④여야 합의라는 핵심 키워드로 요약된다. 즉 검찰도, 야당도 납득할 수 있는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정 후보자는 검찰의 권한이 축소된다고 해서 민생에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소신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체제 변화로 국가가 갖고 있는 수사의 총역량이 후퇴하면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2000명의 검사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정치검사’로 불리는 특수통 검사 100명이 문제”라며 “검찰 개혁의 메스를 쥐되 ‘환부’만 도려낼 것이라는 게 정 후보자가 주변 측근들에게 밝힌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종민 “정치적 편향·수사 공정성 우려”
여당이 ‘검찰청 폐지’까지 포함된 검찰 개혁 법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국민의힘은 “대통령 방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이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의식한 ‘정치적 개악’이라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특히 민주당이 이미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사건 등을 ‘진상규명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검찰을 넘어 사법부까지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게 국민의힘의 시각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7월9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은 본인의 5개 형사재판은 틀어막고,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난 불법 대북송금 사건을 조작이라며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검찰의 집권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수사는 민주당 의원들이 소환에 불응하면서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당 무죄, 야당 유죄’ 이것이 독재정치”라고 비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검찰 개혁이 정치권의 ‘블랙홀’이 될 경우, 민생 의제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천하람 개혁신당 대표 권한대행은 7월3일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에서 “문재인 정부도 검찰 개혁에 지나치게 정치적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국민과의 거리감이 생겼다”며 “먹고사는 문제와 거리가 있는 사안에 정부가 너무 힘을 쏟아선 안 된다”고 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우려는 보수 야당만의 반응이 아니다. 진보 진영 일각과 법조계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개최한 공청회에선 민주당이 발의한 검찰 개혁 법안의 방향성을 두고 법조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소장)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건 수사를 개시하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며 “보완수사까지 막으면 기소의 질이 떨어지고, 공소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직접수사에만 맡겨둘 경우 오히려 평범한 시민이 사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국가수사위원회를 통해 정치권력이 수사기관을 직접 장악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정치적 편향과 수사의 공정성 훼손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반면에 검찰 조직 자체를 손대지 않고는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을 맡았던 김필성 변호사는 “법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는 검찰 조직의 구조적 한계를 넘을 수 없다”며 “공소청 신설과 수사·기소 분리 같은 논의는 오랜 시간 숙성된 개혁안”이라고 강조했다. 황문규 중부대 교수는 “검찰청 폐지는 검찰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며 “검사 중심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이미 폐해가 누적된 구조”라고 말했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쳇바퀴처럼 계속되는 가운데 마주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검찰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는 과연 더 정의로워질 것인가. 그 물음의 답이 무엇이든 개혁의 공도, 과도 결국은 그 깃발을 든 이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굿캅 베드캅’ 전략? 입장 차이? 檢 개혁 두고 미묘한 기류
한편,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여당 간 미묘한 입장차를 두고 일각에선 이를 ‘굿캅 베드캅’(강경파와 온건파 간 역할 분담)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혹은 양측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의 모습이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정 후보자는 검찰 개혁 4법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으며, 수사·기소 분리에는 동의하되 경찰의 무분별한 권한 확대에는 우려를 표시했다. 봉 수석 또한 검사 재직 시절 검찰 개혁에 소극적 입장을 보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성호·봉욱 라인’이 검찰 조직의 완전한 해체보다는 사법통제 기능을 유지하는 선에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검찰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두고 정부와 여당 간의 조율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