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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넘어 삶을 바꾼 단어의 힘,
리더는 함축적 언어로 세상을 다시 설계한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물건을 사고팔고, 사람을 설득하고, 조직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일의 중심엔 언제나 ‘언어’가 있다. 말이 곧 도구고, 말이 곧 힘이다. 비즈니스 세계나 정치의 세계에서 위대한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강한 자각과 세심한 설계력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맥락에 맞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reinvent(재발명)’라는 단어를 쓴 것은 단순한 수사적 선택이 아니다. 그는 단어 하나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일상의 판을 다시 짜는 혁신’을 암시했다. ‘새로운 스마트폰’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에 가까운 비전이었다. 이처럼 위대한 리더는 상황을 정확히 읽고, 그에 꼭 맞는 단어를 골라내고, 그것을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각인시키는 능력이 있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이 아닌, 설계이고 무기인 이유다.

그렇기에 그들의 말은 때로 거칠게 들릴 수 있다. 스티브 잡스나 제프 베조스가 직원들에게 쓴 말투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들의 말은 공손하지 않을 수 있으나, 핵심은 흐릿하지 않다. 잡스가 “나는 단지 천재들과 일하고 싶을 뿐”이라며 대규모 해고를 정당화했을 때, 그 말은 누군가에겐 폭력적이었고 누군가에겐 명확한 기준이었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어도 방향과 철학이 담겨 있다면, 그 언어는 팀과 조직의 구조를 다시 짠다.

“생각이 먼저냐 말이 먼저냐”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생각이 선행하는 건 맞다. 그러나 그 생각을 표현할 언어를 고르는 과정에서, 생각은 다시 한번 가다듬어지고 진화한다. 그러니까 언어는 단지 생각의 표현이 아니라, 생각을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문제는 오늘날 언어의 구조가 점점 빈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회는 언어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모티콘, 줄임말, 앞글자 조합… 소통은 빨라졌지만 사고의 깊이는 얕아졌다. 감정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생각을 조밀하게 빚어내는 데는 무력하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흐름을 ‘유행’이라 여긴다는 점이다.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유행어를 소비한다.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지 않는다. 생각의 농도가 옅어진다. 한자 교육이 사라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는 엄연히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며, 수많은 개념과 의미의 층위가 한자를 통해 드러난다. 언어를 잃는다는 건, 생각의 뼈대를 잃는다는 말과 같다.

철학과 신념을 잃은 정치인의 언어가 가장 저급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을 선동하고, 논리 없이 군중의 심리를 자극하며, 그 모든 말들이 단기적 이익에만 봉사한다. 증거도, 논리도, 진심도 없는 말이 난무하는 곳엔 믿음도 없다. 리더가 이런 언어를 구사한다면, 리더십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언어를 디자인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은 언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은 언어의 외피를 입어야만 구체화되고, 타인과 공유되며,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가 사유하고, 상상하고, 관계 맺고,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과정의 중심엔 언어가 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언어가 바뀌나?” 당연히 아니다. 언어는 태도와 절실함, 그리고 수많은 생각을 곱씹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처럼,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넘어가면서, 우리는 개념의 깊이를 더해간다. 그 축적이 곧 사유의 높이다.

개념이란 말의 의미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개념(concept)은 생각의 기둥이고 구조다. 좋은 개념 없이는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없다. 잡스가 “내 머리에는 5천 개의 컨셉이 있고, 매일 그것들을 조합하면서 새로운 걸 본다”고 말했듯, 개념은 창의적 발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재료’다.

그렇다면 언어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 사람이 쓰는 단어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 가치관, 철학이 보인다. ‘돈’을 중심어로 쓰는 사람과 ‘세상의 변화를’ 말하는 사람은 분명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정신지형을 보여주는 생각지도다.

사람의 언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주변 사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언어 분위기에 쉽게 물든다. 그래서 조직의 언어 수준이 곧 조직의 사고 수준이다. 리더의 말 한마디가 팀 전체의 언어 습관을 바꾸고, 그 언어는 다시 조직의 문화가 된다.

그래서 ‘신념사전’이 필요하다. 내 생각대로 살기 위해선, 내 언어를 가져야 한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철학, 개념들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두는 작업은 나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그것은 나의 ‘의식의 해부도’이자, ‘사유의 지도’다.

관점은 언어에서 나온다. 같은 장면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보는 힘은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할 때 생긴다. 존재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관점을 디자인한다는 건, 그런 의도를 언어로 명확히 드러내는 과정이다.

창의력도 언어의 연상에서 비롯된다. ‘병아리’란 단어에서 유치원생, 초보자, 봄의 이미지까지 떠올릴 수 있는 능력, ‘파도’란 단어에서 검은 해일, 여행, 위험, 해방감을 동시에 연상할 수 있는 능력. 이 연상의 폭이 넓고 유연할수록, 그 사람의 창의력도 커진다.

철학이란 결국 ‘나에게 중요한 단어’를 고르는 작업이다. 그 단어에 나만의 정의를 부여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비로소 나만의 철학이 완성된다.

말을 설계하는 사람은 인생도 설계할 수 있다. 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삶의 방향이 바뀐다. 중요한 건 태도다. 절실하면, 모든 것이 배움의 재료다. 절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도 흘러갈 뿐이다.

성장은 “아!”로, 행복은 “와!”로 완성된다. 언어는 감탄사로 시작해 개념으로 확장되고, 철학으로 정리된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쓸 말은, 당신의 내일을 만든다. 생각을 정리하라. 단어를 고르라. 당신의 언어를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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