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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金 국감 100% 출석” 자신했으나…의혹 확산에 여권 기류 급변
‘실세 참모’의 역설…野 제기 의혹 하나라도 사실이면 ‘정부 차원’ 리스크
‘인사 개입설’부터 ‘휴대폰 교체’ 의혹까지…운영위 출석 여부가 ‘분수령’

권력의 빛이 가장 밝은 곳, 그 아래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때로는 선출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며,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권력의 실체와 치부까지 쥐고 있는 인물. 야권은 이재명 정부의 그림자로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지목한다. 김 실장을 향한 야권의 ‘릴레이’ 의혹 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당초 그의 국정감사 출석을 예고했던 대통령실과 여당의 기류가 달라지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김현지의 국감 불출석’을 시사하는 목소리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출석한다 ”→“안 나가야”…달라진 與기류

민주당은 왜 김 실장의 국감 출석을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크게 3가지 이유가 지목된다. ①우선 김 실장을 둘러싼 의혹이 국감 중 일부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순간 ‘대통령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점(정권 차원의 리스크) ②의혹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김현지’라는 이름이 반복되는 것만으로도 정권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정국의 주도권) ③마지막으로 각종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의 예상치 못한 발언 하나가 정국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돌발 변수)이다. 결국 민주당의 ‘김현지 셈법’은 단순하지 않다. 그의 국감 출석을 허용해도, 막아도 부담은 여권의 몫인 셈이다. 국감이 어느덧 중반부를 향하는 가운데 정치권의 시선은 대통령실과 여당, 김 실장의 결단 시점에 쏠린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야권의 과녁엔 늘 ‘김현지’가 있었다. 성남시장에서 경기지사,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김 실장은 오랜 기간 이재명 대통령의 곁을 지킨 ‘그림자 참모’다. 현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실의 인사·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요직인 총무비서관, 이어 대통령을 일선에서 보좌하는 제1부속실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정작 김 실장의 구체적인 프로필은 베일에 싸인 채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국감을 앞두고 각종 상임위원회를 막론한 야권의 많은 의원실이 김 실장의 과거, 그와 이재명 대통령 인연의 역사, 김 실장을 둘러싼 의혹 등을 캐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실 보좌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배트맨(주인공)’이라면 김현지 실장은 ‘로빈(핵심 조력자)’이란 말이 있었다. 이 대통령의 커리어가 곧 김 실장의 커리어인 셈”이라며 “그런 두 사람이 권력의 최정점에 섰다. 이 대통령이 ‘선출권력 우위론’을 주장하지 않았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김 실장 실세설을 선출권력인 국회의원이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즉, 김 실장을 향한 야권의 공세는 돌발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정부·여당은 예고된 공세였던 만큼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야권이 김 실장을 ‘정권의 약한 고리’로 지목했지만 정작 그 의혹의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게 여권의 판단이었다. 이에 평소 단언을 삼가는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0월1일 공개된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실장의 국감 출석을 자신했다.

그는 “(김 실장의) 국회 불출석 논란은 매우 허망한 얘기”라며 “김 실장은 국회에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속실장은 국감에 출석하지 않는 게 관례이고, 민주당도 출석 요구에 동참해야 할 텐데’라는 거듭된 질문에도 “100% 출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실장의 오랜 지인으로 알려진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그에게 국감 출석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의원은 10월16일 KBC 《여의도 초대석》에 출연해 “제가 (김 실장에게) 전화했다”며 “‘아니, 너 똑똑한데 국정감사 받아라’ 그러니까 ‘안 나간다고 안 했어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중진, 나아가 김 실장 자신까지 국감 출석에 무게를 둔 셈이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병기 “김현지 의혹? 野가 조직적으로 만들어”

그러나 최근 여권 내 분위기가 다소 달라진 모습이다. 당장 김 실장에게 국감 출석을 권유했던 박지원 의원이 돌연 그의 ‘국감 불출석’ 당위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박 의원은 10월21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상황이 바뀌어 김 실장이 (국감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닷새 전만 해도 “출석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말이 바뀐 것이다. 박 의원은 “개인적으로 엊그제까지 (김 실장이 국감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국민의힘의 음모에 따라가주면 똑같은 난장판이 거기서 이루어질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당 지도부도 김 실장의 국감 출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19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실장 출석 논란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하는데, (커지는 것이 아니라) 논란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어떤 중대하게 확인돼야 할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 실장을 국감에 출석시켜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김 원내대표는 김 실장 출석을 요구하는 국민의힘에 대해 “국감을 열심히 할 생각은 없고, 국감을 파행시키고 정쟁으로 삼아서 자기네들이 내란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출하기 위해 (김 실장 출석 논란을) 악용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이어 “(국감을 하는) 상임위들을 보면, (국민의힘이) 조직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국감을 파행시키고 있다”며 “(김 실장 출석 요구는 국감을 파행시키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10월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김남준 대변인, 김현지 제1부속실장, 권혁기 의전비서관 ⓒ연합뉴스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10월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김남준 대변인, 김현지 제1부속실장, 권혁기 의전비서관 ⓒ연합뉴스

“김현지, 李 정부의 ‘아킬레스건’ 될 수 있다”

달라진 여당의 기류와 맞물려 김 실장 국감 증인 채택도 줄줄이 무산될 조짐이다. 법사위는 10월23일 서울고등검찰청 등에 대한 국감 전 전체회의를 열고 상정 안건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이 중에는 나경원 의원이 제출한 ‘이상호 변호사·김현지 1부속실장·설주완 변호사에 대한 추가 증인 채택의 건’도 포함됐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에 대해 과거 이재명 민주당 대표 관련 사건의 수사기밀을 빼냈다는 의혹을 추궁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국정감사와 직접 연관이 없다’면서 반대했다.

법사위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김 실장의 국감 출석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둔 운영위원회가 10월29일 전체회의에서 김 실장의 증인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법사위처럼 증인 채택의 키를 쥔 여당 위원들이 반대할 경우 김 실장에 대한 증인 채택은 무산된다. 운영위원회 위원장이 김 실장의 국감 출석 요구를 ‘국감 파행을 노린 정치공세’로 의심한 김병기 원내대표라는 점도, 김 실장의 증인 채택이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왜 민주당은 김 실장의 국감 증인 채택을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우선 실체 없는 논란쯤으로 보던 김 실장을 둘러싼 의혹이 예상보다 커지면서 사안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해석이 있다. 실제 김 실장과 이 대통령이 ‘정치적 동반자’에 가깝다는 의심은 이제 증언과 영상 등을 통해 윤곽이 일부 드러난 모습이다.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이화영 전 부지사의 변호인였던 설주완 변호사는 과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보좌관이던 김현지 실장이 사임을 종용하는 전화를 했기 때문에 그만두게 됐다고 TV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장했다. 10월20일 이기인 개혁신당 사무총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4년 3월 이 대통령과 김 실장이 성남시의회에 난입하던 당시의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총장은 “그들의 결합이 얼마나 긴밀하고 위험한지 확인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는 김 실장의 잦은 휴대전화 교체 문제를 두고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기도 했다. 과방위 소속인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10월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관련 주요 사건 때마다 김 실장이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박 의원을 형법 제307조 제2항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다고 밝혔으나, 박 의원은 “김 실장이 이 대통령의 사법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있다. 혹시라도 압수수색이 될 수 있기에 휴대전화를 교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김 실장은 ‘인사 개입’ 의혹에도 휩싸였다. 앞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김 실장이 김인호 산림청장 인사, 이영호 전 대통령실 해양수산비서관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이 모든 의혹이 ‘흑색선전’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김현지’라는 이름이 국감장에서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정부·여당엔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의혹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최측근이 공개 검증의 장에 서는 순간 정권의 신뢰가 같이 시험대에 오른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국감 출석을 허용하면 ‘돌발 변수’ 위험이 있고, 막으면 ‘은폐 프레임’이 뒤따른다는 점도 여당의 고민을 키우는 지점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10월21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김현지 실장 국감 출석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압도적”이라며 “그럼에도 민주당이 총력 방어에 나선 건 이 사안에서 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실장이 국감장에 나가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여당이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김 실장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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