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경정, 수사팀 투입” 이 대통령의 이례적 지시에도 백 경정-임은정 지검장 갈등 이어져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대통령이 직접 특정 경찰관을 거명하며 수사팀 투입을 지시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윤석열 정부의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백해룡 경정이다. 폭로의 당사자를 검경 합동수사팀에 넣으라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의 지시에 따라 특별검사 대신 대검찰청에 합동수사팀이 꾸려졌고, 이는 임은정 검사장이 이끄는 서울동부지검장 지휘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백 경정은 여러 친여(親與) 성향 유튜브에 출연해 “현 정부가 검경 합동으로 꾸린 수사팀은 불법”이라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수사 대상인 검찰이 수사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이 대통령이 백 경정을 ‘콕’ 집어 수사 권한을 줬음에도 백 경정은 계속해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정작 수사기관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까지 얽혔다는 백 경정의 의혹 제기에 대해 “실체가 없는 게 아니냐”는 회의감이 제기되고 있다. 백 경정은 경찰 수사 기록 이첩, 수사 대상인 검찰이 수사를 지휘하는 구조 등을 이유로 합동수사팀을 불법단체로 규정했다. 그러나 백 경정의 돌출 행동을 두고 ‘출구 전략’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백해룡 “검찰은 수사 대상…검경 합수팀은 불법” 주장
사건은 2023년 1월 말레이시아 국적 피의자들의 필로폰 74kg 밀수에 세관 직원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당시 마약 조직원 2명은 메스암페타민, 이른바 ‘필로폰’을 테이프로 몸에 감은 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백 경정(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은 같은 해 9월 조선족 관련 사건 수사 중 마약을 공급한 상선으로 이들을 인지했다. 이후 “공항을 빠져나갔다”는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세관 직원들에 대한 수사로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경찰 윗선 등의 압박 때문에 수사가 중단됐다는 게 백 경정의 주장이다. 결국 같은 해 10월 밀수범 14명을 검찰에 구속 송치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후 백 경정은 2024년 8월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 김찬수 영등포서장(총경)의 전화를 받았고 ‘용산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잠잠해진 듯한 의혹은 탄핵 정국에서 재점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발의된 관련 상설 특검안을 3월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이 사안은 대대적인 특검 정국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정권 교체 직후인 지난 6월 12·3 비상계엄과 김건희 여사, 순직해병 수사 외압 등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3대 특검이 본격화했다. 여기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은 주요 사안에서 뒤로 밀렸다. 다만 이 대통령은 상설특검안을 주문했다.
그러자마자 대검찰청은 6월10일 검경 합동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여기에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의 사전 지시가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검경 합동수사팀에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사실상 반영된 셈이다. 이에 따라 해당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대검찰청 지휘하에 검찰과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20명 규모의 합수팀이 꾸려졌다. 백 경정을 제외한 사건 당시 수사팀 인원들도 합류했다.
백 경정은 이후에도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검찰이 세관 직원 연루설을 무마했다는 취지다. 마약 조직원이 소지한 수첩에 기재된 12명의 명단 등 관련 수사도 덮었다고 주장했다. 백 경정은 전화 인터뷰와 유튜브 등을 통해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의 입국 절차 관련 관세청 연루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와 심우정 전 검찰총장(인천지검장) 등 ‘윤석열 사단’ 및 강력통 검사들의 봐주기 수사 △국가정보원의 의혹 사전 인지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김건희 여사 일가의 마약 유통을 돕기 위함이라는 관측까지 내놨다.
사건을 톺아보면, 검찰은 앞서 2023년 2월 김해국제공항에서 필로폰 7kg을 소지한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 3명을 붙잡았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같은 해 1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필로폰을 밀반입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우선 증거물이 확보된 2월 사건에 대해서만 이들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한 후 각각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상책은 징역 10년을, 나머지는 각각 8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당시 검찰은 상책의 수첩을 확보했는데, 여기에 기재된 조직원 12명 중 3명을 잡은 것이다. 검찰은 나머지에 대해 승객정보사전분석시스템(APIS)을 요청했다. 이는 모든 항공사로부터 국내 입항 2시간 전 또는 출발지 국가에서 출항 후 20분 이내 승객 정보를 전송받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같은 해 7월 여자 조직원 2명의 인천공항 입국 사실을 파악했다. 그런데 관세청과 함께 수색한 결과 마약이 적발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장외서 여론전만 하지 말고 직접 수사해 결과 가져오란 뜻”
이로부터 약 2개월 후 백 경정 수사팀이 마약 수사를 하던 중 이들 2명이 상선으로 특정됐고 세관 연루설과 관련한 진술도 나온 것이다. 백 경정은 앞서 “조직원이 세관 직원 4명을 정확히 특정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의 진술이 실제 상황과 일부 배치된다는 점이다. 한 여성이 특정한 세관 직원의 경우 사건 당시 연가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한 명은 당시 근무자가 아닌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처럼 세관 직원 관련 진술이 일부 엇갈리는 상황에서 ‘세관 연루설’이 퍼진 것이다. 당초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세관 직원이 마약 밀수에 가담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검경 합동수사팀은 출범 이후 인천세관과 직원 주거지 등 10여 곳 등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20여 명의 마약 밀수범 등을 입건했다.
그러나 백 경정의 주장대로 세관의 조직적인 연루나 검찰·국정원 등의 관여 의혹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검은 지난 8월말 신속한 의사결정과 공정성 담보 등을 이유로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에게 권한을 넘겼다. 임 지검장은 지난 7월 부임 직후부터 백 경정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10월12일 백 경정을 콕 집어 합동수사팀 파견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임 지검장은 별도 소규모 팀을 구성하고 백 경정에게 수사를 맡기겠다고 했다. 백 경정 자신이 피해자이자 고발 당사자인 ‘수사 외압’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다.
그러나 백 경정은 검경 합동수사팀이 불법단체라며 반발했다. 특히 파견 첫날인 10월15일 출근하지 않고 연가를 쓴 채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임 지검장 등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에게 팀장으로서의 전결권까지 부여한다고 밝혔지만, 검찰에 대한 백 경정의 반발 여진은 이어졌다. 현재 백 경정팀의 경우 시스템 정비 등 수사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경찰 내부에서조차 “백 경정은 본인이 맡은 사건만을 강직하게 수사하는 인물”이라면서도 “그러나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의 경우 마약 조직원들 간 진술이 엇갈리는 데다 ‘윗선’의 수사 무마를 입증하는 증거 기록들이 존재하지 않아 실체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이례적인 수사팀 투입 지시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됐다. 백 경정을 향해 “유튜브 등 장외(場外) 여론전만 펴지 말고 직접 수사해 결과를 가져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백 경정은 앞서 검찰의 봐주기 수사 등 관련 증거 기록을 수개월에 걸쳐 모아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의혹의 실체는 백 경정이 직접 참여하는 합동수사팀의 수사 결과에 따라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