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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정책 약발’ 고위 당직자들의 ‘내로남불’에 집값 전망은 ‘우상향’
‘여론 악화→보궐 패배→대선 패배’ 연쇄 작용…지방선거 앞 당정 갈등 격화?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력”(당대표 시절 신년 기자회견), “사상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대선후보 수락연설), “이념과 구호가 아니라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실천”(국회 첫 시정연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오른쪽)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오른쪽)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 철학은 단연 ‘실용주의’다. 이념과 진영, 여야를 떠나 경제·민생 문제에 실용적으로 대응한다는 이 기조는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일관되게 내세워온 정부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가 실용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활용한 방식 중 하나는 ‘과거의 진보와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진보 정권의 이념 중심적 국정 운영에서 벗어나 반대편의 정책도 과감히 수용하겠다는 메시지는 공식 석상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했다.

이 가운데 부동산은 과거 진보 정권과의 차별성을 가장 각별하게 부각해온 분야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5월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보 정권은 기본적으로 수요 억제 정책을 했는데 시장이 이겨낸다”며 “(이재명 정부는) 지금까지의 민주 정부와는 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서초 유세에서는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면 집값이 올랐다. 다른 지역과 괴리감이 생겨도 서로 비싸게 사고팔겠다는 걸 굳이 압박해서 낮출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고, 대선 공약집에는 “초고가 아파트 가격 상승 억제 중심에서 중산층·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공급 중심의 주거 정책에 집중한다”고 썼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실패를 겨냥한 이런 발언을 일각에선 ‘파격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랬던 이재명 정부에 최근 들어 문재인 정권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7~22년 임기 5년 동안 총 28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 상승을 막지 못했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4개월여 만에 벌써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특히 고강도 수요 억제 정책인 10·15 부동산 정책은 ‘과거 진보와는 다른 실용주의’ 기조를 스스로 뒤집은 것이라는 비판도 낳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는 여론 악화와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대선 패배로 이어지는 연쇄적 악재로 작용했다. 부동산은 단순한 ‘집값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존립을 좌우하는 생존의 문제였다는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던 이 대통령의 고심은 계속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실언과 정책 혼선에 따른 당정 균열 조짐까지 보이면서, 부동산 ‘정책 리스크’가 ‘정치 리스크’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민주 정부 정책과는 다를 것”이라더니

이번 10·15 대책은 어떤 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닮아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발표 때마다 실효성에 대한 ‘불안감’을 동반했다. 고강도 대책으로 집값이 잠시 진정돼도 결과적으론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며 대책의 ‘약발’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는 임기 종료 후 수치로도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서울 아파트 국민평수인 30평형 평균 시세는 5억8000만원에서 12억60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역대 정권 중 최대 상승 폭이다.

이 대통령의 10·15 대책에도 ‘불안’이 끼어있다. 대책 발표 이후 규제 지역 아파트 거래량과 매물이 크게 줄어들면서 일부 지역은 단기적 조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자금의 이동과 거래를 동시에 묶어버린 이번 규제 특성상 단기적 급등은 막아도 장기적인 안정세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게다가 전세 매물이 급격히 줄면서 전셋값 상승에 따른 전월세 시장의 부작용도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공급 대책 등 근본적인 해법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불안과 별개로 여권 인사의 언행이 국민적 ‘불만’을 증폭시킨 점 역시 문재인 정부와 닮아있다. 문재인 정부 고위직 인사들은 투기 논란부터 실언까지 부동산 관련 이른바 ‘내로남불’ 행보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대표적으로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재직하던 당시 재개발 호재가 있던 상가를 ‘영끌’로 구입해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 투기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문재인 정부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는 없다”는 발언으로 공분을 산 데 더해 자신의 아파트 가격은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10억7000만원 상승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서울 강남에 집 두 채를 보유하고 있던 김조원 전 민정수석의 경우 고위공직자 주택 처분 지시가 떨어지자 집을 파는 대신 사퇴하기까지 했다.

이재명 정부의 흐름도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값이 떨어지면 사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은 30억원대 고가 아파트 갭투자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로남불’ 논란 끝에 사퇴했다. 여당에서의 실언도 잇따랐다. 복기왕 민주당 의원은 “15억원 정도면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라고 말해 ‘불가촉천민 논란’을 일으켰고, 김병기 원내대표는 “수억, 수십억원의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하는 것이 맞나”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2주택 보유 논란에 휩싸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매각을 선언한 집의 가격을 직전 실거래가인 18억원보다 4억원 높은 22억원으로 올려 추가 논란을 자초했다. 비판이 나오자 이 원장은 가격을 재차 18억원으로 내렸고, 해당 아파트는 반나절 만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10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국 광역의원 및 강원도 기초의원 연수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부동산 정책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국 광역의원 및 강원도 기초의원 연수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부동산 정책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성난 민심에 당정 엇박자…후속 정책 오락가락

이 같은 불안과 불만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전방위적인 ‘불신’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에도 소비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는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0월 122로 전월보다 10포인트 상승했는데, 이는 2021년 10월(125)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다. 비슷한 현상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나타났다. 2020년 12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32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가 이미 24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낸 뒤였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3불(不)’ 구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정부·여당도 이런 상황을 의식해 대책 발표 직후부터 각종 후속 대책을 연달아 거론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당정 간 엇박자와 혼선이 빚어지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세제개편을 둘러싼 당정의 입장차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고가의 집을 보유하는 데 부담이 크면 집을 팔 것이고 유동성이 생길 것”이라며 보유세 인상을 비롯한 부동산 세제개편을 시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검토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오히려 정부와 반대 노선을 택했다. 지난 대선 당시 현행 유지를 공약했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의 완화·폐지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이익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그 초과분을 정부가 거둬들이는 규제로 개발이익의 사회환원을 도모할 수 있지만, 주택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민주당이 정부와 엇박자를 내고 재초환을 옹호하는 입장까지 뒤집은 데엔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위기감이 자리한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을 옹호할지, 여론을 챙길지를 두고 당내에서도 혼선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초환 완화·폐지에 대해 “당 차원의 공식 논의는 없다”고 다시 선을 그으며 입장을 뒤집었다. 진성준 의원 등 민주당 일부는 보유세 인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여기에 임차인의 주택 전세계약을 최대 9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이른바 ‘3+3+3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당정이 각종 부동산 대책을 계속 거론하면서 시장의 불확설싱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함구령’ 내린 정청래의 의미심장한 ‘침묵’ 

이렇다 보니 정책 발표 이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커지는 흐름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0월23~24일(10월 4주 차)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2.4%포인트 하락한 44.1%로 집계됐다. 특히 같은 기간 중도층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이 48.4%에서 42.3%로 6.1%포인트 떨어지면서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한층 짙은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으로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이 추진하지도 않은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 때문에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는 민주당의 트라우마와도 연관돼 있다. 2021년 4·7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도 여권 고위 인사들의 다주택 논란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사태 등이 겹치면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한 바 있어서다. 당시에도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대출 규제 완화와 평당 1000만원대 반값 아파트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면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공을 들였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현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은 부동산과 관련해 ‘반성문’까지 내놨다.

그럼에도 부동산 문제에서 시작된 민심 악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 모두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민주당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무턱대고 옹호하기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특히 후속 대책에서까지 부정적인 민심이 감지될 경우 민주당이 정부 정책과 대척점에 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청래 대표의 함구령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정 대표는 최근 “부동산 문제가 매우 민감하다”며 당내 의원들에게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지난 8월에도 정부가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를 추진하자 당내에 공개 발언을 자제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평소 정부 정책을 선명하게 옹호하고 야당과 각을 세워온 정 대표일지라도 부정적인 여론이 감지될 때면 신중 모드로 돌아서는 것이다. 대주주 양도세의 경우 여론의 역풍에 못 이긴 정부가 정 대표에게 백기를 들었다. 부동산 문제를 두고도 향후 유사한 당정 간 정책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 당정이 상황을 지켜보자는 관망세로 전략을 선회한 만큼 향후 여론의 향방에 따라 당정의 태도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언론 등에서 거론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보유세 강화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도 논란에 휩싸인 정부 고위직들의 집을 팔도록 건의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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