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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이주비 대출 축소 ‘이중고’
비강남부터 사업 급제동…건설사 속속 손떼기

10·15 부동산 대책의 규제 칼날이 수도권 정비사업을 덮쳤다. 조합원 지위 양도가 막히고 이주비 대출마저 축소되면서 재건축·재개발은 물론 리모델링까지 추진 동력이 약해진 모양새다. 조합원 자금줄이 막히면서 비강남권을 중심으로 사업 속도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월16일부터 서울 전역과 분당·과천·수원 등 경기도 12개 지역이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상태다. 무주택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40%로 낮아졌다. 15억원 이하 대출 한도도 6억원으로 제한됐다.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재건축 구역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 구역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된다. 조합원 지위를 승계하지 못하면 현금 청산 대상으로 분류돼 거래 자체가 막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이 적용되는 사업장은 약 210곳, 16만 가구에 달한다. 거래가 막히면 조합원들은 권리를 팔고 빠져나갈 길이 막히고, 늘어나는 분담금 부담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만 버티고 나머지 지역은 속도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에 따라 주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이 상당 부분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0월24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와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에 따라 주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이 상당 부분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0월24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와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이주비 대출 쪼그라들자 일정 ‘올스톱’

정비 업계 관계자는 “강남은 웬만한 규제에도 매수 대기 수요가 두텁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며 “하지만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이나 도심권은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조달하기가 더 어려워져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이주비 대출 규제가 가장 큰 변수로 떠올랐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는 LTV 40% 적용으로 기존보다 조합원 이주비 조달 금액이 크게 줄어든다. 주택 가격 10억원 기준으로 보면 예전에는 6억원까지 이주비 대출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4억원 수준에 그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리모델링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 당국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면서 서울 80여 개 리모델링 조합도 자금난에 직면했다.

보통 조합원들은 기존 주택 감정평가액의 60%까지 이주비 대출을 받아 세입자 보증금 정산이나 임시 거처 마련에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에 한도가 낮아지면서 자체적으로 더 많은 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주비 확보가 막히면 이주가 늦어지고 철거·착공으로 넘어가는 일정이 모두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현장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주공4단지는 구청에 신속통합기획안을 제출하고 내년 초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속도를 내왔다. 하지만 규제 발표 직후 “집을 팔고 나가겠다”는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의견 수렴 자체가 멈췄다. 내부적으로 사업 속도를 늦추자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상계주공5단지 역시 사업시행인가를 받아 이주 절차를 앞두고 있지만 분담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조합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가구당 최소 5억원대 분담금 추산이 나온 데다 이주비까지 줄어들면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계주공5단지 한 조합원은 “집을 팔아야 이사비가 나오는데 거래가 막히면 꼼짝없이 묶인다”며 “지금은 이주 일정을 논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비강남권이 이번 규제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비 업계 관계자는 “추진 초기 단계인 단지들은 조합 구성 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크고,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들은 분담금 부담 급증으로 이주 시점을 못 잡고 있다”며 “결국 강북권부터 정비사업이 멈춰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오세훈 서울시장(가운데)이 10월16일 서울시청 간담회장에서 ‘서울시 정비사업연합회’ 소속 주민대표들과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민관 정책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가운데)이 10월16일 서울시청 간담회장에서 ‘서울시 정비사업연합회’ 소속 주민대표들과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민관 정책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정부 “재건축·재개발 지원”…현실은 역주행

건설 업계도 비상이다. 한국신용평가는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건설사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이번 규제로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도권 정비사업 중심으로 수주를 확대해온 만큼 사업 지연이 곧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규제 지역 확대와 대출 제한으로 민간 개발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비사업 비중이 큰 건설사일수록 중장기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착공 지연은 곧 실적 쇼크로 연결된다. 인허가가 미뤄지고 착공이 늦어지면 공사비 지급 시점이 뒤로 밀린다. 이는 자금 회전을 기반으로 하는 건설사의 수익 구조를 흔드는 요소다. 신용평가 보고서는 “정비사업 진행 지연은 매출인식 지연·유동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건설업체들의 수익성과 재무 안정성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사업성 악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은 자금이 부족하고, 건설사는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며 “조합이 분담금을 낮춰달라고 하면 건설사는 공사비를 줄일 수 없어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건설사는 수익성이 낮은 단지의 입찰 참여를 보류하거나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건설 업계 관계자는 “강남 3구는 조합원 자금력이 받쳐주니 버틸 수 있지만, 비강남 지역은 사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원가율이 높아 수익성이 낮은 단지부터 시공사 선정이 무산되거나 입찰이 연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10월28일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 재개발 현장을 방문해 정부 차원의 전방위 지원 의지를 밝혔다. 김 장관은 “재건축·재개발이 도심 주택 공급을 책임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며 “방법을 총동원해 충분한 주택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성수1지구는 한강변 대규모 재개발 사업지인 성수전략정비구역의 핵심 사업지로 꼽힌다. 2004년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사업이 20년 가까이 표류했으나 최근 시공사 선정과 용적률 상향 특례 적용 등을 거치며 본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규제 강화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과 이주비 대출 축소 등으로 인해 사업 여건이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비사업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규제지역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정비사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며 “집값이 문제라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오히려 대출과 거래를 동시에 막아선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규제만 강화했고 공급 확대 대책은 없다”며 “정비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대출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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