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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범죄 해마다 증가세,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인까지 위험 노출
피해자의 신상 정보 잘 알고 적개심 높아 잔혹성 더해

‘보복범죄’는 어떤 것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다. 대부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형사사건 수사나 재판과 관련한 고소나 고발 등 수사 단서 제공, 진술, 증언 등에 대한 보복 목적의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연인에게 이별을 선언한 후 당한 범죄 피해를 신고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전 애인으로부터 폭행·협박·살해 등의 피해를 입는 것도 보복에 의한 범죄다.

문제는 보복범죄가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복범죄는 2020년 298건에서 2021년에는 434건으로 급증했다. 이후 2022년 421건, 2023년 457건, 2024년 466건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보복범죄 유형을 보면 보복협박이 1092건(52.6%)으로 가장 많았고, 보복폭행(401건·19.3%), 보복상해 (167건·8.0%) 순이었다. 같은 기간 보복살인도 13건이나 있었다.

보복범죄 대부분은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이나 직장, 가족 등 신상 정보를 알고 있어 위험성이 더 높다. 또 그 피해가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등에게도 미칠 수 있어 심각성이 더하다. 보복범죄는 누구나 당할 수 있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당하면 사실상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8월2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서 30대 여성을 살해한 김씨가 도주한 후 검거돼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8월2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서 30대 여성을 살해한 김씨가 도주한 후 검거돼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우발적 아닌 계획범죄 늘고 범행 수위도 높아

11월4일 오전 10시20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 사무실에 흉기를 든 조아무개씨(남·66)가 들어왔다. 당시 사무실에는 조합 관계자인 70대 남성 1명, 50대와 60대인 여성 2명 등 3명이 있었다. 조씨는 이들에게 미리 준비한 흉기(과도)를 마구 휘두르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흉기에 찔린 남녀 2명이 바닥에 쓰러졌고, 60대 여성이 피를 흘리며 건물 밖으로 달아나자 조씨가 뒤따라 나와 공격을 이어갔다. 

다행히 현장을 지나던 시민들이 나서 조씨를 막았고, 그를 제압한 후 경찰에 넘겼다. 피해자 3명 중 50대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고, 다른 2명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이 조합의 직전 조합장이었다. 피해자 중 1명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입건돼 조합장에서 해임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범행에 나섰던 것이다. 

조씨는 처음에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고, 피해자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조씨는 또 범행 대상 외에도 피해자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살해하려고 했다. 보복범죄 피해가 이해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들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보복범죄 대부분은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범죄 형태로 나타난다. 범행 수위도 점점 높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아무개씨(남·36)도 그랬다. 그는 화성 동탄신도시 오피스텔 건물에 위치한 한 마사지숍에 손님으로 방문하면서 업주인 중국 국적의 30대 여성 A씨와 가까워졌다. 

이후 두 사람은 몇 년간 알고 지내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지난 5월 A씨가 “김씨로부터 강간당할 뻔했다”며 경찰에 강간미수로 신고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김씨는 이를 무마하려고 A씨에게 수백 회에 걸쳐 문자를 전송하거나 전화를 거는 등의 방법으로 스토킹했다. A씨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이번에는 성매매특별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결국 김씨는 A씨 살해 계획을 세운다. A씨의 차량에 동의를 받지 않고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불법으로 위치정보를 수집했다. 이런 방식으로 A씨의 집 주소와 동선을 파악했다. 준비가 끝나자 약 3개월 후인 8월21일 새벽 A씨가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흉기로 공격해 살해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렌터카를 타고 강원도 홍천군으로 이동한 뒤 차를 버리고 야산으로 도주했다. 경찰은 채취증거견 등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고, 범행 다음 날인 8월22일 오전 김씨를 붙잡았다. 차 안에서는 범행에 사용한 흉기 등이 발견됐다. A씨 또한 무방비 상태에서 김씨의 공격을 받아 미처 피하지 못했다. 

11월4일 60대 남성 조씨가 흉기 난동을 벌여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재개발조합 사무실 입구에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11월4일 60대 남성 조씨가 흉기 난동을 벌여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재개발조합 사무실 입구에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보복이 두려워 사실대로 증언하지 않는 일도

보복범죄의 특징 중 하나는 잔혹성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그 분노를 잔인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살해한 서동하(34)도 그중 한 명이다. 서씨는 여자친구 B씨와 4개월 정도 사귀다 헤어졌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는 병적으로 집착하며 스토킹에 나섰다. B씨는 세 차례에 걸쳐 서씨를 스토킹 등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법원에서 접근금지와 통신금지 등의 결정도 받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서씨는 B씨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는 인터넷 중고거래를 통해 흉기 1개를 미리 구입했다. 지난해 11월8일 오전 B씨가 살고 있는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몰래 숨어있다가 B씨가 나타나자 아파트 현관 앞까지 뒤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무려 55회를 찔러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장에 있던 B씨의 어머니까지 공격해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경찰은 서동하의 이름과 나이 등 신상 정보와 머그샷 등을 공개했다. 

고등학교 동창생을 오피스텔에 감금한 후 장기간 폭행과 고문을 가해 살해한 비정한 친구들도 있었다. 2021년 6월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박아무개씨(20)가 숨진 채 발견된다. 당시 박씨는 체중이 34kg밖에 안 될 정도로 말라있었고, 옷이 벗겨진 채 화장실에 있었다. 경찰은 학대와 폭행 정황을 포착하고 신고자이자 피해자의 고등학교 동창생인 김아무개씨와 안아무개씨를 조사한 끝에 이들에게서 범행을 자백받았다. 

피해자인 박씨는 가해자들의 학교폭력 피해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가해자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계속 학대와 착취를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 박씨 측이 상해죄로 고소하고 경찰 조사를 받자 여기에 앙심을 품는다. 이때부터 박씨를 오피스텔에 감금하고 굶기면서 약 두 달 동안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들에게는 재판에서 징역 30년이 확정됐다. 

폐쇄회로(CC)TV가 전국 방방곡곡에 거미줄처럼 설치되고, 작은 쪽지문으로도 용의자의 신원을 가려내고, 유전자(DNA) 분석 기술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지만 이것이 사건 해결의 만능은 아니다. 과학수사가 발전하는 속도 못지않게 범죄수법이나 형태도 지능화·조직화하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서다. 

지금도 CCTV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지문감식에도 한계가 있고, DNA도 비교 대상이 없다면 범인을 찾아내기 힘들다. 여전히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목격자, 관련 증언, 신고 등이 중요시되고 있다. 실제 형사재판 과정에서 심리 시간의 대부분을 증인심문에 할애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범죄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등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를 증인의 말 한마디는 재판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현재의 법규는 증인에게 “진실만을 말할 의무”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신변 보호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신고자나 증인 등에 대한 보복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증인들은 보복이 두려워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사실대로 증언하지 않는 일도 있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나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면하거나 법망을 빠져나오게 되고, 엉뚱한 사람이 누명을 쓰거나 제2·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6월22일 서울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해 살해한 피의자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22일 서울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친구를 감금해 살해한 피의자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신고자와 증인 보호할 강력한 조치 필요

보복범죄가 만연하면 보복이 두려운 범죄 피해자는 신고를 꺼리게 되고, 증인은 증언을 왜곡할 수도 있다. 피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은 물론 사회 분위기도 위축될 수 있다. 보복범죄는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을 위협하는 범죄인 것이다. 

범죄 피해자와 증인 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범죄피해자보호법과 증인 보호 프로그램 등을 통해 범죄 피해자와 증인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마련토록 규정하고 있다. 특가법에 따라 보복범죄에 대해서는 일반 범죄에 비해 더 무겁게 가중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살인죄는 최소 형량이 징역 5년이지만, 보복살인의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보복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피해자와 증인을 위한 제반 시설도 부족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전국 60개 법원 중 ‘일반 증인지원실’이 설치돼 있는 곳은 36곳에 불과하다. 이 중 32곳(88.9%)이 비수도권 법원이었다. 

일반증인지원실은 형사사건 일반 증인을 대상으로 재판 절차·진술 방법을 안내하고 증언 전 심리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기와 휴식 공간이다. 다수의 지방법원은 피해자와 증인을 위한 대기 공간이 없는 셈이다. 자칫 형사사건의 유력한 증인이 법원에 출석했다가 위해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신고자와 증인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한 2차 범죄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신고자의 개인 신상이 가해자에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더욱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하고, 실효성 있고 장기적인 신변 보호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형사사법 기관에서는 현재 운용 중인 관련 프로그램을 다시 한번 점검해 부족한 부분은 적극 시정하고 보완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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