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 포기’ 반발을 지지층 결집으로 덮기? 李 “신상필벌은 기본”
‘시점’도 ‘절차’도 논란…“李 공언했던 ‘실용과 통합’ 정신에 위배” 지적도
2024년 12월3일 그날,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가담하거나 공모한 공무원은 얼마나 될까. 이재명 정부가 75만 명에 달하는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내란 가담자’를 색출하겠다며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자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TF가 개인 휴대전화 제출을 유도하고 비협조 시 직위해제까지 언급한 조사 방식이 ‘위헌적 사찰’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 TF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그러나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과 맞물리며 이재명 정부의 ‘내로남불식(式) 정의 구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야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3대 특검이 이미 가동 중인 가운데 여권 일각에서도 ‘민심의 역풍’, 나아가 ‘개혁 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與 “尹 정권과 국민의힘이 원인 제공”
‘대통령이 되면 정치 보복에 나설 것인가.’ 지난 대선 내내 이재명 후보는 이 물음을 마주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전후 더불어민주당이 외쳐온 ‘내란 청산’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국민의힘의 우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당시 밀어붙였던 ‘적폐청산’의 기억이 겹치며 만들어진 의심이었다. 이 후보는 그때마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헌정 질서를 훼손한 범죄에 대한 규명과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대선 3일 전인 5월31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정치 보복이란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정치적 이유로 저질러서 상대를 가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통째로 파괴하고 국민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국회를 사실상 해산시키는 등의 범죄를 정치적 상대가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건 초보적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말한 ‘초보적 정의’는 그가 취임 직후 재가한 ‘3대 특검법’을 통해 구현되는 듯했다. 특검 칼날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등이 줄줄이 구속됐고, 계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은 구속 기로에 섰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민생과 외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정치의 영역에서 곪아가던 12·3 비상계엄의 상처는 마침내 사법의 영역에서 아물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돌연 변수가 발생했다. 정부가 특검 수사와는 별개로 ‘내란 공무원’을 직접 색출하겠다며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출범시킨 것이다. “특검이 연장되는 바람에 지금 시점에서 이 조사를 하지 않으면 내년 인사에 반영할 수 없다”(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TF는 중앙행정기관 49개를 대상으로 비상계엄에 연루된 공무원들을 솎아내기 위해 인터뷰 심문, 서면조사, 디지털 포렌식 등을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비상계엄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공무원에게 휴대전화를 자발적으로 제출할 것을 유도하고, 해당자가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대기발령·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하는 방법도 고려할 방침이다.
TF의 컨트롤타워는 국무총리실이지만 사실상 ‘명심(明心·이 대통령 의중)’이 실렸다는 관측이 많다. 이 대통령은 11월16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신상필벌은 조직 운영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내란 극복도, 적극행정 권장도 모두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필벌’(必罰·잘못한 사람은 예외 없이 처벌해야 한다) 언급이 TF 출범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신호로 읽힌다는 해석이 나온다.
李, 과거엔 “사고 치면 핸드폰 뺏기지 말라”
정부가 특검에 이어 ‘내란 공무원’을 색출하는 TF를 별도로 출범시키자 야권은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과거 대선후보 이재명이 ‘정치 보복’으로 정의했던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정치적 이유로 저질러서 상대를 가해하는 것’이 이번 TF라는 게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크게 ①영장 없이 공무원의 휴대전화까지 들여다보겠다는 TF의 구상(절차적 정당성 문제) ②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 후 TF 출범이 발표됐다는 점(정치적 시점의 문제) ③나아가 이것이 이 대통령이 공언했던 ‘실용과 통합’ 정신에 위배된다(국정 기조와의 정합성 문제)는 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월17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TF에 대해 “휴대전화를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제보센터를 만들어 동료 직원의 고발을 수집하는 건 북한에서나 목도할 수 있는 불법적인 공무원 사찰”이라며 “공무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려면 가장 먼저 이 대통령의 휴대전화부터 파헤쳐보기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 몰이 공포정치에 손수 나선 것 같다”고 했다.
야당은 11월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TF와 관련, 대통령실 참모들을 향해 전방위 비판을 가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개인) 휴대폰의 자발적 제출에 협조하지 않으면 직위해제 또는 수사 의뢰를 하겠다는 건 ‘신종 입틀막’”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조지연 의원도 “일선 공무원들이 무슨 죄가 있냐”며 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실 참모들을 향해 “수사는 수사기관에서 하는 것이고 지금 할 일이 많다. 그 일에 집중하라”고 했다.
TF 출범 후 공직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 기조가 확산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11월13일 페이스북에 “(TF가) 내란 관련 증거를 찾는다며 (휴대폰을) 모두 열어서 ‘윤석열’ ‘이재명’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볼 것”이라며 “공무원은 평소에 사적인 공간에서도 이제 대통령 욕도 못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통령의 9년 전 발언을 소환하며, 그가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저격했다. 이 대통령은 2016년 11월 당시 경기도 성남시장 신분으로 서울 광진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시국 강연회에 참석해 청중을 상대로 “전화기에는 여러분의 인생 기록이 다 들어있다”며 “여러분은 절대로 사고를 치면 전화기를 빼앗기면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아가 정치권 한편에서는 정부가 TF를 출범시킨 ‘타이밍’이 공교롭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인사 반영’을 이유로 연말에 TF를 띄웠으나 정권 출범 후 약 6개월, 12·3 비상계엄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시각이 있다. 이에 일각에선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 등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정부가 ‘내란’을 꺼내들며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1월18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대장동 항소 포기로 정부·여당이 위기를 맞다 보니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이때 헌법존중TF를 띄우면서 전선을 분산시켰다. TF에 반대하면 마치 ‘내란 세력’처럼 몰아세우는데, 철저한 진영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미래민주당 창당주주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11월16일 페이스북에 “공무원 휴대전화와 PC 조사에 전체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며 “피고인 대통령을 무죄로 만들려고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 동력 갉아먹는 부메랑 될 수도”
TF가 정치권 진앙으로 부상한 가운데 관련 대응을 두고 정부·여당이 ‘굿캅-베드캅 역할 분담’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정부는 야당의 비판에 정면 대응하는 것은 삼가는 모습이다. 대신 최대한 빠르게, 최소한 범위에서 TF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1월18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공무원이 TF에) 자기 휴대전화를 자발적으로 제출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해석돼 있다”며 “(업무용) 공용 휴대전화는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 기간에 대해선 “1월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달, 보름 정도 제보받고 조사하면 끝날 것”이라며 “전체 공직자가 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TF가 출범한 배경이 ‘윤석열의 업보’ ‘국민의힘의 내란 방관’ 탓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국민의힘은 일반 공무원 사생활을 다 터는 것처럼 얘기한다”(전용기 의원), “헌법존중TF를 솎아내기 TF라고 하는데 원인 제공은 국민의힘, 윤석열 정권이 했다. 왜 내란을 일으키고 동조했나. 본인들의 과거를 생각해서 두둔하는 것인가”(백승아 의원) 등의 의견이 나왔다. 국무회의에서 TF를 구성해야 한다는 제안이 최초로 나온 것으로 알려진 11월11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직도 내란에 동조하거나 내란을 옹호하는 자들은 무관용의 원칙으로 처벌해야 한다. 오늘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다만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사찰 정국’이 불러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예산 정국과 검찰·사법 개혁 등 당면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정쟁이 국정 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집중하다 ‘조국 사태’로 역풍을 맞았던 전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이 논란이 자칫 사찰 프레임으로 굳어지면 전선이 흔들릴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 때 적폐청산이 조국 사태로 이어지며 민심이 돌아섰던 상황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