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서울중앙지검 검사 “이를 징계한다면 아예 ‘정권에 불편한 의견은 내지 말라’는 메시지 돼”
“검찰 출신 정치인들, 그들은 과거 검찰 있을 때 바꾸지 않고 뭘 했나”
내년 9월 검찰이 문을 닫는 것으로 결정됐지만 신설되는 수사기관에 보완수사권을 주는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도 검찰과 정부·여당 간 공방이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안미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검찰 개혁의 원칙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무리한 개혁안에 대해서는 조목 조목 비판하고 문제점에 대해 개선의 필요성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며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말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 검찰개혁 후속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후 초유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가 발생했고, 관봉권 띠지 의혹 및 쿠팡 퇴직금 미지급 사건 불기소 외압 의혹을 밝히기 위한 상설특검도 출범했다. 노만석 전 검찰총장 대행은 내부 반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구자현 신임 대검 차장으로 검찰 수장이 교체됐다. 항소 포기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검사장의 입장 표명에 대해 민주당은 ‘집단 항명’이라며 평검사 강등 등의 징계를 예고하고 나섰고,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은 11월19일 검사장 18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렇듯 안팎에서 거센 압박과 내홍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검찰 조직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민감한 상황이지만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안 검사는 검사장 18인의 평검사 전보 논의가 이뤄졌던 것에 대해 “공무원의 집단행위가 금지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집단행위’에 해당할 때”라며 “그런데 검사장들의 항의는 정책이 아닌 검찰 고유 업무인 ‘항소 제기’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항명이 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안 검사는 또 여권에서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의 행태를 ‘검란(檢亂)’으로 칭하는 것에 대해 “이번 사건은 누가 봐도 항소해야 하는 사건”이라며 “항소장을 법원에 접수하려고 대기하려던 상태였다. 마감 직전에 이를 뒤집는 일은 전례가 없다. 이런 방식의 처리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의 방향성’에 대해 찬성하는가.
“전제를 달아야겠지만, 검찰개혁의 원칙 자체에는 찬성한다. 그간 검찰이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검찰권을 행사해온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이라면 당연히 동의한다. 사실 ‘무리한 검찰권 행사 방지’라는 개혁의 모토는 문재인 정부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난 정부 때도 개혁안이 본래 취지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흘렀던 부분이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우려가 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직접수사 권한이 꽤 남겨졌는데 결과적으로 정권이 원하는 수사만 남겨놓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사법적 통제는 오히려 약해진 측면도 있다. 또 지금 개혁에는 검찰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TF(태스크포스)에도 현직 검사나 검찰 출신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설문조사 정도만 진행될 뿐 그 이상의 의견 개진 구조가 없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대해 반발한 검사장 18인을 평검사로 전보하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법적으로 금지되는 공무원의 집단행위는 ‘공무 외 정책 등에 대한 집단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항소 유지나 포기는 정책이 아니라 검찰 본연의 업무이기 때문에 (검사장들의 반발은) 공무원의 집단행위라고 볼 수 없다. 또 이번에 검사장들이 한 일은 항명이 될 수도 없다. 단지 ‘왜 항소를 포기했는지 이유를 묻는’ 차원의 의견 전달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법적으로 상급자에게 이의제기할 수 있는 '이의제기권'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이의제기조차 아니었다. 그저 설명을 요청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를 좌천성 인사로 처리한다면, 아예 ‘정권에 불편한 의견을 내지 말라’는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검찰이 망가진 이유 중 하나가 부당한 상급자의 결정에도 항의하지 못하는 문화였다고 생각한다. 이의제기권을 명문화해 놓고 실제로는 쓰지 못하게 한다면 지금 말하는 검찰개혁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들을 향해 검란이라 칭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소 제기와 유지 업무는 검찰의 고유 업무이자 존재 이유, 즉 ‘본류’다. 이 기능이 흔들리는 순간 검찰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누가 봐도 항소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항소장을 법원에 접수하려고 대기하려던 상태였다. 마감 직전에 이를 뒤집는 일은 전례가 없다. 주임검사와 결재 라인의 의견이 다른 경우는 있어도 이런 방식의 처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위헌·불법적인 비상계엄 이후 검사들이 의견을 거의 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검사장들이 집단으로 의견을 낸 것을 보고 솔직히 깜짝 놀랐다. 그분들은 영전이 가능한데도, 본류 업무가 흔들린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냈다.”
관봉권 띠지 폐기 의혹과 쿠팡 퇴직금 불기소 외압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상설특검이 발족했다. 4특검 체제로 인해 검사들 상당수가 외부로 파견 나가게 되는 상황에서 인력 부족을 체감하는가.
“엄청나다. 중앙지검만 봐도 대부분의 팀에서 최소 한 명씩 빠졌다. 특검이 여러 개 동시에 가동되고 기간이 연장되다 보니 허리 기수의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저연차 검사와 고검 검사급 고참들만 남은 '허리 없는 구조'가 됐다. 사건은 폭증하고 있는데 그만큼의 인력이 없어 미제가 심각하게 쌓이는 중이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그 과정에서 노만석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보여준 모습에 실망한 검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선배 검사로서 후배 검사들에게 어떤 심경인가.
“후배들을 보면 참담할 정도다. 젊음을 바쳐 이 길을 택했을 텐데 막상 조직에 와보니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검찰 전체가 악마화되며 공격받는 모습을 보게 됐다. 외부의 공격은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데, 노만석 전 대행의 모습은 내부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노 전 대행은 수장이었는데 정의감과 소신, 기개를 보여주지 못했다. 후배 검사들은 ‘취업 사기 당한 느낌’일 것이다. 그 와중에 허리급 선배들은 대부분 빠져 있고 엄청난 업무량을 떠안고 있다. 자긍심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다. 선배로서 너무 미안하다. 그럼에도 떠나지 않고 남아서 ‘자기 사건이니까’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후배들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더 ‘검사다운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검찰 해체되더라도 ‘미제 사건’ 쌓아둔 채 넘어가면 신뢰 회복 어려워”
검사도 일반 공무원과 동일하게 파면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검찰청법 개정안과 검사징계법 폐지안을 두고 각종 논의가 오가고 있다.
“사법의 첫 단계인 수사·공소 제기가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검찰이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든 ‘사법의 한 축’이라면 법관에 준하는 신분 보장이 필요하다. 검찰 업무는 일반 공무원들의 업무와 달리 친절 서비스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는 다소 특수한 성격의 업무다. 이런 업무를 하는 기관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들면, 공정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된다. 징계나 파면이 쉬워진다면 유능한 이들은 수사와 공소 업무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결국 능력이 부족해 밀려난 사람들이 그 업무를 맡게 되어 사법 시스템의 질이 낮아질 것이다. 개혁이 되려면 ‘잘못에 대해 분명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먼저지 기본적인 신분보장을 없애는 방식은 오히려 부패를 부를 수 있다.”
보완수사권 존치론자로서 그간 대외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존치 근거가 또 있나.
“실무에서는 보완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 많다. 그런데 ‘보완수사 필요 없음’이라는 한 줄 답변만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앞 단계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검찰에서라도 보완수사를 해야 공소 유지가 가능하다. 무리한 수사권 행사에 대한 우려는 이해하지만 실무가 돌아가지 않는 현실을 외면한 채 권한 자체를 없애겠다는 건 맞지 않다. 법률 만능주의처럼 위헌 소지가 있는 법만 만들고 실무적 해결책은 빠져 있는 상황이다. 보완수사권은 남겨야 한다. 공소기각될 수 있는 수사는 시스템 안에서 조정되기 때문에 ‘남용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이유로 실무를 무시하면 안 된다.”
국정감사 당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수차례 증인을 불러놓고 제대로 조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증인을 회유·겁박한 보완수사 남용 사례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수사 대상자들은 검찰청에 오면 마음의 철벽을 치고 온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검사는 그 마음을 열고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한다.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대화를 통해 라포를 형성하고 신뢰를 세워야 한다. 그 과정 전부를 조서에 그대로 남기지 않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과거에는 일부 검사들이 무리한 방식으로 진술을 이끌어낸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사례가 현격히 줄었다. 일반 형사 사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인 사건의 경우 변호인이 동석해도 ‘회유·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면 변호인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추 위원장은 정치적 사건의 경험을 일반화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검찰 출신 선배이기도 한 국회의원들과 거침없이 논쟁을 펼쳤다. 검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부담되지는 않았나.
“지금 검찰개혁을 주창하는 분들 상당수는 검찰의 고위 간부까지 지낸 사람들이다. 그런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야말로 오늘의 검찰을 만든 핵심 멤버들이다. 정치 검찰이라고 지적하지만 그 ‘정치 검찰’이란 프레임이 생긴 시기 대부분을 본인들이 검찰에서 보냈다. 그 시절 그들은 검사였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때는 (검찰을) 바꾸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의 흑역사는 그들이 고위직에 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분들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선배들이다. 검사직을 마치자마자 정치로 나간 분도 있다. 검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내부에 있을 때 자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향후 공소청 혹은 중수청에 갈 계획이 있는가.
“검사라는 직업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수사도 좋아하지만 기소는 더 중요하다. 판사는 검사가 올려놓은 밥상에서 식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죄명을 적시하고 기소하는 과정은 검사 역할의 핵심이다.”
내년 9월까지 검찰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 미제가 너무 많다. 어떤 검사장은 ‘미제를 줄이지 않으면 인사 불이익을 주겠다’고 할 정도다. 아무리 검찰이 해체되는 분위기여도 미제를 쌓아둔 채 넘어가면 신뢰 회복은 어렵다. 남은 기간만큼은 공소 제기와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 인지수사 부서가 맡은 사건은 무리하게 기소하지 말고, 필요한 사건은 중수청으로 넘기는 게 맞다. 인지 부서 인력이 적지 않은 만큼 하던 수사는 어떻게든 마무리하되 10개월 안에 끝내지 못하는 건 인수인계하거나 잔존 규정을 둬서 시일에 쫓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부에서 미제 해소 방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