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전두환 흉내 낸 尹,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6시간 만에 끝난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대소동을 지켜본 국민은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물음을 떠올리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화만 냈지 애당초 성공할 수 없었던 계엄을 그냥 멋대로 저질러버린 꼴이 됐다. 그러니 일종의 정치적 분노 조절 장애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야당은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4조1000억원을 예결위에서 삭감하는 ‘예산 보복’을 했다. 게다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 탄핵안 처리를 예고한 전날 밤이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야당을 ‘반국가 세력’이라 규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전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민은 “왜”라고 묻고, 외신은 ‘기괴한 일’ 지적
그러나 야당이 정치적으로 지나친 행위를 해서 화가 난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그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야당의 무한 탄핵과 예산 보복에 무리가 있음은 분명했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런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훨씬 더 큰 무리다. 존 닐슨 라이트 케임브리지대 조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를 가리켜 ‘기괴한 일’이라는 표현을 했다. 윤 대통령은 그 이후 벌어질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고 수습하려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무엇보다 헌법 제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야당 의석수만으로도 재적 의원 과반을 훨씬 넘는다. 그러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봐야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계엄은 지체 없이 해제하도록 계엄법에서도 명기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대체 무엇을 믿고 계엄을 선포한 것일까. 이번 사태의 최대 미스터리다.
상식적으로 판단하건대,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결의하는 국회 본회의를 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수도방위사령부의 정예병력 등으로 구성된 계엄군이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건물 내부로 난입했을 것이다. 이들은 소총과 각종 장비로 무장했고 일부 병사는 야간투시경도 착용하는 등 완전무장한 상태로 작전에 투입됐다.
그런데 이들 정예병력의 힘은 생각보다 약했다. 본청 앞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도 야당 보좌진과 시민들의 저지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옆으로 돌아가 창문을 깨고 넘어 들어갔던 것인데, 막상 복도에서 야당 보좌진이 쏘는 소화기에 밀려 본회의장에 진입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본회의장에 출석한 190명 의원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때 생중계 방송을 통해 당시 상황을 본 사람이라면 특전사와 수방사 정예병력의 힘이 야당 보좌진을 당해 내지 못할 정도밖에 안 되는지 고개를 꺄우뚱했을 것이다. 군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는 했지만, 시늉만 할 뿐 진짜로 본회의를 막을 의지도 의욕도 없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계엄군도 내란죄에 해당될 수 있는 작전에 적극 가담했다가는 나중에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젊은 계엄군들도 군인이기 이전에 상식과 양심을 가진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계엄군이 본회의장에 난입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냈다면 이는 내란죄라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는 포고령 제1호를 통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헌법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국회의 활동을 금지할 수는 없다. 또한 계엄법 13조는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계엄군이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회의를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위법이며 내란죄에 해당될 중대한 범법행위다. 아무리 비상계엄을 시행하더라도 국회 본회의를 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이 없는데, 대체 윤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덜컥 계엄을 선포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은 전두환을 너무도 어설프게 흉내 냈다. 성난 얼굴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 상황을 관리하고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킬 별다른 계획이나 복안이 없었음이 드러났다. 불과 6시간 만에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계엄을 해제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렇게 무대책으로 겁도 없이 엄청난 일을 벌였는가’에 대한 놀라운 탄식이 절로 나온다.
尹, 스스로 정상적 대통령직 수행 불가한 상황 초래
오늘의 시대는 군 병력을 동원한다고 해서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계엄령에 가담하면 결국은 감옥에 간다는 역사의 교훈이 있기에 군도 무모한 계엄 작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하고 5·18을 하던 시절에는 계엄사 검열을 통해 뉴스를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 안팎의 상황이 방송과 유튜브, SNS로 생중계되는 시대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 복도까지 진입했지만, 자신들의 모습을 내보내고 있는 수많은 카메라를 마주해야 했다. 1980년처럼 진압봉을 휘둘러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총을 쏘면서 본회의장을 장악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지가 높아져 가는데, 위헌과 위법의 ‘스모킹건’이 없어 부심하던 차였다. 그런데 마침 윤 대통령 스스로가 내란죄 적용까지 가능할 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저질러버렸으니 이보다 좋은 탄핵 명분은 없게 되었다. SNS에 도는 댓글들처럼, 차라리 술김에 저지른 일이라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겠다. 분명한 것은 그가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