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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직업윤리가 헌법에 별도로 규정된 유일한 직종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103조).” 그만큼 재판이 중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은 법률에 의하지도 않고, 개인의 양심보다 집단 코드를 기반으로 정파적으로 진행되지 않느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물론 윤 대통령 측이 정치적 목적으로 의심을 만들어 퍼트리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해도 많은 국민한테 의심이 먹히고 있는 데다 윤석열 파면 찬성파 중에서도 헌재의 일방성과 졸속성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사법의 신뢰가 지금처럼 집중적이고 광범위하게 흔들린 적은 없었던 듯하다. 이는 최고 법원답지 않은 헌재의 이상한 행태와 구성이 자초한 부분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이 열린 2월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 대통령이 변호인단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6차 변론이 열린 2월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 대통령이 변호인단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에게 허용된 ‘증인 신문권’ , 윤석열에겐 불허

2월4일 재판에서 헌재는 윤 대통령에게 국회 측 증인을 상대로 한 신문을 금지시켰다.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은 8명 재판관 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형사소송법의 “증인은…검사, 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신문한다(161조의2)”며 피고인의 증인 신문권을 정한 조항에 배치된다. 헌법재판관들끼리 합의하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법률을 위반해도 되는 건가.

윤 대통령의 증인 신문권 박탈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무제한적으로 행사했던 증인 신문과 대비된다. ‘위증교사 사건’ 피고인 이재명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김동현 부장판사)에서 김진성 증인을 집요하게 신문했다. 김진성은 “압박을 받았다”는 표현을 썼다. 결국 1심은 김진성의 ‘위증’은 있었지만 이재명의 ‘위증교사’는 없었다며 무죄 선고로 귀결됐다.

이재명에게 허용된 증인 신문이 윤석열에게 불허되는 불공정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식의 불공정 사례가 쌓여 헌재의 최종 결정을 국민이 수용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면 헌법재판관들은 어떤 책임을 지려고 하나. 이날 재판에서 헌재가 무엇엔가 쫓기듯 증인 신문 시간을 각 45분으로 한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법관이 심리 과정에서 증언 방식에 개입하는 건 봤어도 아예 처음부터 증언 시간을 제한하는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

 

‘공정하게 보이는 것’이 헌재를 구원할 덕목

졸속과 적법 논란으로 한창 시끄러운 ‘마은혁 불임명’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는 코드·이념 판결로 공정성 의문을 자아냈던 우리법연구회 출신 인사다. 그렇지 않아도 8인 재판관 중 3인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어서 편향 시비가 끊이지 않는 터에 급하지도 않은 마 후보자의 불임명 문제를 왜 굳이 빨리 선고하겠다고 헌법재판소가 나섰느냐 말이다. 온 세상이 들끓자 슬그머니 선고 일정을 늦췄지만 이로 인해 깊어진 헌재 불신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행·원인적 쟁점인 한덕수 총리의 탄핵 위헌성을 판단하지 않은 채 마은혁 문제를 느닷없이 내민 뒤죽박죽 순서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헌재는 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반복하는 것일까. 왜 자해적인 위법·불공정의 늪에 빠져드는 걸까.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으로 빚어진 헌정 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민심을 신속하게 수습해야 한다는 일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의도의 순수성을 국민 대중이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이다. 의도의 순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무리한 속도전이 감행되고 있다. 마침내 헌재는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의 조기 대선 승리에 부역하는 기관으로 타락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봉착했다. 의도도 중요하지만 본분이 근본이다. 재판의 본분을 지키는 한계 내에서 의도의 순수함이 작동해야 정상이다. 재판은 공정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법언이 있다. ‘공정하게 보이는 것’이 지금 헌재를 구원할 덕목이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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