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한창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이미 ‘1987 체제’인 제6공화국 헌법은 시효를 다한 듯하다. 필자는 개헌론에 대해 일단은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대체로 제도보다는 사람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이래 20년을 돌아보면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어느 쪽에서 보아도 향후 지속 가능한 제도가 아님이 분명해졌다. 앞으로 누가 돼도 이 제도하에서 대통령은 도중에 탄핵을 당하거나 퇴임 후 감옥에 가는 불행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진단이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대통령제냐 내각제냐의 논쟁은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국민은 국가 최고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과거보다 강화됐지 약화된 것같지도 않다.
그리고 예전만큼 좌우 이념이 극단적이지 않은 것도 개헌 문제로 가는 길이 마냥 어렵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과거 좌파 이념 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운데로 이동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은 ‘제왕적 의회’를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사태를 거론하며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를 택하건 상대를 존중하고 타협하는 정치문화가 없다면 새로운 제도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는 만일 개헌을 한다면 권력구조 설계에서부터 어느 한쪽의 독주보다는 상호 견제와 정치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정당정치의 활성화다. 특히 정당이 일반 국민에게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제도 마련에 함께 힘을 쏟아야 한다. 여기서 타협하는 정치문화도 생겨날 수 있고 새롭고 유능한 정치인들을 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는 하지 않고 매번 밖에서 정치 신인들을 리크루트한 결과가 지금의 윤석열과 이재명의 대립이다. 두 사람 모두 정당이 길러낸 사람이 아니라 밖에서 불러들인 인물이다. 따라서 개헌을 한다면 정당정치 활성화 부분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기를 바란다.
지역주의 문제, 세대 갈등 문제, 남녀 갈등 문제 등도 일차적으로는 정당정치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각 정당에서 이들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해 의회에 진출시킬 수 있도록 새 헌법은 설계되어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명시적으로 두 국가를 선언했다. 개헌이 이루어질 때 이 부분에 대한 해법도 제시되어야 한다. 중장기 전략을 세운 다음에 그것을 어느 수준에서 새 헌법에 담을 것인지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국제정치는 경제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그것은 각 나라의 산업 수준과 연동되면 향후 10~20년 동안 우리의 국운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보다 경제 이슈에 민감한 정치 체제, 특히 의회를 만드는 것은 개헌 과정에서 중차대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폐습 탈출뿐만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의 설계를 위한 개헌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주장과 요구를 백가쟁명식으로 분출시켜야 한다. 이어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각종 위원회가 굵직한 사안들을 추려내야 함은 물론이다. 끝으로 정치권의 대타협을 통해 최종 개헌 작업을 이루어 내야겠지만 이 모든 것을 강하게 반대하는 한 사람이 있어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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