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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은 ‘충분한 시간’에서 축적 
중소기업 현실과 동떨어진 근로시간 단축 논의 문제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주목받는 공약 중 하나는 ‘주4.5일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36시간으로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겠다는 방안을 제시했고, 국민의힘은 월~목요일 하루 1시간씩 추가 근무한 뒤 금요일에는 4시간만 일하자는 방식이다. 즉, 전자는 근로시간 단축, 후자는 근무일 분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처럼 명분은 같아도 방식은 다른 가운데, 경제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 12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차기 정부 중소기업 정책방향 대토론회’에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생산성과 소득 수준이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도 시행하지 않는 주4일제나 주4.5일제를 먼저 도입해야 합니까?” 

반면, 노동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주4.5일제를 포함한 7대 정책과제 협약을 체결하며 지지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비숙련 노동자의 학습효과’다.

2017년 세계적 학술지 ‘컨템포러리 이코노믹 폴러시(Contemporary Economic Policy)’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증가시킬 경우 피로가 증가해 노동생산성이 감소하는 ‘피로효과’와 충분한 스킬을 습득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는 ‘학습효과’가 동시 발생된다.  이 중 비숙련 노동자일수록 학습효과의 비중이 훨씬 크며, 오히려 근로시간을 더 확보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숙련공과 비숙련공 사이에서 근로시간이 미치는 영향이 정반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숙련공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로로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비숙련공은 익숙해질 시간이 부족해질수록 오히려 생산성이 낮아진다.

중소기업 현실을 살펴보면 그 우려는 더욱 뚜렷해진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가 중소기업이며, 이 중 98.3%는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의 소기업이다. 이러한 기업은 비숙련 인력 의존도가 높고, 신규 채용자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등록 외국인 근로자 수는 약 96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약 3.5%를 차지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언어, 문화, 교육 수준 등에서 국내 근로자보다 기술 습득에 더 많은 시간과 체계적인 학습 기회가 요구된다. 그런데 이들에게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의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면 ‘숙련 기회 자체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우리 경제는 현재 저성장과 인구 감소, 노동력 고령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생산성 향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숙련공에게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피로도를 낮춰야겠지만, 비숙련공에게는 ‘시간’ 자체가 숙련과 생산성의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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