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에게도 15만원 뿌린다니…이재명 정부, 집권하자마자 돈 쓸 생각부터 하나
취약계층·소멸 지역에 1회성 지원보다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복지와 일자리 창출
갚아야 할 빚이 많다면 어떻게 할까? 보통사람이라면 돈을 아껴 쓸 것이다. 빚을 갚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돈을 꼭 써야 할 상황이라면 ‘필요한 지출인지’를 몇 번이고 곱씹을 것이다. 가계와 나라 살림은 다르긴 하다. 하지만 빚을 대하는 자세는 근본적으로 같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돈 쓸 생각부터 먼저 한다.
이 정부가 6월19일 발표한 내용이 그렇다. 민생회복지원금 10조원을 국민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부자에게도 15만원 정도 나눠준다고 한다. 하지만 고소득자에게는 이 돈이 큰 의미가 없다. “그 돈 안 줘도 된다”는 부자들이 꽤 있다. 없는 살림에 나라가 빚을 내면서까지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이 돈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정부가 언급한 ‘취약계층과 인구 소멸 지역을 포함한 지방 주민들’이다. 이들에게 40만~50만원은 크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 돈은 일회성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지속 가능한 복지와 일자리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전 국민 현금 뿌리기를 왜 하는지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부채도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다고 한다. 빚에 허덕이는 이들의 재기를 지원한다는 명분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대통령의 선의(善意)야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동안 성실히 빚을 다 갚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심경은 생각해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선의가 지나치면 나라에 해가 된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민생회복지원금이 놓친 문제들
나라에 빚이 없다면 이렇게 돈 쓰는 걸 누가 뭐라고 할까.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국가채무가 상당히 많다. 다른 나라보다 적다고 하지만 빚 늘어나는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고다.
2019년 국가채무는 723조원이었다. 이게 2023년 1127조원으로 증가했다. 4년 만에 404조원 늘어났으니 매년 101조원씩 불었다는 계산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46.9%로 다른 나라보다 낮다. 그렇다고 한숨 돌릴 계제가 아니다. 빚을 져본 사람은 알지 싶다. 잠시 한눈팔면 빚이 급속히 불어난다는 걸. 빚이 빚을 부르기 때문이다.
나랏빚이 이토록 급증한 이유는 간단하다. 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썼기 때문이다. 이걸 나라 차원에서 나타내는 지표가 관리재정수지다. 적자가 된 지 꽤 됐다. 게다가 최근 급속히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 2020~24년 5년간 511조원 적자가 났다. 연평균 무려 102조원 적자란 계산이다. 2018년 적자는 10조원이었다. 이때도 많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것의 10배 적자가 만성화된 것이다.
가계 살림이었으면 벌써 거덜나고도 남았을 게다. 그런데 어쩌랴, 아껴 쓰긴커녕 올해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지난 연말에 통과시킨 본예산 기준으로 이미 적자가 74조원으로 편성돼 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2차 추경 예산으로 30조원을 더 쓰겠다고 한다. 올해도 100조원 이상 적자가 날 것 같다.
그나마 지금은 나은 편이다.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닥친다. 저출산, 고령화에 국민연금 문제가 그것이다. 이미 우리 코앞에 와 있다. 통일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복지지출을 추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산하더라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7%에서 2040년 80%, 2050년 107%가 된다. 새로운 복지지출이 추가되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진다. 통일이 되면 더 그렇다. 미국과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들이 가급적 지키려고 하는 비율이 60%다. 재정 위기의 위험성 때문이다. 국제기구들이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중대한 재정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앞다퉈 경고하는 까닭이다.
국가채무, 5년간 매년 100조원씩 늘어
그런데도 정권을 잡은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빚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돈을 더 써야 인기가 올라가고 표를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심했다. 나랏빚이 급격히 늘어난 때가 이 시기다. 코로나19 대응, 글로벌 복합위기 등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쓰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가령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 당시 문 대통령은 ‘전시(戰時)재정’이란 표현을 썼다. 전시라고 생각하고 재정을 쏟아부으라는 주문이었다. 또 있다. 당시 공무원들은 그래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를 지키려고 했다. 나랏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막바로 40%를 넘은 건 물론이다.
빚이 늘어나더라도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그때 빚을 갚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허언(虛言)이었다. 경기가 좋아져도 늘어나는 재정수입을 빚 갚는 데 쓰지 않았다. 오히려 씀씀이를 더 늘렸다. 재정적자가 연평균 100조원씩 늘어난 이유다.
이 정부도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명분으로 부자에게도 돈을 주겠다니 말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경제학자들도 ‘보편’이란 말 뒤에 숨은 경제적 비합리성을 얘기한다. 설령 부자에게 돈을 주더라도 나중에 세금을 더 걷어 환수해야 한다고 한다. 이른바 ‘보편적 지원-선별적 환수’다. 그런데 이번 민생회복지원금에는 그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돈을 쓴다면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에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그런 공약을 가장 앞에 내걸었다. 혁신 성장이다. 그러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이 없는 곳에 세금을 퍼줘서는 안 된다. 구조를 개혁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 공교롭게도 민생회복지원금으로 어수선할 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순위를 20위에서 27위로 떨어뜨렸다. 순위의 상승과 하락에 일희일비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에 돈을 써야 저성장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경제가 살아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래야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속 가능성과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인기만 얻으려는 정책을 포퓰리즘(대중 추종주의)이라고 한다. 민생회복지원금은 그런 정책이다. 지지 기반 확대를 위해 재정을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지금 여당의 반대로 그간 실행되지 못한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절실한 이유다. 재정적자 비율을 GDP의 3%로 묶거나, 국가채무비율이 60% 넘지 못하게 하는 재정준칙만이 ‘통제되지 않는 재정’을 막을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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