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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2일 만에 9개국 정상과 회담…트럼프 귀국에 첫 한미 회담은 ‘무산’
‘실용외교’ 실체 드러날 나토 참석 두고는 “나토 참석, 좌고우면할 일 아니다”
對日 실용외교, 과거사와 현안 분리 ‘투트랙’…“韓日, 앞마당 같이 쓰는 이웃”

트럼프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주요 7개국(G7) 외교 데뷔전 무대에서 최대 관심사는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조우였다. 당장 7월8일 끝나는 관세 유예 시한에 대한 협의부터 방위비 등 굵직한 외교 현안에 대해 정상 간 물꼬를 트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취임 12일 만에 초고속 외교 데뷔전을 치르는 이 대통령의 행보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배경에도 이런 한미 외교의 중요성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이란 간 분쟁으로 조기 귀국하면서 한미 정상 간 첫 대면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빈손이 아니다. 일본, 호주, 인도, 브라질, 영국, 캐나다 등 정상회의에 참석한 대다수 주요국 정상들과의 릴레이 회담을 통해 ‘실용외교’의 서막을 차분하게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탄핵 정국으로 단절됐던 정상외교를 복원하고, 각국 정상과 무역, 투자, 통상, 공급망, 에너지 등 다양한 의제에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한미 정상회담의 공백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가 6월1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가 6월1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다만 한미 관계가 대한민국 외교의 핵심축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향후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관심은 6월24~25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로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참석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외교에만 가속 페달을 밟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17일(현지시간) G7 정상회의에서 이틀간 펼친 외교 데뷔전을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2일 만에 참석한 이번 회의에는 G7 회원국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외에 호주, 브라질, 인도,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우크라이나 정상이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모두 9개국 정상과 만나 친분을 쌓고 경제, 국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업무 오찬을 겸해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6월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업무 오찬을 겸해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한일 관계도 ‘실용’…과거보다 미래에 방점

여러 양자회담 가운데 눈길을 끈 건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한일 관계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보다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시바 총리와의 만남은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시험대가 됐다. 특히 과거 이 대통령이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뚜렷했던 만큼 어떤 외교 노선과 지향점을 보여줄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일본에 지나치게 굴종적”이라며 날 선 태도를 견지해온 바 있다. 물론 대선후보가 된 뒤부터는 한일 관계의 실용적 복원을 강조하는 유연한 발언도 자주 선보였지만, 실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어왔다.

하지만 6월17일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일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집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과거보다 미래지향적 관계에 무게를 두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도 이에 “양국의 협력과 공조가 지역 및 세계를 위해 더 많은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실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견고하고 성숙한 양국 관계의 기반을 조성하기로 했다는 것이 이번 회담의 골자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선 “쟁점 위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며 “과거 문제는 잘 관리해 나가고 협력의 문제를 더 키우자는 말씀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렇듯 큰 굴곡 없이 정상회의 일정이 마무리된 만큼 이 대통령의 외교 데뷔전에 대한 총평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상외교가 6개월 가까이 중단된 상황을 취임 초기임에도 매끄럽게 복원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 대통령이) 외교의 첫 단추는 비교적 원만하게 꿰었다”며 “그동안 중단됐던 한국의 정상외교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도 “국제 무대에서 6개월간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던 차분하고 담백한 출발”이라며 “미국과 회담을 갖지 못했더라도 공급망 등 글로벌 경제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유럽 국가들과 일본, 호주, 남아공, 브라질, 인도 등 세계 주요국들과 한 공간에서 정상외교를 복원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정권을 막론하고 정상외교가 펼쳐질 때면 관행처럼 비판 수위를 높이던 야권도 이번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 ‘자아도취 외교’ 등 비판적인 논평을 냈던 국민의힘은 이번 G7 일정이 끝난 뒤엔 별다른 공식 평가를 내지 않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채널A 방송에서 “다자간 외교 공간에서 만나서 짧게 짧게 대화하는 건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별난 일은 아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미뤄진 트럼프와의 ‘고차방정식 통상 협상’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귀국은 돌발 변수였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일정 이틀 차인 6월1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사실상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동 정세가 격화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귀국했고, 예정됐던 만남도 불발됐다.

이 대통령에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G7은 협상의 장이라기보다 만남의 장이다. 상대 정상과 짧은 시간이라도 직접 만나 상견례를 하고, 향후 구체적인 외교 전략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이 대통령이 G7 참석을 결정했을 때 온 관심이 한미 정상회담에 쏠렸던 것도 그런 상징성 때문이다. 관세와 방위비 협상 등 산적한 한미 외교 현안에 대해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물꼬를 튼다면 한국 협상팀의 실무 협상에도 추동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됐다.

무엇보다 관세 문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문제만큼이나 신경을 쏟고 있는 핵심 과제다. 고율 관세 충격으로 올 하반기 수출 감소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협상을 매끄럽게 마무리 짓지 못할 경우 이재명 정부의 평가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6월 넷째 주부터는 통상 당국이 ‘7월 패키지’ 합의 도출을 목표로 미국과 3차 실무협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관세 유예 시한 종료가 7월8일로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번 협상에서는 세부 항목을 둘러싼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G7 직후 급박하게 진행될 집중 협상 일정을 감안하면 양국 정상 간 조기 만남은 그만큼 절실했던 셈이다.

대통령실도 한미 정상 간 만남을 통해 이번 관세 협상에 대한 큰 틀의 합의점을 찾을 계획이었다. G7 참석 결정 이후 대통령실과 외교 당국은 무엇보다 한미 정상회담 일정 구체화에 방점을 찍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6월15일 기자들과 만나 “여러 나라들과 양자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면서도 “미국과의 관계나 일본과의 관계에선 협의에 진전이 있어 조금 구체성이 있는 단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고심 끝에 취임 12일 만에 이뤄지는 초고속 외교 데뷔전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 대통령은 6월16일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문제도 많은 만큼 애초에는 불참할 것을 많이 고려했다”면서도 “우리가 국제사회와 협력할 분야가 상당히 많은데 좀 무리하더라도 일찍 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급작스럽게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과 가시적 성과 없이 귀국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단 김이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실도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귀국 소식이 전해지자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측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국을 발표하기 직전 한국에 이를 알리면서 결례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G7 회의에서 전쟁 및 관세 문제 등을 논의하려 했던 다른 국가들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큰 통상 우려로 불거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미국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 예정됐던 회담도 줄줄이 취소했다. 다른 회원국들도 관세 문제를 언급하기를 원했지만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박원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 등이 남아있는 만큼 일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는 나머지 국가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장기적 외교 관점에서 나토 참석이 바람직”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회담을 조속히 추진하기 위해 외교 채널을 가동하기로 했다. 6월24~25일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대면이 성사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대통령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지만 참석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으로선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따른 득실이 명확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3년 연속 참석한 정상회의에 새 대통령으로 참석해 외교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이재명 정부가 가지고 있는 ‘친중’ 이미지도 상당 부분 불식할 수 있는 기회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과 관세 문제와 관련한 유의미한 합의가 이뤄질 경우 G7에 이어 ‘국익 중심 실용외교’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정권 초기 외교·안보라인 인선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이어 국제 무대 강행군을 이어가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다. 특히 내각 구성부터 인사청문회,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가동, 2차 추경안 집행 등 이 대통령이 직접 신경 써야 하는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내를 오래 비우는 것도 리스크가 크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와 방위비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만큼 G7 정상회의처럼 돌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외교·안보 진용 내 계파 갈등도 이 대통령의 판단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를 중심축으로 외교·안보 노선을 정해야 한다는 ‘자주파’와 한미 동맹을 우선해야 한다는 ‘동맹파’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시선이다. 나토 참석이 중국, 러시아와 외교 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다만 전문가들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이 장기적인 외교 전략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G7보다 많은 32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이 대통령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속에 방산 수출국인 한국의 위상은 유럽 국가들에 더욱 부각되고 있어, 방산 세일즈 외교를 펼칠 기회이기도 하다. 체코 등과의 원전 수출 협의 등 다양한 경제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 또한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전임 정부에서 아무 문제 없이 3년 연속 참석한 회의에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이유로 갑자기 참석하지 않으면, 앞으로 임기 동안 나토 정상회의는 없는 일이 된다”며 “국제사회에서 ‘잘 오던 한국은 왜 안 오지?’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나토 정상회의는 과거와 달리 이념적 부담이 줄어들었다”며 “한국이 나토 내에서 정식 회원국과 같은 발언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보다는 지속적 참여를 통해 향후 더 큰 영향력과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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