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내 전체 4위에 해당하는 고액 연봉…떨어진 구속이 결정적 원인
고우석, ‘마지막 자존심’ 메이저 데뷔 위해 국내 복귀 대신 美 도전 계속 이어가
마이애미 말린스는 6월18일 산하 트리플A 팀에 있는 고우석(26)의 계약을 해지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트리플A 승격 후 5경기 5.2이닝 5K 1실점으로 비교적 괜찮은 활약을 이어가던 중이었기에, 더 충격적인 방출이었다. 결국 고우석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못하고 마이애미를 나왔다. 문제는 마이애미의 이런 결정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고우석의 올해 연봉은 225만 달러(약 31억원)로, 마이애미 전체 선수 중 4위에 해당하는 팀 내 고액 연봉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돈을 포기한 것이다. 마이애미의 실제 손실은 더 막대했다.
팀 재건을 하고 있는 마이애미는 고우석을 데뷔시켜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한 다음,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하면서 대신 유망주를 받는 게 최선이었다. 데뷔시킨 다음 방출해도 지급해야 하는 돈은 동일했다. 하지만 마이애미는 지난해 연봉과 올해 연봉, 내년 옵션 포기 보상금이 포함된 415만 달러(57억원)를 포기하면서, 기회도 주지 않고 방출했다. 마이애미는 8550만 달러의 연봉 총액이 메이저리그 최하위이자 1위 LA 다저스(4억780만 달러)의 5분의 1 수준으로, 고우석에게 준 415만 달러는 매우 큰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고우석은 왜 데뷔도 하지 못하고 방출됐을까.
샌디에이고 영입 후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고난의 길’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2023년 11월15일, 두 명의 KBO리그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신분조회 요청이 들어왔다. 한 명은 메이저리그 도전을 일찌감치 선언한 이정후, 다른 한 명은 이정후의 매제인 고우석이었다. 당시 업계는 메이저리그가 고우석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우석은 진출 의사를 밝혔지만, 포스팅 성사 여부는 불투명했다.
고우석은 한국시리즈 우승팀(LG)의 마무리이자 국가대표 마무리였지만, 성적이 하향세에 있었다. 2022년은 42세이브 1.78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2023년은 WBC를 앞두고 부상을 당했고, 15세이브 3.68에 그쳤다. 더 우려되는 점은 구속 저하였다. 국제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보니, 2016년 일본 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오승환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하지만 포스팅 마감 직전, 고우석을 원하는 팀이 나타났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2년 450만 달러 계약은 이정후의 6년 1억1300만 달러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불펜투수라는 점과 경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았다. LG 트윈스는 선수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90만 달러의 이적료를 받고 보내줬다.
샌디에이고의 프렐러 단장은 아시아 리그와 아시아 선수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카고 컵스에서 일본의 다르빗슈 유를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지난해 NC에서 뛰었던 카일 하트를 포함해, 국적 불문하고 한국과 일본 리그의 선수를 대거 영입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마무리인 마쓰이 유키(전 라쿠텐)도 고우석과 같은 시기에 영입했다.
최고의 성공작은 김하성이었다. 샌디에이고는 김하성과 4년 2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포스팅 비용 포함해 3350만 달러를 쓴 것에 비해, 김하성은 4년 동안 8700만 달러치 활약을 했다. 간판 유격수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바이크 사고와 약물 징계로 이탈한 공백을 김하성이 메웠기 때문에 실제 기여는 그보다도 컸다.
고우석 영입은 김하성으로 인해 한국 선수에 대한 기대가 커질 대로 커진 프렐러의 단독 결정이었다. 스카우트팀이 반대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정후의 계약이 1억 달러를 돌파한 것과 고우석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모두 김하성 덕분이었다.
우려는 빠르게 현실이 됐다. 고우석은 시범경기에서 부진했지만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샌디에이고의 서울 시리즈 명단에 포함됐다. 그러나 LG와의 친선 경기에서 부진했고, 마이너리그로 보내졌다. 프렐러 단장은 트리플A 팀의 환경이 투수에게 좋지 않다면서 더블A에서 시작하게 했지만, 고우석은 더블A에서도 부진했다.
본격적인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5월5일, 프렐러는 마이애미에서 루이스 아라에스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대신 마이애미로 보내는 명단에는 고우석도 들어있었다. 더블A 10경기에 등판한 시점이었다. 프렐러는 고우석을 빠르게 포기했고, 빠르게 다른 팀으로 넘겼다.
마이애미는 ‘좋은 유망주를 줄 테니 아라에스의 연봉 일부와 고우석의 잔여 계약을 부담하라’는 샌디에이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우석을 원해서가 아니라, 유망주를 받는 대가로 샌디에이고가 정리하고 싶은 선수를 받아준 것이다. 마이애미가 잔여 계약을 모두 떠안은 덕분에 샌디에이고는 고우석에게 35만 달러밖에 쓰지 않았다. 마이애미 지역 언론에서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고우석은 얼마 후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됐고, 트리플A에서 더블A로 강등됐다. 마이너에서 1년을 보낸 후 남은 연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박병호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잔여 계약을 포기하고 돌아가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고우석은 더블A에서 크게 부진했고, 그렇게 첫 시즌이 끝났다.
고우석, 디트로이트 트리플A 팀과 계약
절치부심한 고우석은 겨울 동안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다. 구단이 내준 숙제인 스플리터도 장착했다. 하지만 시범경기를 앞두고 훈련 도중 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개막 로스터 경쟁을 해보지도 못했다. 고우석은 5월8일 다시 복귀했고 점점 좋아지고 있었지만, 돌아온 건 방출 통보였다.
마이애미는 왜 기회도 주지 않았을까. 중요한 건 포심 구속이었다. 메이저리그는 불펜투수의 평균 구속이 153km/h인 반면, 한국에서 153km/h였던 고우석은 미국 진출 후 150km/h로 떨어졌다. 고우석은 투수판으로부터 171cm를 끌고 나와 공을 던지는데, 메이저리그 투수 평균인 201cm보다 30cm가 짧았다. 공이 날아오는 거리가 길다는 건, 구속이 같더라도 위력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33세에 진출한 오승환 역시 구속 경쟁력을 잃은 후였지만, 대신 공의 변화가 대단히 좋았다. 하지만 고우석은 그것도 아니었다. 마이애미는 고우석을 데뷔시키려면 40인 보유 선수 명단에서 한 명을 빼야 했지만,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고우석에 대한 평가가 그만큼 나빴던 것이다.
고우석 앞에는 LG 복귀와 미국 잔류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고우석은 후자를 택했다. 고우석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트리플A 팀과 계약했다. 디트로이트는 메이저리그 승률 1위를 다투는 팀이지만, 선발진에 부상이 많고 불펜진도 고전하고 있어 새로운 자원이 절실하다. 디트로이트는 선발 공백이 있는 경기에서 불펜을 이어 던지게 하는 게 특기인데, 고우석은 트리플A에서 잘만 하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콜업을 노려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로써 고우석은 마지막 자존심인 메이저 데뷔를 위해 시즌이 끝날 때까지 미국에 남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