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에게 영포티는 띠동갑 여성에 추근대는 ‘개저씨’로 인식돼
‘젊음 추구’ 중장년에 “나잇값 못 한다” 눈총…어른다운 책임 의식 요구
최근 출시된 아이폰17이 세대 논쟁에 불을 붙였다. 제품이 좋거나 나빠서가 아니다. 제품 출시 전, 온라인에서는 새 아이폰 구매 의욕을 억제한다는 ‘지름신’ 예방 이미지가 돌았다. 한껏 멋을 낸 40대 남성이 주황색 아이폰17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그동안 ‘젊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아이폰이 이제는 젊어 보이고 싶은 중장년, 이른바 ‘영포티’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는 의미다.
아이폰은 기성세대보다 10~20대를 중심으로 소비되어온 스마트폰이다. 혁신으로 상징되는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별도의 운영체계(OS)로 작동되는 탓에 사용하는 데 다소 불편함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중장년들은 주로 삼성 갤럭시폰을 썼다. 그런데 요즘 40대 사이에서 아이폰 인기가 높아졌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17이 불붙인 세대 논쟁
한국갤럽은 매년 국민의 스마트폰 이용 실태를 조사한다. 5년 전만 해도 아이폰을 사용하는 40대는 12%에 그쳤다. 올해 조사에선 31%로 증가했다. 이들이 아이폰을 선호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2009년 11월 우리나라에 처음 아이폰이 출시될 당시의 20대들이 지금 40대다. 다른 걸 다 떠나 스마트폰을 쓰는 데 나이와 브랜드가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아이폰17을 손에 든 영포티를 향한 2030세대의 조롱은 끊이지 않는다. 초점은 아이폰이 아닌 영포티에 맞춰져 있다. 40대가 아이폰을 사용하는 게 문제라기보다, 아이폰17 출시를 계기로 2030세대에서 공유되고 있던 영포티에 대한 반감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영포티(Young forty)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2015년이다. 글자 그대로 ‘젊은 40대’라는 의미였다. 마케팅 업계는 소비·대중문화를 꽃피웠던 X세대가 40대로 접어들면서 중장년층이 과거와 달리 젊어졌고, 그래서 그들이 소비와 문화의 주역으로 부상할 거라 내다봤다. 그때의 40대들은 10년이 지나 50대가 됐다. 영포티 역시 ‘영피프티(Young fifty)’가 됐다.
영피프티는 이미 작년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가 인구수 많고 구매력 왕성한 소비주체로서 영피프티를 꺼내면서다. 그는 요즘 50대들이 “나이는 X세대 부장님인데 퇴근 후에 밴드 활동을 한다거나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는 등 신입사원과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면서 그들이 “체력은 40대고 패션은 30대”라고 평가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20~30대 사이에선 “젊은 게 아니라 나잇값 못 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서 영포티냐 영피프티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2030세대에선 영포티와 영피프티가 혼용되기도 한다. 40대든 50대든 상관없이 ‘젊음을 추구하는 중장년’이라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요즘 40~50대면 정말 젊은 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법도 하다. 정말 젊은 게 맞다. 2000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31.8세였다. 올해는 46.7세다. 한국인을 최고령자부터 최연소자까지 일렬로 줄 세웠을 때 40대는 그 중간에 설까 말까 한다. 문제는 2030세대가 느끼는 거리감마저 달라진 건 아니라는 데 있다. 개인에게는 연도별 중위연령 같은 비교 기준이랄 게 없다. 예나 지금이나 스무 살 차이는 스무 살 차이다.
청년들이 영포티를 경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전의 40대보다 외형적으로 젊어진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10~20세 많은 어른이면 어른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2030 여성들에게 영포티는 흔히 말하는 ‘개저씨(개+아저씨)’다. 띠동갑 이상 되는 어른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젊은 여성들에게 찝쩍댄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르바이트하며 ‘알바 사장님’이나 나이 많은 고객으로부터 고백을 받았다는 20대 여성들의 경험담이 끊이지 않는다. 영포티로 묘사되는 인물이 대부분 남성인 건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청년들은 스스로 젊다고 자부하며 아랫세대와 소통을 강조하는 영포티들이 그 소통의 기준을 젊은 여성이 아닌 다른 집단을 향해서도 일관되게 적용했느냐며 멸시의 눈초리를 보인다.
단순 ‘세대 갈등’ 아닌 정치·사회적 함의 봐야
2030 남성들에게 영포티는 정치적 함의를 갖기도 한다. 원래 마케팅 용어였던 영포티가 조롱의 의미를 담기 시작한 건 2020년대부터다. 이는 청년세대 남녀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정부·여당은 여성 친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2030 남성들은 반발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보수진영에 표를 몰아줬다. 이때부터 ‘이대남’ 현상이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지금도 선명한 안티(anti) 민주당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진영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는 이들을 애물단지 취급한다.
진보진영의 여성 친화 정책 기조에 2030 남성들은 “과거 가부장제의 혜택을 본 기성세대 남성들이 정작 자신들의 특권은 내려놓지 않으면서 아랫세대 남성들에게 양보를 요구한다”고 반발한다. 이때 등장한 게 ‘스윗(sweet) 영포티’라는 용어다. ‘어린 여성에게만 친절을 베푸는 꼰대’라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2030 남성들은 영포티들의 이중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영포티들이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을 자처하지만, 실제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2030 남성들을 향해선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공격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유흥업소에 가서 딸뻘의 어린 여성을 찾고, 역사 문제로 ‘노 재팬(No japan)’을 외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 열광하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2030세대에서 떠도는 영포티 밈(meme)이 모든 40대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2030세대에게 인기 있는 40대 유명 인사들은 유튜브만 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영포티는 ‘포티’가 아닌 ‘영’에 방점이 찍히는 단어다. 그 ‘영’이라는 것 역시 소비적 차원에서의 젊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형성에서의 젊음에 초점을 맞춘다. 요약하자면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과 소통한답시고 젊음을 억지로 어필하는 철없는 어른들을 향한 반감이 영포티라는 단어에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아랫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영포티, 영피프티 같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기성세대는 억울할 것도 같다. 이건 청년세대가 원하는 소통과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소통의 괴리에서 온 게 아닐까. 청년들은 기성세대에게 나이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권위적이지는 않되 어른다운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청년세대로부터 ‘젊은 어른’으로 존경받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