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 전 위원장과 출석일 조율하고도 출석요구서 발송…한 달 반 동안 6번 보내
李 측 “소환불응 거짓 외관 만들려는 시도” 법적 대응 시사…경찰은 “문제 없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체포와 석방을 둘러싼 ‘50시간 논란’이 거세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급 정무직 인사가 면직 직후 전격 체포되는 이례적 상황이 전개되면서 ‘공룡 수사기관’ 시대를 앞둔 경찰의 ‘정치적 수사 예고편’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추가 조사와 여러 갈래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면서 진통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 달 반 동안 6번 출석 요구, 경찰의 폭주”
이 전 위원장이 체포된 것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던 10월2일 오후 4시께다. 외출을 위해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던 이 전 위원장 부부는 대로변 진입과 동시에 돌연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자택 주차장으로 복귀했다. “강력범죄가 발생한 줄 알았다”던 이 전 위원장은 영장 집행을 고지받은 후 곧바로 체포됐고 수갑을 찬 채 서울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됐다. 적용된 혐의는 국가공무원법상 정치운동 금지 및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이 전 위원장은 2024년 9~10월, 올해 3~4월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4곳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하거나 국회에 출석해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등의 행위로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총 여섯 번에 걸쳐 출석을 통보했지만 이 전 위원장이 불응했다며 체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체포영장에 따르면, 경찰은 신병 확보 필요 사유에 대해 ‘피의자(이 전 위원장)는 정당한 이유 없이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아니할 우려가 있다’고 기재했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토한 검찰은 10월1일 법원에 이 전 위원장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를 발부했다. 9월30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설치법 제정안이 의결·공포됨에 따라 10월1일부로 자동 면직된 이 전 위원장이 장관급 정무직에서 내려온 지 하루 만에 영장 청구와 발부, 체포가 숨 가쁘게 이뤄진 것이다.
이 전 위원장 측은 “정치 수사, 과잉 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의 법률대리인인 임무영 변호사는 경찰의 ‘6회에 걸친 출석 요구 불응’ 주장에 대해 “9월27일로 출석 일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소환 불응이라는 거짓 외관을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반박했다. 경찰은 8월12일부터 9월19일까지 등기우편(2회)·일반우편(4회) 및 전화, 팩스 등을 이용해 이 전 위원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이 전 위원장 측은 8월에 이뤄진 출석 요구와 관련해 경찰이 지정한 출석일 당일이나 임박한 시점 또는 이미 날짜가 지난 때에 서류가 도착했고, 을지훈련과 국회 출석·변호인 미선임 등을 이유로 당장의 대면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해둔 상태였음에도 일방적인 출석요구서가 반복적으로 발송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 전 위원장 측이 ‘기획 체포’라며 날을 세우는 지점은 9월 이후 확인된 경찰의 행보다. 이 전 위원장은 9월9일 영등포경찰서 수사2과장과의 통화에서 9월27일 출석을 약속했다. 이 부분은 경찰과 이 전 위원장 측 입장이 일치한다.
그러나 경찰은 출석일이 잡힌 이후인 9월9일과 9월12일에도 각각 ‘9월12일, 9월19일에 나오라’는 요구서를 재차 발송했다. 그사이 경찰은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도 두 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반려된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출석 예정일 하루 전인 9월26일 국회 출석을 이유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자 세 번째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반려된 1·2차 체포영장을 포함해 3차 영장 신청 시점까지 모두 이 전 위원장이 현직으로 있던 때다. 통상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세 차례 이상 출석요구에 불응하고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체포 또는 구속영장을 신청한다.
이 전 위원장 측은 ‘불출석’이 인정되는 날짜는 9월27일이 유일하고, 이 역시 사전에 사유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에 의한 불출석’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6회 출석 불응’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데다 이 전 위원장 혐의와 관련한 영상 등 관련 증거를 이미 경찰이 모두 확보하고 있는 점,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 역시 없는 점을 감안할 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이 전 위원장 측은 경찰이 출석을 요구한 9월27일의 경우 국회에서 방미통위 설치 법안을 놓고 진행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일정이 진행됐고, 국회로부터 관계 기관의 장으로서 반드시 참석해 자리를 지키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고 항변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체포영장 신청시 “이 전 위원장이 국회 대리 출석이 가능함에도 예정된 경찰 조사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 전 위원장은 “영등포경찰서가 한 달 반 동안 여섯 번에 걸쳐 출석요구서를 발송하며 폭주했다”며 “경찰이 엉터리 출석요구서 발송을 근거로 세 차례나 체포영장을 신청한 뒤 ‘여섯 차례 출석요구 불응’이라는 자막을 텔레비전 화면에 띄우도록 한 것”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진숙 정치적 체급만 커졌다”…與도 혹평
이 전 위원장은 법원의 석방 명령으로 50시간 만에 풀려났지만 후폭풍은 상당하다. 검찰청 해체가 예정된 상황에서 1차 수사권이 집중될 경찰에 대한 ‘정치 수사’ 우려도 증폭되는 양상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경찰이 설익은 판단으로 이 전 위원장의 정치적 체급만 키워준 꼴이 됐다” “아드레날린 과다분비에 따른 과잉”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이 전 위원장 체포 후 1·2차 조사를 진행한 경찰은 아직 3차 조사 시기를 확정하지 않았다. 당초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을 체포한 후 48시간 내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할 방침이었지만, 체포 적정성 논란이 불붙은 데다 법원의 석방 결정까지 나오면서 수사 향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경찰의 추가적인 신병 확보 시도는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경찰 인사에 따라 기존에 수사를 이끌었던 지휘부와 일선이 교체된 점도 변수다. 9월29일부로 서울경찰청은 박정보 신임 청장이 이끌게 됐고, 이 전 위원장 사건 책임자인 영등포서 수사2과장도 10월10일을 기해 교체된다. 경찰이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체포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공소시효 6개월’에 따른 긴급성을 내세운 점과 법원이 이 전 위원장의 체포적부심을 인용하며 ‘피의사실이 범죄로 성립하는지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고 한 부분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공직선거법상 일반적인 공소시효는 6개월이지만, 이 전 위원장이 적용받는 이 법의 제268조 제3항에 따르면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임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공무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공소시효는 6개월이 아닌 10년이고, 따라서 9년6개월 이상의 여유가 있다”며 “경찰·검찰이 주장하는 시기적 긴급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이 수사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 필요성과 체포 적법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신병 확보를 둘러싼 절차상 문제는 해소된 것”이라며, 공소시효 해석에 대한 법리 검토와 이 전 위원장 진술 등을 종합해 수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 대응을 선언한 이 전 위원장 측은 체포 과정에 관여한 경찰 일선 및 지휘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경찰이 ‘6회 출석 불응’ 논리를 만들기 위해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확인될 경우 이는 허위공문서 작성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서 체포영장을 신청할 때 관련 수사자료를 고의 누락하거나 빠트리지 않고 모두 제출했다는 입장이다.
이 전 위원장은 이미 지난 5월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유 대행은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주당 소속 신정훈 행정안전위원장으로부터 이 전 위원장의 법인카드 유용 혐의 수사에 대한 ‘신속·강제수사 및 즉각적인 구속수사도 불사하라’는 질책을 받은 후 “신속하게 수사하도록 국가수사본부에 지시하겠다”고 답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찰청장은 개별 사건 수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없다”며 신 위원장과 유 대행을 모두 고발했다. 현재 이 전 위원장이 대전MBC 사장 재직 시절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수사는 대전유성경찰서에서 진행 중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영장 신청 시 제출한 수사기록에 이 전 위원장 및 변호인과 일정 협의를 하고도 이에 대한 부분을 누락한 채 6회에 걸친 출석요구서 발송 내역만 반영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이 전 위원장 측에서 허위공문서작성죄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소시효를 두고 양측이 충돌하는 데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혐의와 관련한 발언을 했을 때 방통위원장직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 직위나 직무를 이용해 명시적인 사전 선거운동 등을 한 것이 아니어서 ‘공소시효 10년’ 조항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