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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공정해야 할 법, 흔들리는 그 잣대
탄핵 정국속에서 대한민국의 법치를 다시 묻는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술자리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성토하는 선배, “법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배,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니 무효다.”라고 단언하는 친구.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지만,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단어는 바로 ‘법(法)’이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해석과 적용 방식이 다르기에 충돌이 발생한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다.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법이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법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는 법이란 무엇인가? 왜 같은 법이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법(法)은 흐르는 물과 같은가?

한자 법(法)을 살펴보면, 삼수변(?)과 갈 거(去) 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법이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술자리에서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외친 선배는 법이 자신의 상식과 맞지 않음에 분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법이 사회적 상식과 합리성에 기반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법이 상식적이지 않거나 법관이 비논리적으로 해석한다면, 사람들은 좌절하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다.

법의 탄생 과정도 충돌에서 비롯된다. 한 친구가 “저 친구는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하자, 다른 친구가 반박했다. “아니야, 저 친구는 너무 착해서 법이 없으면 오히려 못 살아. 법이 저 친구를 지켜줘야 해.” 이 짧은 대화 속에서도 법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법은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결정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법을 이렇게 정의했다. “근대 국가에서는 왕이 ‘주관적인 뜻’으로 다스리던 방식을 포기하고, 관리가 ‘미리 다듬어 공개한 객관적인 말’로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서 ’미리 다듬는 과정’이 바로 입법이며, 이를 담당하는 곳이 국회다. 만들어진 법을 해석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사법부, 법을 집행하고 실행하는 것이 행정부다. 이처럼 국가 권력의 세 축인 입법·사법·행정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이를 ‘삼권분립’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균형이 깨질 때, 법은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는 흔들린다.

법(法)은 중력(重力)이다

 법은 우리 사회에서 중력(重力)과 같은 존재다. 만약 중력이 사라진다면, 물체들은 공중을 떠다니며 질서를 잃는다. 마찬가지로 법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혼란 속에서 붕괴할 것이다. 또한 법은 잣대다. 진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하면서 도량형(度量衡)의 기준을 통일한 것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남겼다. 지역마다 길이, 부피, 무게의 기준이 다르면 거래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이 사람에 따라,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 사회는 법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법이 형식적 공정성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판례인 미란다 판결이 이를 잘 보여준다.  1963년, 애리조나주에서 18세 소녀를 납치·강간한 혐의로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체포되었다. 경찰은 그를 심문하여 자백을 받아냈고, 1심에서 20~30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유는 경찰이 체포 당시 미란다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법의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진다면, 법의 존재 이유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법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법이 상식적인가? 둘째, 모든 사람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가? 셋째, 법이 집행되는 과정이 정당한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법을 해석하는 자들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법의 잣대, 공정한가?

 최재천 교수의 저서 《숙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법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천칭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이는 공정한 판단과 형벌의 엄격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법원의 디케상은 눈을 가리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재판받는 이의 사정을 세밀히 살펴 공정한 판결을 내리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지만, 일부에서는 “눈을 뜬다는 것이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 법에 필요한 것은 디케의 눈을 가리는 것, 즉 철저한 공정성이다.

 또한 법이 휘청거릴 때 이를 바로잡는 사회적 장치들이 건강하게 작동해야 하지만, 이미 상당 부분 고장 나 있다.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의 편향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편이라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상대편에게는 마치 확정된 범죄자인 듯 공격하는 기사와 평론이 넘쳐난다. 이러한 ‘편향적 태도’가 심해질수록 사회적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결국 20~30대 젊은이들은 기존 언론을 외면하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정보를 직접 찾아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존 언론과 정치 세력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면 ‘극’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프레임을 씌운다. 방송은 우리 편을 얼마나 더 잘 편들 수 있는지를 겨루는 장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누가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는가?  대한민국이 법의 중력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나라, 누구에게나 공정한 잣대를 제공하는 나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회복탄력성이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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