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2025 프로축구, 1라운드부터 이변의 연속…‘양강’ 울산·서울 패배
전통 명가의 부활 예고한 전북, ‘거물’ 포옛 감독 선임
동장군이 여전히 매서운 기세를 내뿜는 2월 중순 프로축구 K리그가 개막했다. 1부 리그인 K리그1은 2월15일 첫 경기를 시작했다. 울산 HD현대의 클럽월드컵 참가와 EAFF E-1 챔피언십(구 동아시안컵) 등의 변수로 예년에 비해 2주 앞당겨진 역대 가장 이른 출발이다. 2부 리그인 K리그2는 일주일 후인 2월22일 시즌을 시작했다.
2년 연속 유료 관중 300만 명을 돌파한 K리그는 고속성장을 이뤄가는 중이다. 여성 팬과 가족 팬의 유입이 폭발적 증가세를 이끌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제시 린가드 같은 세계적인 스타의 합류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입장 수익도 지난해 425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스페인어 통하는 포옛, 이승우 ‘기 살리기’
K리그의 진짜 매력은 예측 불가능한 승부에 있다. K리그1의 경우 과장을 조금 보태면 디펜딩 챔피언이 다음 시즌 강등권까지 내려가는 무대다. 12개 팀 중 최대 3개 팀이 강등 가능성을 안고 간다. 12위는 다이렉트 강등이고 10위와 11위는 K리그2 팀들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21세기 K리그 최강으로 꼽히며 왕조를 구축했던 전북 현대는 지난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반면 2023년 강등 위기까지 간 강원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3년 연속 파이널A(상위 그룹)에 든 팀은 울산과 포항뿐이다.
매 라운드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는 유럽처럼 월등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슈퍼클럽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리딩 클럽으로 불리는 울산과 전북이 500억원 전후의 예산을 쓰지만 선수 인건비가 압도적이진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정효로 대표되는, 확실한 자기 전술 색채를 가진 감독들이 하위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스쿼드의 차이를 극복하고 있다.
1라운드부터 K리그의 특징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초 우승 전망에서 양강 구도로 꼽힌 울산과 FC서울이 패했다. 지난 시즌 파이널A에 들었던 6개 팀 중 1라운드에서 승리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치열한 강등 싸움을 한 전북, 대전 하나시티즌, 대구FC 등이 나란히 승리를 거뒀다. 처음 1부 리그로 온 시민구단 FC안양은 대어 울산을 잡으며 환호했다.
울산과 서울만큼 화제를 모은 건 역시 전북이었다. K리그 최다 우승(9회)에 빛나지만 최근 2년은 추락의 연속이었다. 결국 1부 리그에 잔류했음에도 김두현 감독과 결별하고, 고심 끝에 거스 포옛 감독을 선임했다. 포옛 감독은 홍명보, 다비트 바그너 감독과 함께 대한축구협회가 국가대표팀 감독 최종 후보군에 뒀던 인물이다. 반복되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북이 거물 감독을 데려온 것이다.
동계훈련 내내 강한 체력훈련과 까다로운 식단 관리 등이 화제가 된 전북은 뚜껑을 열자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K리그 개막에 앞서 치른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2 16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태국의 포트FC에 4대0 대승을 거뒀다. 사흘 후 홈에서 치른 김천 상무와의 K리그1 1라운드에서도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김천은 지난 시즌 3위를 기록했고, 기존 멤버가 그대로 남아 조직력이 강한 팀이다. 포옛 감독은 빠른 템포의 공격 전환, 중앙뿐만 아니라 측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술을 선보였다. 선수들의 집중력과 투지도 승강 플레이오프로 내몰렸던 2개월 전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대전 간 주민규, 황선홍 감독 믿음 속 맹활약
전북은 여전히 울산과 서울 못지않은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한다. 지난해 여름 K리그 국내 선수 최고 대우를 보장하고 데려온 이승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북 유니폼을 입은 뒤 이승우는 3골을 넣는 데 그쳤다. 이적하기 전 수원FC에서 10골을 넣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포옛 감독은 이승우를 적극 활용 중이다. 우루과이 국적인 포옛 감독은 이승우와 스페인어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성장기를 스페인에서 보내 유럽적인 마인드가 강한 이승우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는 지도자다. 포옛 감독 체제하에서 치른 2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한 이승우는 포트FC와의 경기에서 박진섭의 선제골을 도왔다. 부주장으로 선임되며 책임감도 확실히 부여받은 상태다.
하나금융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대전에서는 지난 시즌 강등 위기 속에 중도 부임한 황선홍 감독이 소방수 역할을 훌륭히 했다. 구단주인 함영주 회장이 “우승을 목표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하며 이번 겨울 대전은 유능한 선수를 대거 보강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스트라이커 주민규다.
황선홍 감독이 직접 영입전에 나서 선수를 설득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대전의 팀 내 최다 득점자는 6골을 기록한 일본인 공격수 마사였다. 황 감독 입장에선 검증된 골잡이가 간절했고, 대표팀 임시 감독 시절 함께했던 주민규를 영입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주민규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마지막 이적이 될 수 있는 기로에서 황 감독을 믿고 동행하기로 하면서 대전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1990년생이지만 여전히 골문 앞에서 탁월한 마무리 능력을 보여주는 주민규는 개막전부터 기대에 부응했다. 포항을 상대로 후반 막판 멀티골을 작렬한 것. 특히 전반에 눈가를 다쳐, 한쪽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서도 공격수의 본능을 보여줬다. 동계훈련 내내 주민규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낸 황 감독은 골이 터지자 현역 시절 자신이 득점한 것처럼 포효했다. 만 35세인 주민규는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득점왕에 도전한다.
지난해 여름 제주 SK에 합류한 남태희, 그리고 이번 겨울 서울로 전격 이적한 김진수의 부활 여부에도 눈길이 쏠린다. 중동과 일본 무대를 거쳐 만 33세에 K리그에 입성한 남태희는 동계훈련을 통해 팀 적응을 마쳤다며 활약을 자신했다. 잇단 부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며 대표팀에서도 밀린 김진수는 김기동 감독의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아들이며 서울 유니폼을 입고 부활을 외치고 있다.
제2의 양민혁이 될 젊은 피들의 활약도 관전 포인트다. K리그에서 활약을 펼치고 6개월 만에 토트넘 이적을 확정했던 양민혁의 전철을 밟으려는 선수가 많다. 이미 프리미어리그 브라이튼과 협상 중인 대전의 윤도영을 비롯해 서울의 강주혁, 전북의 진태호, 수원 삼성의 박승수, 인천 유나이티드의 백민규 등이 전문가들이 거론하는 올 시즌 특급 유망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