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와 선 긋고 이긴 김종인…광주에선 무릎 꿇고, 이명박·박근혜 구속도 사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라고 주장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당내 친명그룹에선 이 대표의 발언을 옹호하고 나서며 이 발언이 대선을 염두에 둔 ‘중도 확장’ 전략임을 확인시켰다. 당내에선 ‘왜 당의 정체성을 마음대로 바꾸냐’는 비판들이 쏟아졌고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들은 탄핵 찬성 의원 등을 향해 “당을 떠나라” “중도는 없다. 똘똘 뭉치면 중도는 따라온다”고 외치면서 소위 우파 유튜버 주장에 동조하며 구심력을 강화하고 있어 조기 대선을 앞두고 당 안팎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2017년 3월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그해 5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내리 4연패를 했다. 이후 조국 사태, 부동산 폭등, LH 사태까지 이어지며 국민의힘에 기회가 찾아왔다. 비대위원장 김종인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후보가 확정된 다음 날 과감하게 광주를 찾아 5·18 묘역에 무릎을 꿇고 5·18 정신을 언급했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정강·정책도 바꾸며 대승을 거뒀다. 태극기부대도 사라졌고 소위 ‘극우’와 선을 그으며 이듬해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이겼다. 3연승 공식은 과감한 중도 확장 전략이었다.
계엄·탄핵 아닌 ‘미래 경쟁’ 돼야 與 해볼 만
중앙일보의 22대 총선 사후 조사를 보면, 지난 대선 0.73%포인트 박빙 대결을 벌였던 양당의 격차가 22대 총선에서 5.4%포인트(지역구 후보 득표 기준) 격차로 뒤집힌 건 윤석열 대통령 지지층의 이탈이 더 컸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었다는 이들 중 83.8%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했고, 나머지 10.1%가 민주당 후보에게, 2.3%가 개혁신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반면 이재명을 찍었다는 이들의 88.6%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고,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은 5.8%였다. 지지를 바꾼 스윙보터가 192석과 108석을 갈랐고, 이 패배는 결국 계엄으로까지 이어졌다.
1987년 이후 진보진영은 끊임없이 통합을 외쳤고, 보수진영은 혁신을 표방했다. 진보진영이 소수파였고 보수진영은 주류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상황이 뒤바뀌어 보수가 통합을 부르짖고 진보는 혁신을 말한다. 조기 대선이 벌어져도 국민의힘은 통합, 민주당은 혁신이 관건이다. 소수파는 작은 힘이라도 모아 규모를 키워야 하고, 주류는 변화를 통해 세력을 지속시켜야 한다. 소수파는 통합을 한 뒤 중도 확장을 꾀하고, 주류는 혁신을 통해 중도층을 계속 자기 쪽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통합도, 혁신도 결국 중도 확장의 방도인 것이다.
탄핵심판이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조기 대선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 차원의 대선 준비 기구를 본격 가동했다. 사법 리스크에도 출마가 확실시되는 이재명 대표는 최근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과 높은 비호감도를 극복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중도 포용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선 언급을 금기시하는 가운데 후보들이 개별적으로 대선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중도 무용론에도 언론에서는 국민의힘 후보들의 중도 확장성과 관련한 내용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승리 공식은 오직 이재명 후보의 중도 확장에 있다. 당내 여타 후보들의 추격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자치단체장 시절의 온갖 사법 리스크, 일극 체제를 만들며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반면 계엄과 탄핵 책임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국민의힘의 승리 방정식은 복잡하다. 먼저 점점 고착되는 50%가 넘는 정권 심판 여론을 극복해야 한다. 정권 심판은 선거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둘째, 60~70%에 달하는 탄핵 찬성 여론인데, 계엄 책임론이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면 국민의힘으로선 굉장히 버거울 것이다.
셋째, 윤 대통령 리스크다. 만약 탄핵이 인용된 뒤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지지자들을 향해 계속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으면 심판론에서 못 헤어난다. 이미 지지층 결집이 정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고정 지지층을 넘어 중도층까지 확장하려면 첫째, 윤 대통령이 정권 연장으로 자신의 국정 의제가 지속될 수 있도록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통해 높은 정권 심판 여론을 희석시켜야 한다. 둘째, 제 세력을 아우르는 ‘반(反)이재명 연합’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셋째, 중도 확장력이 큰 후보를 내세우거나, 여의치 않으면 선거의 쟁점과 구도를 탄핵을 넘어선 미래 경쟁으로 가져가야 한다.
흔히 총선은 회고 투표, 대선은 전망 투표라고 한다. 하지만 역대 대선은 인물 대결과 정책 경쟁을 하면서도 늘 정권 심판이 주요 선거 요소였다. 차기 대선 전망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의 높은 정권 교체 여론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권 교체 여론은 1월 3주 56%, 4주 60%, 2월 2주 54%인 반면, 정권 연장은 각각 31%, 27%, 33%였다. 현재 이재명 대표 지지율은 45% 전후로 최대치에 올라와 있다. 반면 국민의힘 후보들은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다. 탄핵 인용과 이재명 대표의 2심 유무죄 여부, 그리고 본격적으로 1대1 구도가 만들어지면 다소 조정될 가능성은 있지만 여러 지표에서 국민의힘에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선동과 확증편향에 의존하는 지지층 결집
국민의힘은 심판을 앞세운 회고 선거를, 미래를 놓고 대결하는 전망 선거로 바꾸는 강력한 모멘텀을 구축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층이 다시 지지할 명분이 생긴다. 많은 이가 선거를 상대와 싸우는 것으로 착각한다. 외형은 상대와의 대결이지만 공세도 방어도 모두 유권자에 대한 어필이 목적이다. 상대와의 공방을 통해 지지층을 단결시키고 중도층을 끌어오는 게 선거의 기본 개념이다. 선거 때 늘 존재하는, 정당을 가리지 않는 15~20%의 스윙보터를 누가 더 많이 가져오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된다.
지지층을 배반하는 과도한 중도 확장은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도 설 이후 52시간제 수용 등 중도 확장을 시도하다 전통 지지층의 반발에 막혀 ‘말 바꾸기’ 논란만 불러냈다. 전통 지지층과 중도층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지층이 똘똘 뭉친다고 해서 중도가 따라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이익에 충실한 합리적 중도층은 이유가 분명해야 된다. 강고한 지지층 결집은 주로 분노에 기반하고, 분노는 혐오·음모론·가짜뉴스 등 선동과 확증편향에 의존한다. 당장의 결집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중도층 이반을 가져온다. 팬덤을 중심으로 한 강고한 지지층이 얼마나 전략적 인내심을 가지고 당과 후보의 선거 전략에 잘 호응하느냐에 중도 확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