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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홍장원 수뇌부의 공개 증언 충격…북한·중국 정보기관, 정보 거저 얻어
국정원 안팎에서 작동하는 정치화 유혹, 비밀·진실·전문성 축적으로 막아내야 

2024년 12월3일 밤 10시28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다음 날 새벽 4시30분 이를 해제한 이틀 후인 12월6일, 국가정보원 1차장 홍장원은 국회 정보위원회를 찾았다.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 앞에서 계엄 사무와 관련한 대통령의 지시 및 방첩사령관의 체포 대상 정치인들에 대한 위치 추적 협조 요청 등 일련의 과정을 시간대별로 브리핑했다. 조태용 국정원장의 반박이 뒤따랐다.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두 사람의 다툼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여과 없이 지상파를 탔다. 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조직, 그 역량과 한계, 타 기관과의 협력 메커니즘, 그리고 국정원장의 대통령 주례보고와 통신체계 등 기밀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절제는 길을 잃고, 비밀성은 무너진다. 장중함이 없다. 국민이 지켜보기에 민망하다. 언론이 두고 볼 리는 만무하다. 북한의 국가보위성과 정찰총국, 중국 국가안전부(MSS)가 돈과 시간을 들여도 빼내기 어려운 정보를 거저 얻는다. 북·중 정보기관의 먹잇감이 될까 걱정이다.

국정원이 이런 소용돌이에 빠져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국정원이 국회의 위임과 대통령 직속으로 활동하는 이상, 국가 현안에서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국가정보기관의 정치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권은 국가정보기관의 아우라를 활용해 정책적 선호를 강화하려 하고, 정보기관 구성원들에게는 관료제적 이익과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려는 쌍방향 움직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왼쪽)조태용 국정원장,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왼쪽)조태용 국정원장,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직원들의 상처와 불신, 역량 저하로 이어져

그렇지만 정보기관의 힘의 원천은 비밀성에 있다. 조직, 활동 및 그 산물인 정보의 비밀성은 국정원 존립의 알파와 오메가다. 다른 국가들이 숨기려고 애쓰는 비밀을 수집하기 위해 우리의 비밀성 유지는 필수적이다. 비밀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정원은 설 자리가 없다. 누가 그들에게 협조하겠으며, 어느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정보 협력을 해주겠나? 누가 그들의 판단을 무게 있게 받아들이고, 그 권위를 인정하겠나? 

국가가 막대한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비밀정보기관을 유지하고 국민이 미우나 고우나 조직의 비밀성을 감싸주는 이유는 명료하다. 극히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장막 뒤에서 국가안보와 국익을 치밀하게 챙기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국정원 직원에겐 그래서 일반 공무원들보다 더 중한 ‘정치 관여 금지’의 법적 의무가 있고, 퇴직자에게까지 ‘비밀의 엄수’ 책무를 지우고 있다. 그리고 법적 강제성을 떠나, 국정원 종사자나 종사했던 자라면 보안수칙을 생활화한다. 낮은 자세를 유지하려 하며 대중의 눈과 귀에 띄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게 정보 윤리다

국정원 ‘댓글 수사’와 ‘적폐청산 수사’로 정치적 자산을 구축했고 국정원 사용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 국정원을 1년 남짓 운영한 조태용 국정원장 및 30년 정도 몸담았던 홍장원 1차장, 그리고 문재인 정부 때 3년10개월간 국정원의 정무직을 지낸 민주당 박선원 의원과 1년10개월간 국정원장에 봉직한 박지원 의원. 이들이 전개하는 정치화의 다이내믹스에 국정원은 속수무책이다. 국정원이 본 피해와 직원들의 마음의 상처가 깊다. 지휘부 및 직원 상호 간 불신은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 이 조직을 이대로 쓸 수 있겠냐는 탄식이 나옴 직하다.

미국이 글로벌 패권국이 되고, 제일의 경제 번영을 누리는 데는 정보공동체(IC·Intelligence Community)의 숨은 노력이 있다. 그들은 극도로 조심하고 본분을 지킨다. 대통령과 의회는 정보공동체의 수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본질적으로 신뢰한다. 세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첫째, 중앙정보국(CIA) 창설 이래 첫 직업정보관 출신 수장이 된 리처드 헬름스는 탈정치의 프로페셔널한 권위를 가졌다. 1966년 취임해 민주당의 존슨과 공화당의 닉슨 행정부를 관통해 7년간 재임했다. 그는 “반전시위의 배후에 적대적인 외국의 개입이 있다”고 믿는 닉슨 대통령의 의견문의에 증거가 없다고 맞섰다. 1972년 6월, 전직 CIA 직원이 가담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는 백악관으로부터 “국가안보가 걸린 사안이니만큼 CIA가 연방수사국(FBI)으로 하여금 수사를 중단케 하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CIA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로 인해 헬름스 국장은 30년 정보기관 생활을 마감했지만, CIA가 워터게이트 정치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막았다.

둘째,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부터 2년간 CIA 부국장을 지내고 이어 97년부터는 공화당 부시 행정부까지 7년 동안 CIA의 수장을 역임한 조지 테넷은 회고록 《폭풍의 한복판에서》에서 “나는 대통령을 정말 좋아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시를 도와 9·11 테러를 극복했고, 아프간 전쟁 성공 및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인 AQ 칸의 핵확산 작업을 저지했다. 그런 테넷이 2004년 7월 부시 정권이 이라크 전쟁 명분의 실패 책임을 CIA에 돌리려고 할 때, 이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부시는 그의 사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예우했다.

 

정권 교체에도 안 바뀌는 CIA 수장들

셋째, 미국 연방법은 국가기밀 누설에 대한 처벌이 엄하다. 2005년 7월의 리크게이트는 워터게이트처럼 정국을 흔들었다.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 대사대리가 “이라크가 니제르로부터 우라늄 정광, 옐로케이크를 구입하려 했다는 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언론 기고를 하자, 부시의 백악관은 윌슨을 파멸시키기 위해 그의 아내인 발렐리 프레임이 CIA의 대량살상무기(WMD) 담당이었다는 신분을 누설했다. 2016년 7월엔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임 중에 기밀문건 1258건을 개인 이메일로 받은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커졌다. 두 사건 모두 FBI의 수사와 재판으로 갔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헌법상 임무 수행을 뒷받침하는 실효적 도구다. 국가안보의 제일선에서 영토와 주권, 국민을 지킨다.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각부 장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정제된 판단 정보를 제공한다. 국정원을 흔들면 국가와 국민이 손해다. 직업적 비윤리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 불법성은 국정원이 끝까지 추적해 의법 조치해야 하며, 공개 증언의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정치인들은 국정원을 진실하고도 현실적으로 대해야 한다.

100년 전 관료제 이론을 처음 체계화한 막스 베버는 비밀로 보호되는 지식이야말로 관료의 권익을 증진하는 잠재적 힘이며, 관료가 전문성을 갖추면 정치인들이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고 했다. 국정원은 혼신을 다해 비밀을 지키고, 진실에 근접한 정보를 생산하며, 전문성을 쌓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선출된 권력이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조경환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필자 조경환 박사(행정학)는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정원 고위공무원을 지낸 뒤, 세종연구소와 통일연구원, 성균관대에서 북핵, 한미동맹 등 외교안보와 국가정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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