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각에선 ‘국민 후보 추대론’도…“정권 재창출 밀알 되겠다” 옥중 발언
대통령 파면? 제1야당 대표 유죄? 3월 중순께 연쇄적으로 결판날 듯

129일. 정계 입문을 선언한 날부터 정통 보수당의 대선후보를 거쳐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윤석열의 시간은 ‘파죽지세’ 그 자체였다. 압축적으로 흘렀던 정치인 윤석열의 시계는 중도층을 자극하며 보수진영에 극적인 정권 탈환을 안겼다. 그러나 2024년 12·3 비상계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윤 대통령의 시간은 멈춰섰고, ‘파면’ 갈림길에 선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은 여론전을 펼치며 임기 중엔 직시하지 않던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옥중에서 ‘자진 하야’나 ‘조건부 퇴진’은 자신의 시나리오에 없다는 점을 역설 중이다. 대통령으로서의 생명은 끝나더라도 ‘순교자’ ‘희생자’ 이미지를 구축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세하겠다는 복심(腹心)을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의 노림수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여당의 가팔라진 ‘주반야대’(낮엔 탄핵 반대, 밤엔 조기 대선) 움직임 속에 윤 대통령의 행보가 오히려 파열과 혼돈을 불러올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가 유력한 3월 중순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는 계엄 이후 최대 격변을 맞게 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6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2월6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빨리 직무 복귀해 세대통합의 힘으로 한국 이끌 것”

구속 상태인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고인 신분의 형사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윤 대통령과 변호인단은 법정 안팎에서 줄기차게 ‘위헌·위법성이 없는 계엄령’이라는 주장을 쏟아낸다. 윤 대통령은 헌재 심판정에 직접 나와 ‘국헌문란 폭동’ 성립의 키를 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등의 진술을 파고들며 ‘메신저’ 공격에 열을 올렸다. ‘반격’을 공언했던 윤 대통령과 변호인단은 그러나 실책을 거듭하며 헌재의 ‘기각’ 가능성에서 점차 멀어지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군 투입 지시 등 잇단 자백성 발언을 하고, 변호인단이 제출한 증거는 조태용 국정원장과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메시지 소통을 드러내며 또 다른 논란까지 촉발했다.

반격이 점차 힘을 잃어가던 바로 그 시점에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중대한 결심’을 예고했다. 이 중대 결심은 곧바로 자진 하야 가능성을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보수 원로 논객 조갑제씨가 지지층 결집 양상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하야를 결단하면 그 동정심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반(反)이재명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한 여론을 만들 수가 있다”고 불을 붙이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2월20일 ‘직무 복귀’ 의사를 드러내며 하야설을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어른 세대, 기성 세대가 청년 세대와 함께 세대 통합을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힘을 써달라”며 “그렇게 하면 내가 빨리 직무 복귀를 해서 세대 통합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겠다”는 메시지를 석동현 변호사를 통해 전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자진 하야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윤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인사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하야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고 있다는 의중을 드러내며 “정권 재창출의 밀알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출 중이라고 한다.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로 지목한 바 있는 반국가세력의 집권을 저지하는 데 남은 일생을 바치겠다면서도 “하야는 그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려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더라도 이미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한 만큼 개헌 추진을 위한 ‘3개월 시한부 대통령직 유지’를 먼저 제안하는 방안이 여권 일각에서 거론되기도 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 역시 모두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 하야와 조기 퇴진은 모두 비상계엄 사태 직후에도 수습책으로 거론되던 시나리오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제시한 ‘질서 있는 퇴진’을 거부한 윤 대통령은 수사마저 불응하며 현직으로서는 처음으로 관저에서 체포되는 자충수를 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확인된 보수진영의 위기 의식과 결집, 법원 난입과 판사 위협, 헌법재판관에 대한 도를 넘은 공격으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흐름은 윤 대통령의 ‘버티기’에 촉매제가 됐다.

2월1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윤갑근 변호사(오른쪽)가 “지금과 같은 심리가 계속되면 대리인단은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캡처
2월1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윤갑근 변호사(오른쪽)가 “지금과 같은 심리가 계속되면 대리인단은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캡처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김진홍 목사와의 교류에서도 드러난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을 지낸 김 목사는 올해 1월 윤 대통령의 요청으로 구치소에 성경책을 보낸 인물이다. 김 목사는 공식 석상에서 헌재에 대한 공격 필요성을 주장하며 비상계엄을 ‘신의 한 수’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계엄으로 2030 젊은 층의 정치 관여도를 높인 덕분에 대선에서도 정권 재창출의 길을 터놨다고 했다. 비상계엄 전에 윤 대통령이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진 극우 유튜버들의 선동성 콘텐츠나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많다. 

수감 전에 극우 세력이나 부정선거론자들의 일방적 분석과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했던 윤 대통령은 탄핵되더라도 보수가 재집권한다면 사면이 가능하다는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옥중 정치를 이어가며 보수진영에서의 존재감을 놓지 않는다면 차기 정부에서 사면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윤 대통령이 감옥 안에서 죽든지 나와서 죽든지 죽을 작정을 해야 본인도 살고 나라도 사는 것”이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 대통령이 구상한 ‘작심’은 하야가 아닌 ‘반국가세력·부정선거·야당 횡포’를 줄기차게 공략하며 지지층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좁혀진다. 만일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 결정이 아닌 7(파면)대 1(기각), 6대 2 결과가 나올 경우 절차적 완결성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재판관 및 헌재 때리기 수위를 더 높일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을 대리하는 석동현 변호사는 2월19일,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일은 없다며 ‘중대 결심’은 변호인단 총사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석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결과에 대통령은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러한 (헌재) 결정이 최대한 공정하게, 적법하게 진행되기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李, 2심 뒤집기 자신하지만…‘5월 조기 대선’ 혼돈 불가피  

윤 대통령의 판단 저변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운명 역시 바람 앞에 등불일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이 대표가 받는 5개의 재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은 2월26일 변론을 마무리하고 검찰이 구형하는 결심공판을 진행한다. 통상 결심 이후 한 달 안에 선고가 이뤄지는 데다, 서울고법 형사6-2부(최은정, 이예슬, 정재오 부장판사)가 이미 신속 심리를 공언한 만큼 3월 내로 마침표를 찍게 될 전망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3월 중순에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현직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3월 중순을 기점으로 동시에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윤 대통령 파면, 이 대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나오게 되면 5월 조기 대선 국면이 시작됨과 동시에 유례없는 혼란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5차 공판기일인 2월26일 검찰과 이 대표 측이 신청한 양형증인에 대한 신문을 진행한다. 유·무죄와 관련 없이 형량의 경중을 정하기 위해 재판부가 신문하는 증인이다. 이 대표 측의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와 검찰 측의 김성천 중앙대 교수가 양형증인으로 채택됐다. 검찰은 정 교수의 정치적 성향과 ‘친민주당 성향’을 문제 삼으며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의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과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해외에서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 등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장에 적시된 이 대표 발언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허위사실임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고, 검찰은 결심공판을 앞두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항소심에서 뒤집기를 자신하고 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4개의 다른 재판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모두 ‘정지’된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대선이 사법 리스크의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란 점을 자인한 셈이다. 이 대표는 2월19일 MBC 《100분 토론》에서 선거법 항소심 결과에 대해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 시점을 아무리 빨라도 오는 6월 이후로 전망하고 있어서다. 

이 대표는 ‘헌법 84조’에서 규정한 대통령의 소추 범위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는 것과 관련해 “소(訴)는 기소를 의미하고 추(追)는 소송 수행을 말한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이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84조는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 대통령은 재직 중에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다만 대통령 당선 전에 진행 중인 형사재판에도 동일한 적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찬반이 엇갈린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30·장년 모두 Win-Win하는 노동개혁’ 대토론회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30·장년 모두 Win-Win하는 노동개혁’ 대토론회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尹, 여권 잠룡들의 조기 대선 행보에 불만 터뜨려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이 대표의 선거법 항소심 선고가 임박해 오면서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다. 국민의힘과 여권 유력 대선주자들이 아직은 윤 대통령과 보폭을 맞추고 있지만,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는 순간 ‘거리두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기 대선’을 금기어로 두면서도 한쪽 발은 이미 대선에 담그고 있다.

비상계엄 그리고 ‘명태균 게이트’에도 ‘리스크’가 없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하고 전면에 나섰다. 한 대표는 21년간의 검사 이력을 빼고 ‘경고성 계엄’이라는 윤 대통령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선명성을 부각했다. 검사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무너져내린 상황이니만큼 ‘윤의 황태자’로 불리던 과거와 선 긋기를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탄핵 정국에서 유력 주자로 발돋움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행보에도 당내 관심이 집중된다. 2월19일 김 장관이 기조연설을 맡은 국회 노동 개혁 토론회에는 지도부를 포함해 여당 의원 58명이 모여들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자서전 《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자서전 《한동훈의 선택-국민이 먼저입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옥중에서 국민의힘의 이 같은 행보에 불만을 드러내며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발언까지 쏟아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측 인사에 따르면 한 대표와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잇달아 대선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야당 때리기’ 대오가 흐트러진 점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선거에 임박한 시점에 강성 지지층을 자극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별개의 ‘국민 후보’를 추대하는 방안을 꺼낼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되면 집토끼와 중도층 공략 숙제를 풀어야 하는 여당의 고심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월20일 국민의힘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윤석열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조기 대선에 대비한 중도층 집중 공략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 그 후 선거까지 두 달 동안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적인 주장을 해온 국민의힘 이미지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강성 지지층은 세상이 쪼개져도 국민의힘을 찍는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중도층으로부터 표를 더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