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은혁 임명되면 헌재 압도적 장악…지금은 문형배 포함 8명 중 3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
‘사법부 독립’에서 시작…노무현·문재인 정권 거치며 “법리 보다 신념 따른 판결” 비판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현직 대통령과 권한대행 심지어 대행의 대행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헌법재판소보다 더 막강한 기관이 있을까? 헌정 이래 아니, 전 세계적으로 이토록 힘센 헌법재판소는 없었다. 이런 헌재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상위 파워집단이 아닐 수 없다. 12·3 계엄 사태와 헌재 심판 과정에서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우리법연구회’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로까지 비유되는 이 조직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발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김진홍, 손현보, 전광훈, 전한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보수 투사’들은 2월2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최소한의 공정성도 없고 심각한 편향성 시비에 휘말린 헌재가 졸속 탄핵을 할 경우 국민 저항을 각오하라. 헌재는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사실 헌재 편향성 시비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우리법연구회라는 법원 내 오래된 사조직에 도달하게 된다.
마침 헌재는 2월27일 논란의 한복판에 섰던 마은혁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 수장으로 있는 헌재가 문제적 인물로 지목된 우리법연구회 출신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했으니 헌재는 사조직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를 받아들여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할 경우, 헌재는 우리법연구회에 장악됐다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땐 대법관 14명 중 7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
우리법연구회는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태동했다. 1988년 6·29 선언에도 5공의 사법부가 그대로 유지되려고 하자 소장 판사들이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며 이른바 2차 사법 파동을 일으켰고, 그것을 주도한 10여 명의 판사가 1989년에 연구회를 만들었다. ‘외국법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법을 제대로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우리법연구회’라고 지었다고 한다. 매달 서울에서 월례 세미나를 갖고 노동-인권-북한-사법 개혁-사면권 같은 진보적인 이슈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을 ‘중도보수적인 판사들의 학술적 모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진보적인 판사들의 정치적 모임’이라는 인식을 받기에 충분하다.
연구회의 목적이 ‘회원 개개인의 실력 향상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진 회원들이 모여 재판 과정 또는 사법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법원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라는 점도 ‘정치성’을 짐작하게 한다. 이들의 숫자나 명단이 모두 공개된 적은 없지만 2009년 현재 129명으로 전체 판사의 3% 정도에 불과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최근 “전체 법관의 10~15%밖에 안 되는 우리법 판사들이 법원을 과대 대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헌법재판관 8명 중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을 포함한 3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알려졌다. 10~15% 정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헌재 구성원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니 과대 대표의 정도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충격을 주는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곤 했다. 우리법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박시환 전 대법관은 2008년 독일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송두율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위헌적인 보안법은 마땅히 폐지되거나 근본적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또 다른 우리법연구회 소속 김모 판사는 일심회 사건, 김용준 간첩조작 사건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크게 물었다.
2004년 서울동부지법의 이정렬 판사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 3명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파장을 일으킨 것은 지금까지 우리법연구회의 상징적 판결로 남아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의 재판은 ‘서민은 관대하게, 정치인은 가차 없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념과 계급적 입장에서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런 우려 탓인지 대한변협은 2009년 성명서를 내 우리법연구회를 ‘소수 엘리트 판사들의 비밀 사조직’으로 규정하고, 진상조사와 조치를 촉구했다. 법리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듯한 이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그랬던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의사결정자로 대거 참여하면서 정치적 세력화와 권력화가 본격적으로 진행, 변질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검찰 개혁의 여전사로 발탁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문재인 정부에서 역시 검찰 개혁과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에 나섰던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이 핵심 회원이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법연구회 회장을 모두 역임했던 김명수 대법관 체제가 등장하면서 우리법연구회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법부 요로에 우리법연구회 멤버들이 배치되었고, 당시 대법관 14명 가운데 7명, 한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5명이 두 연구회 출신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25년 2월 현재까지 사법부의 중심부에 포진해 있다. 이들의 위력과 네트워킹은 12·3 계엄 정국과 헌재 심판 과정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권력을 쥔 판사들, 절제의 미덕 필요해
당장 윤 대통령의 운명을 판가름할 헌재의 문형배 권한대행과 정계선·이미선 재판관, 수사권 논란에도 끝내 윤 대통령을 체포한 오동운 공수처장과 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준 서부지방법원 이순형 부장판사, 국회 측 법률대리인단 공동대표인 이광범 변호사가 모두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법연구회 출신이다. 두 연구회 출신 변호사와 판사들은 또 이재명·김경수·조국 관련 재판에서 변호를 맡거나 이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를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한 ‘좌파 사법 카르텔’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헌재가 민주당과 한편이 되어 탄핵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고도 어려우니 억지로 자기편 한 명(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지칭)을 더 얹으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은혁 후보자는 과거 급진적인 운동권과 진보정당에 참여하는 등 정치활동을 했고, 좌편향적인 판결을 지속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과 보수진영이 결사 반대하는 인사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는 터에 헌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 헌재가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뾰족한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커밍아웃, 또는 명단 공개, 실질적이고도 완벽한 해체 선언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법관의 양심적 판단과 재판일 것이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인 몽테스키외는 “권력을 가진 자는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남용하려고 한다”면서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무절제한 자유는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권력 중 권력을 갖고 있는 법관들의 양심과 절제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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