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내부도 ‘핵 수용’ 갑론을박…“핵 잠재력 확보” vs “퇴행적 안보관”
‘심상정·조국 없다’ 집토끼 지키기 자신감…비호감도 줄이기보다 강점 살린다
‘말 따로 법 따로’ 진정성 의심도…주 52시간제·지원금 추진에 ‘오락가락’ 비판
‘진보의 축’ 더불어민주당이 변했다. 왼쪽 땅은 확보했다는 확신을 갖고 오른쪽으로 한 칸씩 영토 확장에 나섰다. ‘민주당은 원래 중도보수 정당’이라는 이재명 대표의 논리를 실현하겠다는 각오다. 좌우로 과감히 핸들을 돌리는 이 대표가 내민 ‘중도보수 정당의 근거’는 최근 정치권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친명(親이재명)계는 연일 지원사격에 나서며 전향적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당내에선 한반도 안보를 두고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조기 대선을 겨냥한 민주당의 영토 확장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실제 보수의 영토를 확보해 ‘이재명의 민주당’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가운데 급변하는 당 노선으로 인해 촉발된 내부 혼란도 주목해볼 지점이다.
이 대표의 우클릭 기조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간 민주당이 지켜온 ‘비핵화’ 기조에 생긴 지각변동이다. 당 일각에서 대선의 핵심 쟁점인 ‘북핵’ 관련 정책 경쟁에 불을 지피면서다. 주목할 부분은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이다. 핵 안보를 단계적으로 ‘비핵→평화적 핵 이용→핵 잠재력→핵무장’이라고 볼 때 핵무장 직전 단계에 준하는 ‘핵 잠재력’ 즉,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는 주장이다. 당장 핵무기를 생산·확보하진 않더라도, 유사시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전통적인 보수정당에서 내밀어왔던 제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수준의 평화적 핵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해당 능력은 크게 두 가지,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20% 미만)’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의미한다. 한국은 2015년 개정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만 20% 미만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고, 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반면 일본은 미국 동의 없이 20% 미만 우라늄에 대한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통한 상업용 플루토늄 추출이 모두 가능하다.
“북핵 문제에 우리 스스로 금기에 갇힐 필요 없다”
민주당에서 이 같은 ‘핵 잠재력 확보’를 띄운 선두주자는 국가정보원 제1차장 출신 박선원 의원이다. 박 의원은 시사저널에 “북핵 문제를 두고 우리 스스로 금기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2003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부터 참여해 봤지만, 과정이 어땠든 간에 결국 북한은 늘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우리도 언제까지나 북한의 선택만 기대할 수 없다. 가령 북한이 핵을 200만큼 갖고 있다면, 우리도 최소한 20 정도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미동맹에 어떠한 훼손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박 의원은 “(평화적 핵 수용은) 미국과의 신뢰 확보를 전제로 한다”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핵무기를 보유하자는 게 절대 아니다. ‘핵확산 금지’ 국제 레짐의 틀 안에서 책임 있고 투명성 있게 평화적 핵 활동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백악관을 북핵 문제를 다뤄본 인사들로 팀을 짜놨고, 조만간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협상을 준비할 것”이라며 “향후 수년간 이어질 논의에서 우리도 ‘평화적 핵’이란 수단이 확보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핵 안보에도 ‘우측 깜박이’가 켜지자, 민주당 내 충돌도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내에선 평화적 핵 사용 카드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부터 핵 잠재력 확보에 대한 신중론까지 다양한 의견이 격돌했다. 주러시아 대사를 지내고 현재 민주당의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핵 잠재력을 갖추자는 의견은 전향적이지도 않고, ‘우클릭’도 아닐뿐더러 매우 위험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은 오랜 기간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해 왔다. 근데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 우리도 갖자’는 건 결국 비핵화를 안 하겠다는 것으로 오히려 퇴행하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위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실용주의 전략과 맞물려 핵 이슈에서도 ‘실용외교’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권한을 받는 방법을 추진할 가치는 있으나, 이는 철저히 핵 잠재력 및 핵무장과 담을 쌓고 순전히 ‘원자력의 평화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이는 기존 민주당의 ‘비핵화’ 입장과도 일관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철저히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주었지만, 우린 과거 핵물질을 추출하려 했다는 의구심을 받은 바 있다”며 “미국의 주류는 한국이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의 입장은 과연 어떨까. 민주당 핵심 관계자들은 “일부 인사의 개별 주장만 있을 뿐 당의 입장은 정해진 바 없다”며 “비핵화 유지가 (당의) 기조”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최근 당내 각종 포럼과 토론회를 통해 북핵 문제를 둘러싼 공개·비공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움직임을 두고 이재명 대표의 관심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대선 공약이 더욱 긴박하게 논의되고,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대응하기 위한 맞춤형 전략을 내놓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다음 대선 공약으로 한국의 핵 이용 권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李, 민생지원금 말 바꾸기…논란 키운 갈지자 행보
관건은 이런 우클릭 정책들이 실제 실현될지 여부다. 최근 민주당이 ‘선 제시, 후 후퇴’ 방식으로 협상을 이어가면서 정치권에선 정책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분위기다. 이 대표가 민생 정책과 관련해 자신의 실용주의, 전향적 관점을 국정 협상 테이블에 올리다가도 ‘집토끼’인 노동계의 반발이 일면 다시 주춤하는 행보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정협의회에서 난항이 이어지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이 꼽힌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소득대체율(받는 돈) 44%’라는 협상안을 받는 조건으로 ‘자동조정장치’를 내걸자, 당초 이 대표도 ‘국회 승인 시 도입하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동계가 ‘연금 개악’이라며 반발하자 민주당은 모수 개혁인 소득대체율부터 먼저 합의한 뒤 구조 개혁인 자동조정장치를 논의하자며 일보 후퇴했다.
앞서 이 대표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과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예외 적용’ 관련 논의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민생지원금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도 곧바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이름을 바꾼 지원금을 포함시켰다. 추경안에는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제안하며, 13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할 것을 요구했다.
또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에 대해 조건부 수용 의사를 내비치며 ‘친기업’ 행보를 보이다가도 노동계 반발이 커지자 다시 철회했다. 이후 방향키를 왼쪽으로 급전환해 양대 노총이 강력히 촉구하고 재계는 결사반대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기업의 반발이 거센 상법 개정안도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려고 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본회의 상정을 보류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표심용 말 바꾸기 를 반복한다”며 비난하자,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은) 정부가 먼저 얘기한 내용을 민주당이 입법한 것”이라며 맞섰다.
‘여의도 대통령’ 대신 ‘금기 도전자’로 포지셔닝
이 대표는 왜 거침없이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을까. 당 밖에서는 ‘갈지자’ 행보라고 비판하고 당내에서도 ‘정체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중도보수 깃발을 치켜든 데는 여러 가지 전략적 배경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분석들을 종합해 보면 ①타이밍(조기 대선 가시화) ②전략(약점 보완보다 강점을 최대화하는 전략) ③환경적 요인(사라진 진보 대선주자·보수의 극우화) ④캐릭터(이 대표 특유의 실리·실용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 등으로 정리된다.
먼저 이 대표가 ‘운명의 날’을 앞두고 집권을 위해 총공세에 나섰다는 시각이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2심 선고가 약 한 달 앞(3월26일)으로 다가온 가운데 집권을 통해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야 한다는 이 대표의 조바심이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그가 2월19일 MBC 《100분 토론》에서 “소(訴)는 기소를 의미하고, 추(追)는 소송 수행을 말하는 것이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제) 재판이 정지된다는 게 다수설”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권 쟁취’가 누구보다 절실한 이 대표 입장에선 진영 논리를 떠나 중도보수·중도 지지층의 표심을 얻을 ‘초강수’를 둬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가 고려한 ‘초강수’에는 ‘약점 보완보단 강점 극대화’라는 전략이 깔려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한 달여의 논의 끝에 이 같은 방향성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높은 비호감도’라는 약점을 줄이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즉 그간 입법권력의 수장으로서 이 대표에 대한 역할·성과를 평가받기보단 그의 강점으로 꼽히는 도전자 성격의 과감함과 전투력을 내세우자는 전략이다. “민주당은 원래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천명하며 정치적 영토를 개척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정치 지형의 구조적 변화도 이 대표의 우클릭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수감되면서 진보진영 내에선 이 대표를 위협할 만한 대선주자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이에 더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격앙된 보수층의 극우화로 ‘중도보수층’와 ‘중도층’이 오히려 ‘좌파’가 됐다는 민주당식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대표의 ‘중도보수론’에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선 전 방송토론에서 발언한 “내가 우경화된 건 당연하다”는 메시지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대선 전략을 참고했다는 명분까지 더해졌다.
이 대표의 ‘생존형’ 캐릭터가 직접 투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전통적인 진보의 리더와 달리 이 대표의 정책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낼 때도 그간 진보가 내세워온 평등, 인권, 페미니즘 등과 일정한 거리감이 있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도 적극적으로 돈 풀기에 나선 이 대표의 정책을 두고는 사실상 이념 지향보단 ‘실용·실리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최근 정책을 두고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가 제시한 ‘상속세 개편안’을 두고 “민주당의 ‘정책 공학’ 수준이 한 단계 진일보했다”며 “민주당 방법은 상속재산 18억원인 ‘수도권 중산층’이 혜택을 보고, 국민의힘 방법은 부유층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상속세율 인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책을 매개로’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건 나쁜 것도 아니고, 당연하다”며 “(민주당의 개편안은) 수도권 중산층만 정교하게 타기팅한 점에서 매우 놀라운 정책”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