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출간과 함께 정치 재개…“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李”
연일 ‘이재명 때리기’…강성 지지층 달래고 중도 포섭 노려
2월26일 아침 8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 앞에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를 사기 위한 시민들의 ‘오픈런’(매장이 열리는 순간 바로 입장) 행렬이 이어졌다. 대부분 한 전 대표의 지지자들로, 계산을 끝내고 책을 들고 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며 서로 공감대를 갖기도 했다. 한 전 대표의 책은 2월19일 예약판매 개시 이후 한 주간 가장 많이 팔린 도서에 오르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이에 대해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들은 “계엄 당시 합리적 보수가 했던 행동들에 대한 궁금증이 전반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자평했다.
한 전 대표는 저서 출간과 동시에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저서에서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라며 “이 대표가 행정부까지 장악하면 사법부 유죄 판결을 막으려고 계엄이나 처벌 규정 개정 같은 극단적 수단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가 “이재명 정권 탄생을 막기 위해 계엄의 바다를 건너자”며 스스로 ‘반(反)이재명 적임자’임을 강조한 것을 두고 사실상 조기 대선 출마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치인 한동훈’을 설명할 때 “법무부 장관 2년과 여당 비대위원장·대표로 있으며 3년 동안 누구보다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단련을 받았다”고 밝힌 것은 대선 국면을 고려해 ‘정치 신인’이 아니라 누구보다 빠르게 경륜을 쌓았다는 점을 강조한 전략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린다 해도 탄핵 찬성에 힘을 싣고 있는 한 전 대표가 당심을 얻어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까지 2주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흥분한 강성 지지층을 달래는 동시에 중도층 민심까지 끌어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후진술에서 ‘헌재 심판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은 터라, 만약 조기 대선이 확정된다면 국민의힘으로선 국면 전환에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탄핵됐을 경우 강성 지지층이 ‘헌재 심판 불복’ 움직임을 이어간다면 ‘탄핵 찬성’에 힘을 보탠 한 전 대표를 향해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 적대시할 가능성이 크다.
‘탄핵의 강’ 건너자는 韓, ‘침묵하는 중도’ 깨울까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3개월 넘는 ‘대장정’을 마치고 약 8시간에 걸친 최종 변론을 마지막으로 2월25일 종결됐다. 헌재가 선고기일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전 두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변론 종결 약 2주 후인 금요일에 결정이 선고됐다는 점에서 헌재가 3월14일쯤 결정을 선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되며 ‘대통령의 시간’이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정치권은 조기 대선 준비로 바빠지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물밑에선 선거 준비작업에 돌입한 모습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변론 종결 다음 날인 2월27일 당 소속 충남·호남 지역 기초의원 워크숍에 참석한 데 이어 다음 주에는 영남 지역 광역·기초의원 워크숍에도 함께할 예정이다.
권 비대위원장은 이날 워크숍에서 “민주당의 무도한 태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탄핵 사태로 격앙된 지역조직을 추스르면서 사실상 조기 대선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다음 달부터 온라인 입당 시스템도 가동한다.
한 전 대표의 당대표직 사퇴 이후 친윤(친윤석열)계 중심으로 지도부를 꾸린 국민의힘은 한 전 대표의 재등판을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이다. 친윤계 윤상현 의원은 최근 한 전 대표의 정치 복귀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 “지금은 한 전 대표의 시간이 아니다”며 “대통령 탄핵심판이 3월 초중순에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지 않나. 대통령의 시간을 침해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한 전 대표가 광장에 가서 당원들, 의원들,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그러면 한 전 대표가 출판기념회를 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낼 시기인지 아닌지 금방 답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친윤계는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한 전 대표에게 돌리는 분위기다.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도 2월27일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에게 “한 전 대표가 이제 물러난 지 2개월이라 (복귀가) 섣부르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시들기 마련이라고 꾸준히 한 전 대표에게 말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돌아오면 죽는다” 거칠게 견제 나선 친윤계
홍준표 대구시장도 2월2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이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한동훈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당 대표가 됐으면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협력해서 힘을 모아 가야지 사사건건 충돌하고 어깃장 놓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정국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기만 옳았다’ 지난번 국회에서는 ‘계엄을 내가 했나’ 그런 말을 어떻게 여당 대표가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귀) 하든 말든 관여하지 않겠다. 대신 돌아오면 나한테 죽는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친한계도 날카롭게 받아치며 양측 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친한계인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의 공개 행보를 거론하며 “한동훈이 책 낸다고 하고 예약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니 배가 아프든가 아니면 겁이 난다고 하시는 게 차라리 솔직하지 않을까”라고 친윤계에 응수했다.
친한계 박정훈 의원도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나오기 전 책을 내서 대통령 탄핵이 더 빨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강성 친윤 의원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에 우리 국민들이 다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한 전 대표가 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막아낸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큰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흐름상으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고,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의 지지율로만 봐도 한 전 대표는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2월24∼26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차기 대통령 적합도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 31%,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13%, 오세훈 서울시장 6%, 홍준표 대구시장 6%, 한동훈 전 대표 5% 순으로 조사됐다. 국민의힘 지지층(366명)에서는 김 장관 30%, 오 시장 14%, 홍 시장 13%, 한 전 대표 10% 순으로 꼽았다.
친한계는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만 되면 한 전 대표가 침묵하는 중도층을 일깨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대권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도 확장성’이 부족하고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날로 파장이 커지고 있는 ‘명태균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합리적 보수 세력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며 “한 전 대표가 매우 적절한 타이밍에 재등판했고 곧 지지율 변화가 크게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유승민 단일화? 국민의힘 경선 강타할 ‘변수’
한 전 대표에게 싸움은 이제부터다. 한 전 대표로서는 내부 통합을 시도하는 동시에 바깥에선 거야 지지층의 공격도 막아내야 한다. 최근 한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설전을 벌이며 자신의 정치적 체급이 ‘여권의 유력 주자’임을 환기시켰다. 한 전 대표의 ‘이재명 계엄령’ 주장에 이재명 대표는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는 것이고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한 전 대표는 곧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기꺼이 국민을 지키는 개가 되겠다”며 “재판이나 잘 받으라”고 재반박하며 대립각을 높였다.
중도층 저변 확보를 위해 유승민 전 의원과의 협력 가능성이 주요 변수로 거론된다. 유 전 의원은 2월24일 SBS라디오에서 한 전 대표와 협력 여부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으면 대화해 보겠다”며 “나라와 당이 제일 위기에 있으니까 그런 걸 위해 협력할 일이 있는지 (논의하는 건) 추후 열려 있는 가능성”이라고 밝혔다. 중도보수층의 지지도가 높은 두 사람이 단일화 등으로 협력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두 사람은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의힘이 하나가 돼야 된다”며 “탄핵에 찬성을 했든 반대를 했든 하나가 돼서 분열하지 않아야 된다. 서로 편을 나눠가지고 총 쏘고 싸우고 너 당에서 나가라느니 그런 이야기 하면 그건 이재명 대표한테 그냥 대통령 자리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탄핵 찬반파를 가르지 말고 통합을 최우선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다만 이런 조합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오히려 주류 민심과 멀어지면서 당의 분열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최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 측은 오세훈, 유승민 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며 “국민의힘이 지금도 많이 분열돼 있기 때문에 더 세분화되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